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호의 비래정은 양사언(1517-1584년, 호 봉래)이 살던 집 이름이다. 양사언은 글 잘 짓는 문필가요, 특히 글씨 잘 쓰는 것으로 당대에 이름난 서예가였다. 그는 금강산을 무척 사랑하였다.
봉래하는 호도 이런 의미에서 지은 것이었다.
1564년에 그는 해금강, 구선봉 아래 감호의 언저리에 집을 짓고 살았고 또 한 때 신계천 동석동 일대에 와서 살면서 글공부도 하였다고 전 한다

 

*구선봉은 옛날 아홉 명의 신선이 이곳에서 아름다운 산천을 유람하면서 심신을 다진 곳이라고 한다. 산봉우리위에는 신선이 놀던 바둑판이 그려져 있다.

 

양사언이 감호언저리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그의 집은 구선봉에서 남으로 내려 뻗은 호가 가까운 등성이 위에 있었다. 그는 여기에 “배래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아침저녁으로 호수와 구선봉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다보며 시도 읆고 글씨공부도 하면서 지냈다.

 

 

 

“비래정”이란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며 그가 풍류객으로서 신선처럼 살려고 한 자기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감호는 거울 속에 있는 연꽃 같고 구선봉은 하늘가에 소라 고동처럼 틀어 올린 상투머리 같다고 하면서 감호와 구선봉을 자기 집 주변에 친 병풍이나 울타리라고 하였다.

 

비래정을 짓고는 그 편액을 달아야 하였다. 그는 멋들어지게 글씨를 써보리라 마음먹고 고래수염을 모아다가 큰 붓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온 정력을 기울여 기운찬 필치로 “닐비”지를 큼직하게 썼다.

 

그런데 그 다음 “래”자, “정”자를 내려 썻으나 아무래도 글씨가 잘 되지 않았다. 몇 십 번을 고쳐 써보았으나 마음 내키는 필치로는 되지 못했다. 화가 난 그는 붓을 내동뱅이 치고 말았다. 유독“비”자만은 정성들인 보람이 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는 “비”자 하나만 따로 장정을 해서 족자를 만들어 벽 위에 걸어놓았다.

 

 

 

1581년에 그는 안별 부사로 있다가 능묘에 불이 붙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다.
하루는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서 비래정안 서재의 문을 열어 재겼다. 그리하여 방안에 있던 책이며 벼루며 족자 등이 한시에 공중으로 날아났다. 땅바닥에 떨어진 것은 다 주어 들었고 별고 잃어진 것이 없었으나 ‘비“라고 쓴 족자만은 하늘높이 떠올라서 바다 쪽으로 날려가는 것이었다. 집 지키던 사람이 뒤 쫓아 갔으나 족자는 점점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고 바닷가에까지 따라갔으나 나중에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연하여 형적도 보이지 않았다.

 

훗날 그 날자와 시간을 따져보니, 그것은 바로 1584년 양사언이 황해도의 귀양살이하던 곳에서 세상을 떠나던 그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비”자를 쓰는데 필생의 정력을 다 하였기에 그의 혼이 ‘비“자 족자를 가져간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