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인간 정약용 위한 소설이자, 초의와 혜장 소개한 다서茶書
염정우 기자 bind1206@naver.com 2019-01-18 (금) 11:44
다산의 찬가讚歌에 가리어진 눈물과 고독, 회한의 슬픈 노래
향그러운 남도의 언어와 차바라밀
향그러운 남도의 언어와 차바라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업적을 찬양하는 찬가 속에 가리어진 다산의 내면의 눈물과 고독, 회환의 모습이 정찬주 작가의 『소설 정약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의 저술 작업의 내용과 고충보다는 유배시절에 사랑했던 여인, 제자, 강진의 산야, 차와 음식 등의 이야기가 기억을 흐르는 수묵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정약용의 슬픈 노래, 비가(悲歌)를 다루고 있다.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의 유배시절을 샅샅이 다루고 있으며, 정약용이 애타게 기다리던 읍중제자 황상과 해후한 뒤 75세 부부 회혼일에 질곡의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선비는 유배를 가더라도 강학을 연다는 전통에 따라 다산 정약용도 강진의 읍중제자와 초당제자들을 가르친다.
『소설 정약용』은 학질에 걸린 제자에게 걱정 어린 편지 끝에 ‘학질 끊는 노래’를 덧붙인 가난한 스승과 그 노래를 아픈 몸으로 베껴 적는 제자의 대목에서, 사제지간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여 준다.
『소설 정약용』은 학질에 걸린 제자에게 걱정 어린 편지 끝에 ‘학질 끊는 노래’를 덧붙인 가난한 스승과 그 노래를 아픈 몸으로 베껴 적는 제자의 대목에서, 사제지간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여 준다.
정약용은 황상의 건강을 걱정하는 글 뒤에 ‘학질 끊는 노래(截瘧歌)’를 지어 붙였다. 한약을 지을 처지가 못 되는 정약용으로서는 황상을 위해 ‘학질 끊는 노래’를 지어 붙일 수밖에 없었다. (중략) 황상은 붓을 들어 정약용이 보낸 ‘학질 끊는 노래’ 중에서 마지막 구절을 베껴 적었다.
원컨대 노력해서 문사를 전공하여(願汝努力攻文史)
우주만사를 네 분수대로 하려무나(宇宙萬物皆已分)
우주만사를 네 분수대로 하려무나(宇宙萬物皆已分)
- 주막집 봉놋방 중에서 -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실학자로서의 강학과 눈부신 저술 작업 이면에 서성거리는 강진 여인 홍임 모와의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근디 영감마님께 부탁이 하나 있어라우.”
“무엇인가?”
홍임 모는 말을 하려다가 망설였다.
“말해 보게. 무엇이든 말해 보라니까.”
“앞으로는 남당네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원이 읎겠구만요. 남당네라고 부른게 제자들도 남당네라고 불러불고 지를 막일허는 부삭때기로 보는 것 같그만요.”
정약용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홍임 모의 말이 옳았다. 한방을 쓰느 여인이니 아무리 신분이 천하더라도 자신의 소실이 분명했다. 그러나 초당제자들 마저 남당네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깟난이 이름을 미리 짓어주시문 되야불지라우.”
정약용은 무릎을 쳤다.
“아하! 내가 왜 미리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기 이름을 지어 부르면 되는 것을. 아기 이름을 무어라고 짓는 것이 좋겠는가.”
“영감마님 깟난인께 영감마님께서 짓어주셔야지라우.”
정약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를 지었다.
“초당에 홍매(紅梅)가 없네. 그러니 아기 이름을 홍임(紅任)이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이삔 이름이그만요. 애기도 홍매꽃같이 이삘꺼그만요.”
정약용은 홍임 모를 안았다. 팔다리가 마비가돼 있었지만 홍임 모는 사내의 힘을 느꼈다. 홍임 모는 정약용의 가슴이 구강포 바다와 같이 넓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홍임 모는 말을 하려다가 망설였다.
“말해 보게. 무엇이든 말해 보라니까.”
“앞으로는 남당네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원이 읎겠구만요. 남당네라고 부른게 제자들도 남당네라고 불러불고 지를 막일허는 부삭때기로 보는 것 같그만요.”
정약용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홍임 모의 말이 옳았다. 한방을 쓰느 여인이니 아무리 신분이 천하더라도 자신의 소실이 분명했다. 그러나 초당제자들 마저 남당네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깟난이 이름을 미리 짓어주시문 되야불지라우.”
정약용은 무릎을 쳤다.
“아하! 내가 왜 미리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기 이름을 지어 부르면 되는 것을. 아기 이름을 무어라고 짓는 것이 좋겠는가.”
“영감마님 깟난인께 영감마님께서 짓어주셔야지라우.”
정약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를 지었다.
“초당에 홍매(紅梅)가 없네. 그러니 아기 이름을 홍임(紅任)이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이삔 이름이그만요. 애기도 홍매꽃같이 이삘꺼그만요.”
