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아미타불상과 가까운 곳에 세 칸의 작은 맞배지붕 전각이 있는데, 똑같이 한 칸씩 나누어 선묘각, 산신각, 용왕각 현판을 걸었습니다. 한 벌로 쌓은 기단도 그렇고, 주춧돌도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습니다. 초익공에 겹처마 그리고 양쪽에 늘어진 풍판의 짜임새가 맛깔나게 어우러져 작은 전각이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각 칸칸에는 현판에 쓰인 주인장을 봉안하였는데 선묘각의 선묘낭자는 부석사를 창건하게 된 인연으로, 산신각의 산신은 도비산에 자리한 부석사를 지키고 불자 가정의 평안을 북돋아준다는 의미로, 용왕각의 용왕도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해 준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세상이 삼라만상으로 채워졌다는데, 그 중에 스스로 생겨난 것도 있든가요?
밝지 못한 눈을 가진 때문에 내 등까지 이어진 끈을 볼 수 없지만,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좋고 나쁜 일도, 육도를 윤회하며 태어나는 것도 내가 지은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누구라도 그럴 것이고, 실화이든 설화이든 부석사 창건도 선묘낭자의 깊고 진실한 사랑이 지은 업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이즈음 사람들에게 작은 깨우침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녀가 첫눈에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일은 지금뿐만이 아니고 예전에도 있어서, 당나라의 선묘낭자도 멀리 신라에서 유학 온 의상스님을 보자마자 연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구하고자 몇 년을 별러서 또 몇 천리나 되는 먼 당나라로 찾아올 정도면 그 심지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터입니다. 스님이 당나라에서 공부한 햇수는 무려 10년인데,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진 낭자는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청했어도 스님의 금강석 같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들을 수 있는 말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라는 말 뿐,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그칠 수 없는 낭자는 스님과의 인연을 이어가려면 ‘불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부부의 연을 맺지는 못하더라도 스님을 평생 모시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의상스님이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가는 배를 타고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낭자는 부둣가로 뛰어가 손수 지은 법복을 배가 떠난 방향으로 던져 스님에게 전합니다. 그러면서 ‘내 몸이 용으로 변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 배가 신라 땅에 무사히 돌아가 불법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비옵니다’는 서원을 말하고는 몸을 바다에 던집니다. 낭자는 서원대로 용이 되어 스님이 신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배를 보살피고, 낭자의 서원대로 스님은 무사히 신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귀국 후 의상스님은 우리나라에 화엄종을 펴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큰 사찰도 창건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신라로 돌아온 이후에도 법을 구하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당나라를 다녀왔기에 의상스님도 선묘낭자가 여차저차해서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의상스님은 그제야 자신의 불사가 술술 풀리게 된 바닥에 깔려있는 낭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알아채고, 낭자의 깊은 사랑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낭자를 천도할 절터를 찾아다닙니다.
당나라를 향하고 있는 명당을 찾았으나 그곳은 이미 산적들의 터전으로 사찰 건립은커녕 범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정을 알게 된 선묘용은 큰 바위를 날려 산적을 쫒아내고 의상스님의 부석사 창건을 돕게 됩니다.

 

신라시대에 선덕여왕을 짝사랑해 상사병이 난 자귀는 정욕으로 자신의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는데, 경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민가는 물론 큰 사찰까지 불태우며 행패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사랑이 싹튼 요인이 먼 곳에서 온 스님이 너무나 번듯한 외모에 반한 때문인지, 먼 외국에서 온 스님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남루한 차림의 몰골과 옷차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자귀와 같이 원한을 맺음 없이 또 변함없는 처음 마음으로 스님을 지켜주고, 스님의 불사가 성취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은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용이 된 선묘낭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퍼트리려했던 의상스님이 창건한 부석사를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선묘각 불단에는 선묘낭자 목조상이 봉안되었고, 후벽에는 영정이 걸려있습니다. 목조상과 영정으로 표현된 선묘낭자는 여염집 낭자라기보다는 성품이 온후한 부잣집 마님을 넘어, 보살이나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머리에 쓴 보살의 보관과 보관에 매달린 장식과 화려한 복식은 그렇다 하더라도 부처님처럼 네모난 얼굴에 어깨까지 늘어진 귀, 그리고 삼도까지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집안의 규수를 나타내듯 반듯하게 선 선묘낭자가 경전을 받들고 있는데, 이는 귀국하는 의상스님께 전하는 경전을 나타낸다는 생각입니다. 후벽에 걸린 영정에는 스님이 깊은 산 속에서 참선자세로 앉아있는 모습, 당나라에 도착한 스님을 맞아들이는 선묘낭자,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배를 안전하게 받치고 있는 용과 잠잠해진 바다를 항해하는 장면을 모두 그려있는데, 선묘낭자 설화 전부를 한 폭에 담아낸 셈입니다. 

