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고구마 수확에 나섰다. 올해는 밭 가장 아래쪽에 조금만 심어 수확량이 많지 않다.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너무 크면 외려 푸대접을 받는 터라 촘촘히 파종했지만 내다 팔 것이 아니니 크면 어떻고 작으면 또 어떠랴. 아들이 호구로 땅을 파헤치면 나는 고구마 줄기를 잡아 끌어올리고, 아내는 흙을 털어낸다. 고구마는 그 껍질이 연약한 터라 조금만 건드려도 벗겨지기 일쑤여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일부는 호구에 찍히고, 뽑아 올리는 과정에서 껍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그래도 고구마 색깔이 짙은 자주색으로 아주 먹음직스럽다.

 

한나절 고무마를 캐고 난 후 곧바로 들깨수확에 나섰다. 지나간 여름 극심한 가문으로 인해 키가 자라지 못했지만 고맙게도 열매는 제법 맺었다. 사실상 포기했던 들깨농사인지라 수확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들깨를 베어서 일일이 끈으로 묶어 비닐하우스로 옮겼다. 들깨를 다 옮기고 나니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이렇게 농촌의 가을은 언제나 부산하다. 봄에는 농사지을 준비와 파종으로, 여름에는 잘 자라고 있는지 가꾸고 돌보는 일로, 그리고 가을에는 거둬들이는 일로 쉴 틈이 없다. 경험한 이는 아는 것이지만, 시골에서 일 없는 날은 없는 법이다.

 

목마을은 서해안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당진의 대표적 명소다.

 

일에 집중하다보니 점심때가 다 되어간다. 때마침 분당에 사는 한 다우(茶友, 차 친구)가 왜목마을에 사는 친구의 집에 내려와 있으니 ‘특별한 점심’이나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왜목마을은 서해안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당진의 대표적 명소로 가끔 구경삼아 다녀오는 곳이어서, 흔쾌한 마음으로 달려갔다.

 

다우의 당진 친구는 왜목마을에서 숙박업과 함께 뱃일을 하는, 배를 두 척이나 가진 뱃사람이었다. 강인한 인상에 긴 수염이 멋지게 휘날리는 전형적인 뱃사람의 포즈를 하고 있다. ‘당진 사람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고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나누기가 무섭게 ‘특별한 점심’을 위해 배에 올라 바다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왜목마을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 배를 세우더니, 다우와 그의 친구는 무엇인가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 끓이기 시작한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이따금씩 배들이 지나가면 배가 한동안 출렁이곤 한다. 배에서 음식을 먹는 색다른 경험이라 모든 과정이 흥미롭다. 

 

드디어 등장한 특별한 점심의 정체는 몇 시간 전에 막 낚았다는 주꾸미를 넣어 펄펄 끓인 라면! 싱싱한 주꾸미 열 마리와 라면 7개를 넣어 끓인 최고의 점심밥상을 출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대접받는 호사를 누린다. 네 사람이 먹기에는 많은 양인데도, 바다 한 가운데에서의 식사라는 특별한 감흥 때문인지, 순식간에 솥이 바닥을 드러냈다.  
   
특별한 점심 후 왜목마을 앞바다를 잠시 돌아보는 또 하나의 특별한 서비스까지 받았다. 왜목마을 앞바다는 동해바다를 연상케 할 만큼 물이 깨끗하다. 짙푸른 바다를 헤치고 달리는 뱃전에 서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광활한 바다를 만끽한다.

 

사실 바다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고 가르침을 주는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다. 인간들에게 소중한 먹거리를 제공해줄 뿐 아니라 그 광활한 포용력으로, 또한 특별함으로 예부터 사람들에게 뜻 깊은 교훈을 제공해왔다.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부처님께서 바다를 비유해 제자들에게 경책의 가르침을 내린 경구가 떠오른다. 바다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순간에 이 경구가 떠오른 것은 가짜승려와 유사승려들이 청정을 생명으로 하는 교단을 장악하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승가의 딱한 현실 때문이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고, 만일 죽은 시체가 있으면 밤새껏 바람이 불어 곧 언덕 위에 밀어붙이는 것처럼, 파라라여 나의 법률도 또한 그와 같아서, 거룩한 대중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는다.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을 행하여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고 일컫고, 사문이 아닌 것을 사문이라고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결국 거룩한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거룩한 대중도 또한 그와 거리가 멀어진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 거룩한 대중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고,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을 행하여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고 일컫고, 사문이 아닌 것을 사문이라고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그는 거룩한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거룩한 대중도 또한 그와 거리가 멀어진다면, 이는 우리 바른 법률의 일곱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하느니라.” -<아수라경 제4> 중에서

 

바다가 시체를 뭍으로 내치지 않는다면, 바다는 머지않아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다는 파도를 일으켜 끝내 시체를 뭍으로 밀어낸다. 그리하여 바다를 생명의 바다, 청정한 공간으로 유지시킨다. 놀라운 바다의 자정능력이다. 부처님은 바다의 이 같은 특성을 승가의 자정 기능에 비유하신 것이다.

 

다 알다시피 한국불교라는 이름의 오래되고 광대한 바다에 범계승과 적주들이 들끓고 있다. 이들의 범계 및 훼불행위는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고, 급기야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과 창피함까지 상실되어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다수의 승가대중들은 애써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다.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상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교주 부처님께서 바다에 비유해 역설하신 승가의 자정기능 중요성을 그 제자들이 외면하는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날 일이다.    

 

뭇 승가는 큰 바닷물
결성된 계율은 그 물가
계율 깨뜨린 자 있다면
승가에 둘 수 없는 법.
마치 큰 바다의 물이
시체와 함께 묵지 않듯.
衆僧大海水　
結戒爲畔際　
若有破戒者　
終不在僧數
譬如大海水　
不共死屍宿  -<대지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