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다
mediabuddha@hanmail.net 2018-11-26 (월) 12:2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사진 = 최강희
4. 바람직한 방향 (1)
선이나 교보다는 경전에 의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그렇다면 이제 어떤 경전을 택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여러 경전에서 긴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그것을 새로운 체계로 엮어 놓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불교성전은 불 법 승 삼보를 중심으로 그에 관한 경전의 요문(要門)을 수록하고 교훈적인 말씀을 열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친 윤문(潤文)이 행해져, 불교 술어가 지닌 미묘한 구조가 크게 손상되고 있다. 경전의 목적이 ‘깨달음을 가리키는 손짓’의 구실을 하는데 있을진대, 이러한 성전이 절대적인 귀의(歸依)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성전이란 어떤 것일까? 불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의 하나는 다른 종교가 궁극적인 진리- 신관(神觀)이나 우주론(宇宙論)-에서부터 설해 주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교설이 베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리는 스스로 깨닫도록 그에 이르는 길만이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결코 말로 설해져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라고 설하시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언제나 침묵을 지키셨다. 따라서 불교 교리는 점점 심화되어 가는 중층적(重層的)인 조직을 띠게 된다. 경전이란 바로 이러한 교리를 담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경전이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일미의 것이긴 하지만 각 경전이 저마다 다른 교리적 수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불교경전이 지닌 특징을 살펴보면, 대승불교의 초기에 성립된 경전으로는 반야경 법화경 십주경 무량수경 등을 들 수가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바탕은 이러한 초기 대승경전이라고 하겠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것은 반야경이다.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의 이유로서의 그 ‘연기’라는 개념은 대승불교 이전에 성립된 아함경에서 찾을 수 있다.
아함경은 총 183권에 이르는 방대한 부피에 무수한 작은 경전을 포함한 총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속에 설해진 교리 또한 착잡하지만 크게 십업설(十業說) 삼법인(三法印) 육육법(六六法) 조도품(助道品)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로 가를 수가 있다. 대승불교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 기초인 ‘연기’는 바로 여기에 설해진 십이연기설의 그 ‘연기’라는 개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 반야경의 기초는 아함경이라 할 수 있고, 대승불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아함경에서부터 읽어 가야 한다는 것이 뚜렷하다.
다음으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대승불교의 종교적 이념은 이러한 반야의 공관적 실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한한 공관의 실천은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체험을 통해 궁극에 가서는 다시 중생계에 회향된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여래(如來)’ 다시 말하면 ‘그렇게 온 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돌아옴에 의해 부처의 깨달음과 중생에 대한 사랑(慈悲)은 다시없이 원만해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