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피곤할 뿐이다!” “중생은 어리석고 교만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닫자마자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무상정등각의 경지를 체험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명 속 중생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 이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글 첫머리에 인용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독백 속에는, 깨달음을 홀로만 아는, 고독한 고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설법하지 않지 않고 열반에 들어버리면, 무량 겁 동안 중생 구제를 위한 원願을 세우고 정진했는데, 그 뜻이 무색하게 되겠구나!”

 

 

 

 

  무명과 무지의 세간 속에서 홀로 깨어있으니, 그 외로움과 난간함이란! 물론 홀로 열반에 들어 버려 다시 세간에 올 일 없어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발목 붙드는 대목이다. 깨달음 직후 이것을 ‘설법說法을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범천이 등장한다. 그리고 범천은 이렇게 말 “아!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세존이 설법하지 않으신다면!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세상에는 먼지가 적은 중생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는다면 분명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법하지 않으시면 그들조차 쇠퇴할 것입니다.(『율장律藏』대품)”한다. 이 같은 정황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은 직후, 한 동안 심리적 갈등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관련 소의所依 경전들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애초에 설법 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과연 어떠한 계기로 급전환하게 되는가.
  “나만 피곤할 뿐이다.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느냐?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상我相에 집착하기를 스스로 너무 즐겨 자초하는 중생들이, 무아無我 또는 무상無常의 원리를 들으려 할 리 만무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범천이 세 번 간곡한 간청을 한다. 범천의 지극한 간청에 자비심을 일으켜 불안佛眼으로 다시 세상을 본다. 하느냐 마느냐,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 오히려 비방만 받느냐 마느냐 …  이러한 생각의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통찰지로 다시 중생을 봅니다. 번뇌와 죄업이 두터운 중생, 선업과 복덕이 많은 중생, 천차만별 근기根機의 우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런 모습 속에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마음을 돌이킨다. 급기야 “귀 있는 자 들어라! 감로(甘露: 불사不死)〔각주1〕의 문을 열 것이니!”라고 ‘설법’을 천명하게 된다. 무명의 중생이 불성佛性을 밝히게 되면, 더 이상 윤회가 없으니, 한 번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를 상징하는 감로에 비유했다. 시원하고 청량한 감로수로 탐진치貪瞋癡의 불을 끈다는 것이다.〔각주1: 감로甘露란? 달 ‘감甘’자에 이슬 ‘로露’자를 써서 ‘달디 단 이슬’이란 뜻. 이는 옛 인도에서 ‘신의 음료’라고 불렸던 것인데 이것을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성靈性을 얻게 된다. 그래서 ‘불사不死의 음료’라고도 불린다. 하늘이 내린 음료라고 해서 하늘 술, ‘천주天酒’라고도 했다. 핵심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성’의 획득인데, 이는 불교에서 ‘반야지혜’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교에서 ‘감로’라고 하면 열반, 궁극의 깨달음 또는 불성佛性(지혜와 자비)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설법을 ‘감로의 법문’ 또는 ‘감로의 법우法雨’라고 하는 것은 모두 반야지혜의 가피를 말한다. 관세음보살이 정병에 감로수甘露水를 담고 있는 이유도, 중생의 무명번뇌를 감로(반야지혜)의 시원함과 청정함으로 없애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가천도를 위한 시식단을 ‘감로단甘露壇’이라고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무명 속의 영가를 감로(반야지혜)의 빛으로 밝혀,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은 후에, 과연 이것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으로, 예전 자신의 사마타 수행을 지도했던 두 스승,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라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은 늙어서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그럼 이것을 누구에게 설법할 것인가. 좀 전까지 자신의 고행 수행 도반이었던 다섯 비구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바라나시의 북쪽 교외에 있는 사르나트(녹야원)로 향한다. 바라나시는 당시 브라만교의 성지이자 수많은 다양한 수행자들이 집결하여 있던 대도시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의 체험과 방법을 확신하였기에, 호랑이 굴로 향한 것이다.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약 200km의 거리로, 직선거리로 했을 때 서울에서 전주까지 정도 거리이다. 이 길을 석가모니 부처님은 7일 동안 걸어서 가신다. 그 여정의 한 가운데에는 갠지스 강이 있다. 부처님은 전법傳法을 위해 갠지스 강을 건넌다.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에 또 다른 전환이 일어난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전법’의 삶이다.

