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별구경을 하러 마당으로 나간다. 달빛 한미한 초승이나 그믐 무렵엔 별들이 더 또렷하다. 소동파의 묘사처럼 달 밝은 밤에는 별이 드문 법이지만[月明星稀] 달구경이 주는 매력 또한 간단치 않으니 이래저래 산골의 밤은 즐겁다. 비 오거나 흐린 날이 아니면 식구와 함께 밤하늘을 감상하려 마당에 나가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새집 짓자마자 별과 달을 감상하기 위한 용도의 의자를 4개나 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식구 사는데 의자를 넉넉히 마련한 것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서다.

 

 

 

산골의 하늘에는 별들이 많다. 많다기보다는 잘 보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유난히 밝은 별 가운데 하나가 목성(木星)이다. 목성은 태양계에서 다섯 번째에 위치한 행성으로, 행성 중에서 가장 커 태양계의 왕별로 불린다. 목성은 지구에서 다른 행성들에 비해 비교적 가깝고 또한 크기 때문에 매우 밝게 빛난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친숙한 별이었다.

 

목성은 태양, 달, 금성을 제외한다면 하늘에서 가장 밝다. 목성보다 금성이 더 밝기는 하지만 금성은 초저녁이나 새벽 무렵에만 보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보기가 어렵다. 반면 목성은 다른 별들처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며 그 움직임도 크지 않아 친숙하게 다가온다.

 

옛 사람들은 목성을 ‘세성(歲星)’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별자리 하나씩을 옮겨가는 별이란 뜻이다. 목성은 왜 1년마다 별자리 하나씩을 옮겨갈까? 우주 저편 멀리 있는 별들은 지구에서 거의 무한대의 위치에 있는 것과 같아서 눈으로 볼 때 그 위치를 바꾸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태양계 내의 행성들은 행성 그 자체의 움직임과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치를 바꾸기 때문이다.

 

태양계 위성 가운데 목성의 움직임이 유독 관심을 끈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목성은 태양을 12년에 한 번씩 돈다. 정확한 공전주기는 11년 10개월이다. 예컨대 처녀자리에 위치했던 목성이 황도를 따라 움직여 다시 처녀자리로 돌아오려면 12년 걸린다는 이야기다. 황도, 즉 하늘에서 태양이 한 해 동안 지나는 길은 12개의 별자리로 구성돼 있다. 그러니까 목성은 12년에 12개의 별자리를 움직여야 하므로 1년에 한 개의 별자리를 이동한다.

 

옛 중국 사람들도 목성이 하늘을 12년에 한번 돈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12등분한 구획인 12차를 차례로 1년에 하나씩 거쳐서 간다고 여겨 세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즉, 목성이 머무르는 12차의 별자리의 이름으로 그 해를 불렀는데, 이것이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이다. 고대기록에 보이는 세재성기(歲在星紀)·세재석목(歲在析木) 등은 그 해가 목성이 각각 12차의 하나인 성기(星紀), 석목(析木)에 머무르는 해라는 뜻이다. 그 뒤 하늘의 12개 구획을 12지(支)로 불러 이와 10간(干)을 연결하여 구별한 60갑자를 써서 해를 부르게 되었다. 이를테면 세차임진(歲次壬辰)·세재계축(歲在癸丑) 등의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예로부터 한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해와 별, 달을 단위로 하여 불렀다. 세월이 흐르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세성도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세성은 세월의 확대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시간을 부여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천체다.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별과 달이 사람에게 시간을 부여하고 삶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천체가 부여하는 시간과 리듬을 간파했을 뿐이다. 사실 이를 간파하고 활용했다는 것은 사람이 왜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고대로부터 인류는 해와 별과 달의 움직임을 살펴 역법(曆法)을 발달시켜 왔다.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고 다시 떠오를 때까지는 하루이고, 해 그림자가 가장 짧은 동지로부터 다시 동지가 되풀이되는 기간은 1년이고, 달이 만월인 데에서 다시 만월이 되기까지는 한 달로 불렀다. 이리해 시간을 구성하는 기본 마디인 1년·1월·1일이 생성됐으며 이들 시간요소는 모두가 해와 달을 시각화한 상상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시간의 흐름을 '연월'이라 하지 않고 '세월'이라고 불렀다. 세(歲)는 보통 1년의 다른 말로 알고 있지만 이 말이 처음 나온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목성이 우주공간을 1년 치 간만큼의 거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는 목성의 공전주기는 12년으로 측정(실제로는 11.86년)되었고, 그 12년을 하나의 시간마디로 삼는 1기(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렇게 옛 선조들은 하늘의 별들에다 12년의 시간마디를 부여했으니 가히 시간의 상상력이 엮어낸 기막힌 문화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해마다 쥐띠·소띠 하는 12가지 띠 문화가 생긴 것도 모두 목성의 시간마디가 가져다준 상상력의 결과다. 고대 로마 이래 유럽의 달력이 1년 동안의 시간마디에 물고기자리·양자리 등 열두 조디악(zodiac, 獸帶)을 엮은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서양 천문학이 만든 12궁 별자리가 태양의 길인 황도대를 따라가는 요소이며 1년이란 시간길이를 지닌다면, 동양 천문학에서 개발한 12띠 문화는 목성의 길에다 만든 시간의 이정표이며 12년간의 시간길이를 갖는 것이다. 두 문화가 비슷하지만 근원이 전혀 다른 시간문화를 엮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연(年)은 태양이 일주천하는 것이고 세(歲)는 목성이 일주천하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몇 번의 성기(星紀)를 지나갈 것인가. 목성이 다섯 번 돌면 60년이고 이를 기리는 풍속이 회갑(환갑)연이다. 이런 문화 기반으로 인해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연월'이라 하지 않고 '세월'이 간다고 한 것이다. 또한 이는 우리 모두가 별에서 나와 별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우주로 확장되는 시대에, 어쩌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용어로 ‘세월’과 함께 ‘세성’을 사용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오늘 밤, 세성(목성)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세월 따라 한 해가 가고
세성 따라 한 생이 가네.

 

흘러가는 저 왕별
저 자리 다시 오는 날,
나도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을까?

 

다시 올 왕별,
저 왕별일까?
다시 설 나,
나일까?

 

세월 따라 청춘은 갔고
세성 따라 이생도 저무네.

 

-졸시 ‘세성(歲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