 

 

옛적부터 평지인 땅에도 토지신이 있다고 믿어왔으니, 호랑이가 출몰하는 산 밑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산신령을 믿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한참 전부터 내려온 토속신앙인 까닭에 전각을 지어 사찰을 수호하는 신중으로 우대한 것은 토속신앙과 융화하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좌우에 선묘각과 용왕각을 두고, 산신이 전각 어간에 우두머리 자격으로 자리하였기 때문에 전각에는 산신을 청하는 주련을 걸었습니다. 

 

영산석일여래촉 위진강산도중생 만리성운청장리 운차학가임한정
(靈山昔日如來囑 威振江山度衆生 萬里聖雲靑嶂裡 雲車鶴駕任閑情)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위엄 떨치시며 이 강산에 중생 제도하시네.
만 리에 뻗은 푸른 산봉우리 사이에서
구름수레 학에 메워 타고 자유로이 오가시네.

 

후벽에 걸린 산신탱화도 다른 산신탱과 마찬가지로 깊은 산을 배경으로 늙은 소나무, 산신, 호랑이, 동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비산 산신은 유학자들처럼 복건을 쓴 것이 특이하고, 엎드린 호랑이의 등에 앉아 한 발은 땅을 딛고 한 발은 들어 올린 편한 자세에 파초선을 들고 있습니다.
산신 오른쪽에 선 동녀는 여러 개의 천도복숭아가 매달려있는 가지를 어깨에 메고 산신을 쳐다보고, 왼쪽 동남은 무릎을 꿇고 복숭아를 산신에게 받치며 올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동남동녀의 눈초리는 산신께서 무엇인가를 베풀어주셨으면 하는 표정으로 보였습니다.

 

 

용은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에 들어가는 호법신의 하나입니다. 조상들이 집안에 있는 우물과 작은 샘물터에도 용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물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안가 중생들에게는 어부의 안전을 용왕에 의존하는 믿음이 있었고, 이는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와 바람을 일으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고 강과 바다를 다스리는 등 큰일을 해준다는 용왕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 농토와 바다 두 가지를 생활터전으로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사찰보다 용왕각이 더 필요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후벽에 걸린 탱화는 중앙에는 용을 의인화한 용왕이 자리했고, 그 앞에는 용궁의 거북장군,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문신, 아귀(생선)의 머리를 한 신하와 용왕을 보좌하는 판관이 서있습니다. 용왕 뒤에 펼쳐진 병풍에는 청룡과 황룡이 용왕을 호위하는데, 불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별주부전을 그린 민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각에 걸린 세 점의 탱화 하단에는 화기(畵記)가 쓰여 있는데, 산신탱화는 불기 2536년(서기 1992년), 선묘탱화와 용왕탱화는 불기 2546년(서기 2002년)이며, 시주자도 같지 아니하여서 산신각 중창불사를 이루는데 10여년이 걸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공토굴

 

용왕각 뒤에는 큰 바위가 서로 엉켜있고, 들린 듯도 하여서 부석이란 말이 이 바위에서 나왔나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불편한 산길로 몇 걸음 올라가면 만공선사가 수도를 하셨다는 만공토굴이 나옵니다. 선사께서는 마곡사며 간월암이며 여러 토굴에서 정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토굴이란 어떤 곳인가 하는 궁금증을 품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토굴은 입구에서 겨우 3, 4미터의 깊이 정도였고, 허리를 구부려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면 한명이 들어가 있기에 알맞은 넓이를 가졌는데, 몇 분이 지나야 주위를 간신히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위아래 옆 모두가 암벽으로 토굴 내부가 보일만해지자 바깥이 맑고 쾌청한 날씨임에도 가득한 습기로 온몸이 눅눅해져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곳곳에 정진할 조용한 공간을 마련해 놓았고, 방해할 사람이 오지도 않을 터이고, 접근도 금지하고 있는데, 굳이 이런 곳에서 누차 정진하신 까닭을 몽매한 이 중생은 알 수가 없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