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안사람이 운영하는 도자기 공방을 들렀다.
실습은 기초반과 중급반으로 12명씩 나뉘어 진행하는데
나는 이름만 교장이라 불리며 대청소는 내 몫이 돼버렸다.
기초반 수강생들이 실습에 몰입해 있는데 내가 한 말,
“여러분, 도자기 만드는 것이 재미있습니까?”
“어렵지만 너무 행복해요.”
“흙을 보면 가슴이 설레야 합니다. 머리로 계산해서
도자기를 만들면 멀리 가지 못합니다. 60세가 넘었어도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설레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가슴이 설레야 합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배를 타고 목적지로 항해했는데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서 떠밀려 다니다가 돌아오고 말았다.
그것은 항해한 것이 아니다.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무슨 일에든 가슴 설레며 항해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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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바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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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참고 견뎌 나가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는 땅’이라는 것이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묘미는 사라진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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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에서 때로는 지녔던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묵은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버릴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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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되풀이 속에서 수많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삶에 반복은 없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때그때 단 한 번뿐인 새로운 삶이다.
이 한 번뿐인 새로운 삶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칠 수가 없다.
삶에는 이유도 해석도 붙일 수 없다.
삶은 그저 살아야 할 것, 경험해야 할 것, 누려야 할 것들이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소중하고 신비로운 삶을 낭비하지 말 일이다.
머리로 따지는 생각을 버리고 전존재로 뛰어들어 살아갈 일이다.
묵은 것과 굳어진 것에서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끌어내고 형성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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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보다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이룰 것인가.
이것이 현재의 내 유일한 소망이다.
의식주를 비롯해서 생각이며 생활양식 등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누리고 싶다.
사들이고 차지하고 한동안 쓰다가 시들해지면 내버리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의 순환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고 싶다.
끝없이 형성되고 심화되어야 할 창조적인 인간이
어찌 한낱 물건의 소비자로 전락될 수 있단 말인가.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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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떤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지나간 모든 순간을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다.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자연뿐임을 아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넘어 전체와 만난다.
눈앞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맑은 가난과 간소함으로 자신을 정신적 궁핍으로부터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단순해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불필요한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진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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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 태어나서 혼자서 죽어간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온갖 관계를 지니고
여러 형태의 삶을 살고는 있지만
‘속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뿐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같은 생각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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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철한 자기 질서를 지니고 이 세상을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복잡 미묘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때로는 숲속의 은자처럼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상 얽히고설키면 신선한 뜰이 시들고 만다.
한 그루의 나무를 기를 때도 불필요한 가지는 미련 없이
가지치기해야 하듯이, 우리들의 삶에서도 서로에게
득이 되지 못하는 관계는 끊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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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대지에 다시 봄이 움트고 있다.
겨울 동안 죽은 듯 잠잠하던 숲이
새소리에 실려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우리들 안에서도 봄이 움틀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미루는 버릇과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인간의 봄은 어디서 오는가?
묵은 버릇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때 새 움이 튼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에서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실렸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면서
강원도 수류산방과 일월암을 오르내리며 계셨던 법정스님께서
당신의 사상을 이와 같이 정리하시는구나, 하고 직감했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핵심 언어는 감사와 긍정, 초심회복,
나는 누구인가? 내려놓음, 비움, 존재하는 기쁨,
지금 이 순간의 자각, 용서와 이해와 자비, 진정한 자유인,
차 한 잔의 행복, 간소하게 살기, 단순하게 살기, 홀로 서기,
여행자로 훌훌 떠나기, 새롭게 거듭나기 등등 이다.
이러한 핵심 사상 속에서 수행하신 분이 법정스님이다.
나는 제자로서 이것을 법정선(法頂禪)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