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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든 누구의 글이든 객관적으로만 읽지 말고 지나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의 삶을 그 거울에 비춰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는 것입니다. 제가 산중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기죽지 않고 나날이 새로울 수 있는 것 또한 무엇인가 내 뒤에서 나 자신을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가? 한번 돌아보니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스승과 말벗이 될 수 있는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둘째, 입이 출출하거나 무료해지려고 할 때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가 있습니다. ‘내가 산중에 살면서 차 맛을 모른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단지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고, 그 차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물을 관조하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삶의 맑은 여백 같은 것입니다.
셋째,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딱딱하게 굳어지기 쉽습니다. 제가 굳어지려고 할 때 삶에 탄력을 주는 음악이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서 건전지를 사용하는 조그마한 소리통에서 음악을 듣곤 합니다.
넷째, 제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이 있습니다.

 

책과 차와 음악과 채소밭이 제 삶을 녹슬지 않게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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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꿈 자체가 우리에게 풋풋한 가슴을 지니게 합니다. 또 그러한 꿈은 본능입니다. 언제 현실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소망이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삶이 여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상에 찌들지 않고 늘 향기로운 가슴을 지닐 수 있습니다.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중에 지은 내 산방을 글로 그림을 그려보자면 이렇다. 부엌을 달아내기 전의 산방은 원래 18평이었다. 북향집인데 천년 고찰이 산자락 아래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날마다 내려다본다는 것이 무례할 듯해서 북향으로 지었다. 대신 동창을 내어 초저녁에 뜨는 달님을 바라볼 수 있고, 남창을 크게 내어 아침나절만이라도 햇볕이 흠뻑 들어오게 했다. 마당에는 손바닥 만 한 연못이 있고, 마당가에는 백매, 홍매, 청매 세 그루를 심었다. 마당과 연못 사이에는 어미가지가 여섯 개인 소나무를 심었는데 육바라밀송(六婆羅密松)이라고 명명했다.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그랬다. ‘무염산방’이라는 5평짜리 독서실도 한 채 지었으니 맑은 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무염산방 글씨는 법정스님께서 써 주셨는데 낙관은 없다. 현판에 낙관을 찍으면 글씨 자랑하는 것이라며 찍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