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가 남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미완의 경전
<유마경> 우리나라 최초 한글 번역
만해 한용운 스님이 실우(失牛)라는 필명으로 한글 최초 번역한 <유마경>이 어의운하에서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으로 번역·출간됐다.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은 1940년 잡지 <불교> 2월호와 4월호에 실린 실우失牛(만해의 필명)의 「유마힐소설경강의」와 400자 원고지 총 148장 분량의 육필 원고를 모아 발간한 <한용운전집> 제3권(신구문화사, 1973년)에 실린 <유마힐소설경>을 저본으로 했다.
만해는 1933년부터 <유마힐소설경> 번역을 시작했고, 1940년에 <불교>지에 첫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2월호, 3~4월호(합본호)에 2회를 연재하다 중단된다. 만해가 생애 첫 완역을 시도한 경전이 왜 <유마경>이었는지, 또 왜 번역이 중단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보적寶積아, 중생의 유類가 이 보살의 불토佛土니 무슨 까닭이겠느냐.
보살이 교화敎化하는 바 중생을 따라 불토를 취하며, 조복調伏하는 바 중생을 따라 불토를 취하며, 모든 중생이 응당 어떤 나라로써 불지혜佛智慧에 들어감에 따라 불토를 취하며, 모든 보살이 응당 어떤 나라로써 보살근菩薩根을 일으킴에 따라 불토를 취하느니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정국淨國을 취함은 다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비유컨대 사람이 있어 빈터에 집을 짓고자 하면 그 뜻에 따라 걸림이 없을지나, 만약 허공에 하면 능히 이루지 못할지니, 보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을 성취하려는 연고로 불국佛國을 취함을 원하느니 불국 취하기를 원하는 자는 허공에 함이 아니니라. (「불국품」 한글 번역 부분. 68쪽)
1929년 6월 잡지 『삼천리』창간호 46쪽에 실린 만해 한용운의 모습. 이 사진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된 바가 없는 만해 한용운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어의운하>
대표적인 대승경전으로 평가받는 <유마경>은 유마거사라는 재가자가 설법의 주체로 등장한다. 단지 설법의 주체가 재가자라는 점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대제자들은 유마거사에게 한결같이 호통을 듣고 대승정신에 대한 설법을 듣고 배우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해 역시 결혼도 하고 거사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오히려 출가자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당당한 삶을 살았다. 만해는 정신적으로 유마의 가르침을 받드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 아파하는 삶을 살았다. 서재영 교수는 ‘유마로 살았던 만해의 유마경 역주’라는 해제를 달았다.
그때에 장자 유마힐維摩詰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병들어 자리에 누웠으되 세존은 크게 자비로우신데 어찌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는가 하니, 부처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곧 사리불舍利弗께 이르시되, 네가 유마힐에게 나아가서 문병하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거기에 나아가 문병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건대 제가 일찍이 수풀 속 나무 밑에서 연좌宴坐1할 때에 유마힐이 와서 말씀하시되, 사리불아, 반드시 앉는 것만이 연좌가 아니며2 대저 연좌란 것은 삼계三界에 신의身意를 나타내지 않는 것3이 연좌이며, 멸정滅定4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위의威儀를 나타냄이 이 연좌가 되며...(「제자품」 한글 번역 부분. 122쪽)
만해의 <유마힐소설경> 육필 원고 사진(<한용운전집> (신구문화사, 1973) 제 3권에 이 사진이 실려 있다). 전집 출간 이후 이 육필 원고는 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어의운하>
만해가 번역한 <유마경>의 특징은 번역이 유려한 문체로 인해 술술 읽혀지는 맛이 있다. 한학의 대가였던 만해는 원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담아내고 있다. 방대한 대장경의 출처를 밝히며 대강백의 안목으로 주석을 달고 내용을 풀이했다. 또한 만해의 <유마경> 역주는 전체 14품 중에 거의 절반만 번역되었으나, 중생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유마경>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경전이기도 하다. <유마경>의 완성은 미래형이며, 이 경을 읽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만해의 <유마경>은 중생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보살의 삶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그때에 사리불舍利弗이 이 집 가운데 평상이 없음을 보고 이 생각을 짓되, 이 모든 보살과 큰 제자의 무리가 마땅히 어느 자리에 앉을고. 장자 유마힐維摩詰이 그 뜻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씀하되, 어떤 까닭이뇨. 인자仁者여, 법을 위하여 왔느냐, 평상을 구함이냐. 사리불이 말씀하되, 나는 법을 위하여 온 것이지 평상을 위함이 아니로다. 유마힐이 말씀하되, 오직 사리불아, 대저 법을 구하는 자는 몸과 목숨을 탐하지 아니하거든 어찌 하물며 평상이리오. (「부사의품」 한글 번역 부분. 270쪽)
1940년, 잡지 <불교> 2월호에 실린 만해 한용운 스님의 <유마힐소설경> 육필 원고 사진.<사진제공=어의운하>
만해가 1933년 <한글>(제2권)지에 쓴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보급방법’ 글에서 “우리 불교 기관에서는 이번에 나온 새 철자법을 실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 것처럼, <유마힐소설경>은 1914년 발간된 <불교대전>과 달리 국한문 혼용임에도 한글의 어법이 두드러지게 많다. 때문에 <유마힐소설경>은 번역을 거치지 않고 꼼꼼히 정독하면 읽을 수 있다. 물론 불교 한문 읽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 수고로움이 독자들을 더 깊은 <유마경>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은 잡지 <불교>와 <한용운전집>에 실린 오자와 맞춤법을 원문의 결이 훼손되지 않는 정도로 바로잡고, 지나치게 긴 문장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두세 개의 문장으로 나눴다. 또한 국한문 혼용 등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생경한 단어와 문투 등이 적지 않게 나오지만 자료의 가치를 고려해 그대로 두거나, 별도의 각주로 해석을 달았다.
지은이 : 만해 한용운 ∥ 출판사 : 어의운하
판형 127×197 ∥ 쪽수 : 336쪽
값 : 15,000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만해 한용운(사진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책의 목차
본경의 명칭 8
본경의 번역 14
본경의 주석 18
본경의 과판 22
제1 불국품佛國品 27
제2 방편품方便品 97
제3 제자품弟子品 121
제4 보살품菩薩品 177
제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211
제6 부사의품不思議品 269
원문原文 _ 제6 부사의품부터 제14 촉루품囑累品까지 278
해제 _ 유마로 살았던 만해의 유마경 역주 | 서재영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