정약용은 홍임 모를 안았다. 팔다리가 마비가돼 있었지만 홍임 모는 사내의 힘을 느꼈다. 홍임 모는 정약용의 가슴이 구강포 바다와 같이 넓다고 생각했다.
- 홍임이 중에서 -
뿐만 아니라 『소설 정약용』은 혜장선사와 초의선사 등과의 교류가 등장하면서 남도의 다도(茶道)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차의 제작 과정이 반복 언급되고 있다. 한 권의 다서(茶書)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차에 대해 조예가 깊은 작가의 심미안이 군데군데 발휘되어 행간에 차향(茶香)이 스며있는 듯하다.
어린 사미승이 다로에서 끓인 찻물에 혜장이 만들었다는 떡차를 넣자 찻물은 금세 달빛이 되었다. 만경루는 글자 그대로 백련사 주변의 만가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누각이었다. 정약용은 사발 크기의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시면서 시를 읊조렸다. 달빛을 한 모금 한 모금 마신다고 생각하니 절로 흥이 났다.
- 봄나들이 중에서 -
정약용이 초의가 가져온 의순선자의 차 맛을 품평하는 대목이다.
“찌다니 무슨 말인가?”
“밥주걱으로 요리조리 뙤작뙤작허다가 짐이 막 날 쩍에 솥뚜껑을 알른 닫어불지라우. 그래야 솥단지 안의 열기가 바깥으로 새지 못허고 찻잎에 스며들어불지라우.”
“찻잎을 찐다는 말이군.”
“시루떡멩키로 뜨건 짐을 쐐야 헌당게요.”
“의순선자의 차 맛 비결이 솥뚜껑을 덮는 데 있구먼그래.”
“그래야 차향과 맛이 따북 스며들어라우.”
(중략)
“하하하. 알겠네.”
“스님덜은 육바라밀로 불도를 이룬다고 허요만 지는 차바라밀(茶波羅蜜)로 시비분별을 쉬어불겄습니다요.”
“밥주걱으로 요리조리 뙤작뙤작허다가 짐이 막 날 쩍에 솥뚜껑을 알른 닫어불지라우. 그래야 솥단지 안의 열기가 바깥으로 새지 못허고 찻잎에 스며들어불지라우.”
“찻잎을 찐다는 말이군.”
“시루떡멩키로 뜨건 짐을 쐐야 헌당게요.”
“의순선자의 차 맛 비결이 솥뚜껑을 덮는 데 있구먼그래.”
“그래야 차향과 맛이 따북 스며들어라우.”
(중략)
“하하하. 알겠네.”
“스님덜은 육바라밀로 불도를 이룬다고 허요만 지는 차바라밀(茶波羅蜜)로 시비분별을 쉬어불겄습니다요.”
- 찻자리 중에서 -
『소설 정약용』의 또 다른 성과가 있다면 전라도 사람이 등장할 때의 대화에서 전라도와 강진 향토언어를 살려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가후기에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개굴개굴’이라고 표현하지만 강진 촌로들은 ‘아굴아굴’ 운다고 말했다. 바가지로 물을 뜨는 샘을 ‘바가지시암’ 굴뚝을 ‘귀똘’이라고 불렀다. 사전에 반드시 등재해야 할, 이른바 표준말보다 더 실감나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강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더 말 할 것도 없이 우리말을 누부시게 조탁한 시문학파로서 정지용과 길동무가 된 김영랑 시인은 강진 향토언어를 자신의 시에 영롱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개굴개굴’이라고 표현하지만 강진 촌로들은 ‘아굴아굴’ 운다고 말했다. 바가지로 물을 뜨는 샘을 ‘바가지시암’ 굴뚝을 ‘귀똘’이라고 불렀다. 사전에 반드시 등재해야 할, 이른바 표준말보다 더 실감나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강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더 말 할 것도 없이 우리말을 누부시게 조탁한 시문학파로서 정지용과 길동무가 된 김영랑 시인은 강진 향토언어를 자신의 시에 영롱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설 속 향토언어가 다소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문장의 앞뒤를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되고 결코 독해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터이다. 오히려 아름다운 향토언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작가는 인터뷰에서, “어느 절의 주지 스님이 전화를 걸어와서 ‘어떤 소설에서 혜장 스님을 왜곡되게 쓴 것에 실망하여 장문의 항의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소설 정약용』에서 혜장 스님의 위상을 바로 잡아 주었다’는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를 전했다. 작가가 글쓰기에 임하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확한 자료와 올바른 비평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정찬주 지음 ∥ 한결미디어
국판 ∥ 324쪽
15,000원
국판 ∥ 324쪽
15,000원
작가 프로필
자기다운 삶으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월간문학》 등에서 편집자의 삶을 시작했으며,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마음에 품고,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2002년부터 그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에 둘러싸여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소설과 산문집들을 펴냈다.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니르바나의 미소>, <천불탑의 비밀>, <다불>, <만행>, <대백제왕>(전 2권), <가야산 정진불>(전2권),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전 2권),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 3권) 등, 산문집 <법정스님의 뒷모습,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다인기행> 등,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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