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학문적 범주에 가둬질 수 없는 고준한 가르침의 체계이지만 하나의 철학으로도 고유하고, 복잡하고, 윤리적인 심리학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고통을 경감하고 궁극적으로는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신분석 역시 종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으나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치유의 한 형태로 그 지평을 하루가 다르게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 '자아'와 '무아'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프로이트 이론과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을 비교하고 연결하는 문제는 오늘날 인간 정신에 관한 동서양 심리학 연구의 최고의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프로이트와 붓다는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교차점과 갈림길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나침반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뉴욕의 정신과 의사 마크 엡스타인의 역저 <붓다와 프로이트>(운주사, 윤희조 역)가 2017년 5월에 출간되면서 한국의 불자들에게도 프로이트 철학과 붓다의 교설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이 보다 깊어지고 넓어졌다. <붓다와 프로이트>는 ‘서양의 심리학과 붓다의 가르침은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엡스타인이 자신이 공부해온 서양의 정신의학과 심리(치료)학을 동양이라는 렌즈로 비춰본 작업의 성과를 다룬 책이다. 엡스타인에 따르면, 심리치료는 영적인 작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쓰일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그러니까 ‘무아가 되려면 우선 유아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학자 잭 앵글러의 입장을 소개한다. 그런데 불교심리학에서의 이상(ideal)의 개념인 아라한(열반을 성취한 성자)에 도달하려면, 개인들이 내면화를 통해 체화한 이상에 대한 정신구조의 변형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즉 유아기의 경험에서 나온 자아의 이상에 대해서 명상이 영향을 미쳐야만 불교적 이상이 실현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책의 발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정신분석학의 내면 탐색과 불교의 명상이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거나 이렇다할 진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신분석학이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온전히 전파되어 문화 속에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해(2018년) 5월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생각의길, 윤승희 역)이라는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주제로 하는 아홉 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의자’와 ‘방석’이라는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 수록된 연구 성과들은 두 서로 다른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에 논문을 기고한 이들, 즉 공동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전공한 의사 또는 불교학자이면서 불교수행을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불교는 과정의 심리학이다’라는 논문을 쓴 앤드루 올렌즈키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불교수행단체 가운데 하나인 베리불교연구소를 이끌고 있고, ‘붓다와 위니콧’이라는 논문을 제공한 마크 엡스타인은 하버드 의과대학 재학시절부터 불교수행을 해온 재가 수행자이다.
이들의 글은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불교심리학을 정신분석과 연결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각자의 학문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다른 영역을 이해하려는 수준 높은 차원을 견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불교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연관 지었던 주제는 ‘대양적 느낌(oceanic feeling)’, 즉 자기와 외부 세계 사이에 무한하고 끝없으며 영속적인 유대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정과, ‘고르게 떠 있는 주의’, 즉 1952년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의 온 마음을 다하는 주의는 불교적 명상법 등에 의해 학습될 수 있다는 암시(또는 발견) 정도였지만, 이 책에 실린 논문들에서는 관련 주제의 범위도 크게 넓어졌으며, 비교의 관점도 훨씬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최고의 정신분석학자와 불교학자 8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은 많은 태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최고의 심리학적 논의와 지식을 담아 두 영역이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대표저자 액설 호퍼의 ‘무의식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두 가지 방식’이라는 글을 도입으로 시작해 3부에 걸쳐 9편의 주옥같은 논문이 이어진다. 1부 ‘프로이트의 의자: 정신분석은 왜 필요한가?’에서는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니나 사벨-록클린)을 비롯하여, ‘불교의 심리학, 알아차림이 전부는 아니다’(델리아 코스트너)가 소개된다. 
2부 ‘붓다의 방석: 불교심리학의 벽을 넘다’에서는 ‘정신분석과 불교의 참 모습’(니나 콜타트), ‘불교는 과정의 심리학이다’(앤드루 올렌즈키), ‘붓다와 위니콧’(마크 엡스타인), ‘마크 엡스타인의 “붓다와 위니콧”에 관한 고찰’(액설 호퍼),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가?’(세라 웨버), ‘정신분석과 불교, 두 영역에서 공존한 삶’(제럴드 포걸)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3부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정신분석과 불교의 연대’ 챕터에서는 액설 호퍼의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가?’가 마무리 논문으로 이 책의 대단원을 장식한다.

 

프로이트와 붓다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과 불교심리학은 종교와 학문의 영역을 넘어 마음의 문제와 고통에 관해 실제적이고 공통된 해답을 준다. 자유연상, 무의식, 전이, 꿈의 해석 등 정신분석 개념과 덧없음, 무아, 명상 같은 불교 심리학 개념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이 책은 두 영역의 예기치 못한 연대와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강력한 심리학 도구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학파는 프로이트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부단하게 보여준다. 프로이트로부터 출발한 정신분석은 불교와의 친연성을 점점 더해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 알다시피 프로이트는 서구 심리학의 최초의 산이자, 최고의 산이다. 그가 만든 높이만큼의 깊이가 존재한다. 이는 불교와의 비교연구 또한 진행형이라는 것을 방증하며 이 두 영역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예고한다. 에리히 프롬과 스즈키 다이세츠가 열었던 선불교와 정신분석에 관한 심포지엄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불교와 정신분석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찬사는 화려하다. 살만 악타르 교수(제퍼슨 의과대학교 정신의학과)는 “공의 긍정, 건전한 탈애착, 통찰의 허점,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존재의 중심에서 영원히 고동치는 알 수 없는 고뇌에 대한 깨우침이 이 한 권에 담겨있다”며 “풍부한 이론과 임상적 근거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고 감탄한다. 로버트 월딩어 교수(하버드의과대학교 정신의학과)는 “저자들의 탐구정신이 살아있는 각 챕터와 호퍼 박사의 통찰력 있는 마무리는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두 가지 강력한 도구의 접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수디르 카카르 교수(인도 고아대학교)는 “60년 넘는 전통을 지닌 불교와 정신분석 간의 대화에 전례 없이 풍성한 선물을 던져준 이 책은 과장도, 허세도, 문화적 편견도 없이 심리 탐구의 양대 전통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며 “나아가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두 전통이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고 평한다.

 

이 책을 감수한 윤희조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는 “이 책은 서구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활로를 보여주고,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불교의 현대적 모색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는 불교방법론의 하나인 알아차림, 자비의 개념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불교의 방법론만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이론과 불교심리학과의 비교를 통해서 근원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즉 근원적 차원에서 불교심리학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 임상과 불교명상을 함께 체험한 서구 정신분석가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 책은 정신분석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불교의 명상이 추구하는 목표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안내한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불교명상과 정신분석학 양쪽을 이어주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