 

 

 

 

  사르나트는 녹야원鹿野苑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사슴 동산이란 뜻이다. 옛 바라나시의 왕이 사슴 사냥을 즐겼는데, 사슴보살 왕이 새끼를 밴 암사슴 대신 자신을 제물로 삼아달라고 오자 크게 뉘우치고 사슴 사냥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이곳이 사슴들의 천국이 되었고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랑가나타’를 줄여서 ‘사르나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초전법륜’의 광경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될 때는, 법륜과 더불어 사슴이 주요 도상으로 등장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르나트에서 수행하는 다섯 비구를 찾아온다. 다섯 비구(원전에는 ‘다섯 걸식자’라고 나온다)는 멀리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다짐했다. “수행자 고타마는 고행을 버리고 세속 생활로 물러났다. 그에서 우리는 절해도 안 되고, 공경의 뜻으로 일어서도 안 되고, 옷과 음식을 제공해도 안 된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점점 다가오자, 그들은 저절로 일어나 자리를 마련하고 물과 옷과 음식을 준비했다. 깨달음의 수승한 에너지에 부지불식간에 조복한 것이다. “걸식자들아! 그렇게 온 붓다는 수행을 저버렸거나 세속 생활로 돌아간 적 없다. 나는 동등하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붓다이다.(「파사라시 경」)” 아! 바로 여기에 나오는 내용이구나! 문장 앞에는 ‘진리’가 모두 생략되었구나! 

 

  “그렇게 왔으며, 동등하시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도무지 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던 부처님 명칭. 바로 “(진리로서) 그렇게 왔으며, (진리와) 동등하며, (진리를)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저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팔리어 그대로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도 삼막삼붓따사”라고 염불하는 곳도 많다. ‘그렇게 오신 분’은 ‘여래如來(tatha-gata)’로 번역되고, ‘동등하신 분’은 진리와 상응하는 또는 진리와 동등하신 분으로서 공양 받아 마땅한 자라는 뜻으로 ‘응공應供(arhat, 아라한)’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진리를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분’은 ‘정변지正遍知’ 또는 ‘정등각자正等覺者’로 불린다. 여래, 응공, 정변지 등은 <여래십호如來十號>의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부처님을 일컫는) 명칭들이다. 명칭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정의하신 뒤에, “걸식자들아, 귀 기울여라. 죽음 없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나는 가르치겠다. 나는 설법하겠다.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올바로 출가할 때 품었던 궁극적 목표를 바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알고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풍경이 벌어진 곳에는 <영불탑>(차우칸디Chaukhandi 스투파)가 세워졌다. 이는 다섯 비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맞이한 곳’이라고 해서 한문으로 ‘영불탑迎佛塔’으로 번역된다. 굽타시대(4-5세기 AD)에 건축된 것으로, 본래 높고 둥글게 쌓은 벽돌 스투파로 3개의 방평 테라스가 주변을 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테라스의 외벽에는 다양한 조각으로 장엄을 했었다.(도판09, 10: 사르나트 출토 기둥머리 장엄 조각상) 현재에는 스투파 꼭대기에 8각의 기둥 조형물은 1588년 무굴제국 통치자가 다시 만들어 올린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설법인상과 칼을 든 무인상은 사르나트박물관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이상, 영불탑 앞에 세워진 영문 간판 설명에 근거함.) 본래는, 팔각형 기둥이 아니라, 산치대탑처럼 둥근 여의주 형식의 탑이 세워졌고 주변으로 방형의 사원 형식의 공간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코끼리 장엄 조각, 사르나트 출토 / 기마상 장엄 조각, 사르나트 출토

 

3. 〔불교미술〕 <초전법륜상> (I)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르나트에서 다섯 비구에게 하신 최초의 설법 모습. 즉 ‘초전법륜’의 모습은 어떻게 불교미술로 표현되는가? 

 

 

간다라 조각상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초전법륜상>(도판11)을 보면, 사르나트에서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에 부처님이 있고 좌우로 다섯 비구가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 부처님 왼쪽 위로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들고 첫 설법의 현장을 외호하고 있다. 마치 부처님께서 커다란 바퀴를 꺼내 굴리시는 것처럼 초전법륜의 장면을 묘사했다. ‘전법륜轉法輪’을 문자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 대좌 앞에는 사슴 두 마리가 있어 이곳이 사슴동산인 녹야원(사르나트)임을 말해주고 있다.(도판11_1) 다섯 비구는 꼰단냐(Kondanna 또는 안냐꼰단냐, 교진여)·아사지(Assaji 아습바시)·마하나마(Mahanama 마하남)·밧디야(Bhaddhiya 발제)·바파(Vappa: 십력가섭파파)을 가르킨다.(도판11, 도판13_2) 이중에서 꼰단냐는 가장 먼저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해탈한다. 이에 부처님은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첫 설법의 말미에 말씀하시게 된다.

