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완전한 해결은 모든 존재의 여실한 실상을 깨닫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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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궁극적 깨달음의 윤리

사제설과 대승 반야설은 인간의 내심에서 괴로움의 근본적 해결을 꾀하는 까닭에 외적인 사회윤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강력한 사회 윤리적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대승불교는 대단하다. 대승보살은 누구나 중생제도의 서원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십지설菩薩十地說(華嚴經)의 제1 환희지는 10대원을 설하고, 무량수경의 법장비구(阿彌陀佛의 前身)는 48원을 세우고 있다.<불설무량수경 권상>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깨우쳐야 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 대승불교가 반야사상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윤리적으로는 이렇게 강력한 사회성을 띠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종교적 요청 때문일까? 아니면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인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본래의 목적을 설한다는 법화경에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설이 나타난다. 사제나 육바라밀의 법은 아직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게 하기 위한 방편이요 과정에 불과하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知見)을 얻는 데에 있다. 따라서 오직 한줄기 불승佛乘이 있을 뿐, 이승(小乘 大乘)이나 삼승(聲聞乘 辟支佛乘 菩薩乘)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법화경의 이러한 일불승설에 의하면, 사회적 인간관계를 초월한 반야설의 피안적 진리는 아직 미진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부처(如來)가 이룬 다시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無上正等覺)에 비친 존재의 실상은 그와는 다른 측면이 또 있는가? 모든 존재는 구조적으로 서로 중중 무진(重重無盡)한 관계를 갖는 것인가? 중국의 화엄사상은 그와 비슷한 견해를 표명한 대표적인 철학이다. 법화경은 물론 이에 대해서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고 있다.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모든 존재의 실상을 다할(究盡) 수 있다고 설할 뿐이다.

그러나 법화경의 그 뒤 교설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많은 시사를 받을 수가 있다. 법화경은 이어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구할 것을 강조하고, 불자로서 그런 원대한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교만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발심한 보살에게 피안으로부터 중생계에 회향하여 지상에 부처나라(佛國)를 건설하여 다른 중생을 교화할 것을 사명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授記), 줄기차게 설해지고 있는 이런 주제에서 우리는 부처된 사람은 중생을 깨우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강력한 연대성을 느끼고 있음이 느껴진다. 중생에 대한 그런 의식이 곧 커다란 자비이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윤리를 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괴로움의 완전한 해결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존재의 여실한 실상을 깨닫는 데에 있지만, 모든 존재가 중중무진하게 관계되고 있다면 남을 또한 깨우칠 필요가 있다.

마치 업설에서의 선업처럼 서로에게 무한한 공덕(利益)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남이 다 같이 불도(佛道)를 이루어야(自他一時成佛道)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그런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상과 같이 불교윤리는 십업설 - 사제설 - 육바라밀설- 일불승설로 전개되는 중층적 교리조직 속에서 설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 윤리적 표현 또한 다양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악(邪 俗 迷)를 부정하고 선(正 眞 覺)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러한 윤리적 가치판단 또한 한결같이 인간의 순수한 마음(意志)에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로 그 전체의 요지를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선은 힘써 하며(衆善奉行)
그 마음(citta) 스스로 깨끗이 하라.(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 (끝)

고익진 저      불교의 체계적 이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