 

 

 

 

 

이 작품(도판13)은 인도네시아 보루부두르 사원의 방광대장엄경(Lalitavistara)  부조 중 <초전법륜> 장면이다. 세계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보루부두르 사원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부조로 장엄하였다. 도솔천에서 하강한 탄생부터 소년기, 청년기, 출가, 6년 간의 고행, 보리도량, 무상정등각, 초전법륜, 일생 동안의 설법 그리고 열반까지를 아름답게 새겨 놓았다. 그 중 초전법륜 장면(도판13_1,13_2)을 보면 다섯 비구가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들과 다르게 깨달음의 상호를 갖추고 있다. 연화좌에 앉아 있으며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의 여의주가 올라와 있고, 머리칼은 나선형 (깨달음의) 에너지로 돌고 있다. 머리에서는 두광(깨달음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먼저 이들에게 ‘중도中道’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수년간 이들과 함께 정진했던 방법이 극단의 고행 수행이었기 때문이다. 수자타의 유미죽을 받아먹은 것은 고행을 저버리고 세속의 쾌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해서 정정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편해도 안 된다. 적당할 것! 

 

 

너무 느슨해도 안 되고 너무 팽팽해도 안 된다. ‘고와 낙’의 두 극단을 여읜 고락중도苦樂中道를 설한다. 그런데 중도에는 수행 방법론상의 중도 외에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중도의 지혜’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후자의 중도란 곧 ‘연기緣起’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니까야 경전에는 수행의 중요 대상들에 대한 중도의 설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고락중도 이외에 ‘유무중도有無中道’ ‘자타중도自他中道’ ‘단상중도斷常中道’ ‘생멸중도生滅中道’ 등이 있다. 이것은 바로 ‘불이不二’라는 불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진리이다. 작년 11월, 이곳 사르나트에 우리 순례단이 도착했을 때, 인솔자인 혜민 스님께서 바로 이 중도를 콕 집어 말씀해 주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설하신 것은 중도입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동시에 보는 지혜입니다.” 있을 수 없는 말씀. 공空과 색色이 하나임을 보는 것, 너와 내가 하나임을 보는 것, 번뇌와 깨달음이 하나임을 보는 것, 차안과 피안이 하나임을 보는 것. 석가모니 부처님은 먼저 ‘중도’를 설하시고, ‘사성제와 팔정도’의 법륜을 굴리신다.

 

 

  세계 각지에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초전법륜상 중에서도 가장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은 이곳 사르나트 출토 <초전법륜상>이다. 바로 실제 석가모니 첫 설법의 장소인 영불탑 유적지에서 나온 것을 사르나트고고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다음 연재에 소개함.)    

 

 

아쇼카왕 석주 사자기둥머리 장식 위에는 본래 법륜이 있었다. 이 법륜을 받치기 위한 사자 장식임을 알 수 있다. 사자후의 법륜을 굴리셨다는 표현이다. 사자상 발받침에도 다시 법륜을 표현해서 ‘초전법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법륜, 다르마 차크라’는 불교미술에 있어 핵심 도상이다.(이것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서는 지난 (강소연 교수의 석가모니 발자취를 따라가는 불교미술 여행) <연재 ④>와 <연재 ⑤>에 집중적으로 소개하였기에 참조하기 바랍니다.)

 

<보살상> 쿠샨 시대 1세기, 250x 105x 34cm,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2미터 50센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신성한 원시적 기운으로 충만하다. 옷은 매우 얇아 거의 나신처럼 보인다. 몸체 그 자체로 강력한 생명력을 표현하였다.

 

<보살상 천개> 쿠샨 시대 1세기, 304x30cm,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소장. <보살상>

바로 옆에는 이 보살상 머리 위에 씌워졌던 천개가 벽면에 전시되었다. 천개의 지름이 무려 3미터가 넘는다. 이처럼 거대한 조각상들이 사르나트의 스투파와 사원을 장식했다는 것을 상상하면, 사르나트가 최초의 설법지로서 기념비적인 장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개는 햇빛을 가리는 차양, 일산에서 유래하지만, 종교적 존상에 있어서는 주인공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에너지’를 조형화한 것이다. 법륜과 근본적으로 상통하는 이미지로, 불상의 ‘광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천개의 형상은 둥근 일원상의 ‘법신’의 바탕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신’을 상징하는 우주의 연꽃, 생명의 연꽃이 활짝 만개하여 피어나고 있다. 연꽃에서는 세상을 장엄하는 다양한 ‘응신’이 식물문양, 동물문양 등으로 화신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