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세상에는 예쁘다고 소문난 곳이 수없이 많아서, 모두 보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어진 조건에 맞춰 가야할 곳의 순서를 정해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여행에서 얻은 즐거움이 생각에 못 미칠 때에는 후회가 일기도 하는데, “예쁜 곳”을 보는 눈의 높이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곳을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 검색을 거쳐 방문했던 사찰 두 곳이 소문난 잔칫집에 다녀 온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른 곳을 방문했더라면 더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방문한 서산 부석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는데, 서해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지방도로 〈무학로〉에 세워진 부석사 입구 이정표를 보고 일차도의 마을길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오리라는 걸 어찌 알았는지 좌우 양쪽에서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활짝 피어 반겨주었습니다. 

 

 

 

부석사를 품은 도비산(島飛山) 아래 마을은 간척하기 전에는 서해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으로, 〈도비산〉이라는 이름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 때, 큰 산조차도 움직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여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도비산까지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 산에 박힌 ‘작은 돌은 물론이거니와 큰 돌까지도 물에 떠다녔다(부석 浮石)’는 전설도 그럴 듯합니다.     
해발 352m의 낮은 도비산에 자리하고 있는 부석사 위치가 겨우 100m 정도의 높이이기는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던 수면에서부터 오르는 격이라 제법 숨을 헐떡거리며 일주문에 도착했습니다.

 

 

 

 

 

속세와 서방정토가 나누어지는 일주문에 서서 마음을 가다듬은 후, 극락전 쪽을 향해 합장하고 반배를 드렸습니다. 《도비산 부석사》편액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난 뒤, 눈에 띤 또 하나의 편액 《三日修心○○》.
‘삼일동안 마음을 닦는다’는 뜻의 〈삼일수심〉은 쉽게 읽어낼 수 있었지만, ○○ 두 글자가 무엇인지는 집에 돌아온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삼일수심〉은 야운선사 자경문(自警文)의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물 일조진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어도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가 어원이었습니다. 
처음 마음을 내는 순간에 올바른 깨달음을 이룬다(初發心時便正覺)는 게송도 있으니, 마음을 사흘 동안 잘 닦는다면 천년은 물론 몇 겁에 걸쳐 쌓인 나쁜 업보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 두 글자는“”으로 도량(道場)을 뒤집은 글자였습니다. 즉 현판에 쓰인 글자 《삼일수심도량》은 사흘 동안 마음을 닦아 천년의 보배로 삼고, 평생 모은 재산이라도 네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는 사찰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사찰을 방문하여 일주문을 지나며 만나는 사천왕과 금강역사를 부석사에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천왕에게는 불자 수호와 청정도량을 지킬 것을, 금강역사에게는 불자들의 서원이 금강처럼 깨지지 않도록 지켜줄 것을 명하셨기에 많은 사찰에서 천왕문과 금강문을 두고 있습니다. 오랜 정통사찰인 부석사에 상징적인 문이 없는 것은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사찰을 찾을 때마다 왕방울 눈을 부라리고, 울퉁불퉁한 근육을 내보이며 격노한 표정의 사천왕과 금강역사상이 보이지 않아, 아이들도 두려움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사찰이 부석사인 듯싶습니다.

 

 

 

 

 

큰 나무들이 멋진 경치를 보고자하는 인간의 조망권을 해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가지를 뻗어냈습니다. 그렇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를 벗어나 곳에서 서쪽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높은 기둥을 놓아 높은 누각을 지었으니, 바로 운거루(雲居樓)입니다. 넓게 펼쳐진 평야와 그 평야를 가로질러 반짝이며 부남호로 흘러가는 강줄기가 한 눈에 보이는 것은 이름 그대로, 운거루가 구름 속에 자리한 누각이기 때문입니다. 회랑 양식으로 길게 지으면서 두 칸을 공중에 띄워 계자난간을 설치한 운거루는 부석사를 찾은 탐방객에게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멋진 건축물입니다.

 

 

 

운거루를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돌기둥에 대들보만 올려있는 건물(?)이 나오는데, 돌기둥을 감고 올라간 등나무는 대들보에 꽃봉오리를 탐스럽게 피워 놓았습니다. 등꽃이 라일락만큼이나 짙은 향내를 뿜어내는 꽃임을 알기에 까치발을 하고 만져보니 진짜 꽃처럼 보이는 조화였습니다. 돌기둥에는 건물 안으로 입장은 위험하다는 띠를 둘렀고, 기둥 하나에 세워놓은 목판에는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莫存知解)》라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선 사람이여, 알량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털어버리게나’가 되겠지요? 먼지구덩이 속에서 익힌 쓸데없는 지식은 도움이 안 되니, 그것들을 비워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주문 옆에 있으면 딱 어울릴 이 목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현판은  《도비산 부석사》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세우기 전에 세워져 있던 사자문(예전의 일부문)에 걸려있던 주련입니다.

 

 

 

 

.

전통찻집 다원(茶院)을 지나치면 오르막길 끝에 설법전과 금종각이 보이는데, 금종각은 막돌로 석축을 쌓아 언덕을 고르게 만든 터 위에 지었습니다. 물위에 떠다니던 돌이었는지도 모를, 막 생겨먹은 크고 작은 돌을 버리지 않고 맞춰쌓아 기단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가득한 가공된 아름다움은 감히 쫒아올 수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누하주는 화강암으로, 누상주는 나무기둥인 2층의 누각이면서도 금종루라  아닌 《금종각》이라는 편액을 걸었고, 불전사물인 범종, 운판, 목어, 법고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곳 금종각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함은 법고 아래 서있는 동물(표범?)입니다.

 

 

축생을 제도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법고는 바닥에 놓지 않고, 높이 달아매거나 성스럽게 대하는 마음으로 법고대(法鼓臺)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법고를 등에 올려놓는 동물로 사자나 해태 그리고 거북이 같은 동물은 본적이 있지만 표범은 처음 보았습니다. 늠름한 자세로 곧게 세운 상체, 앙가슴과 겨드랑이 뒤에 흩날리는 구름 그리고 이빨을 드러낸 표범의 울부짖는 자태에서 법고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금종각 법고를 받치고 있는(사실은 법고대와 달리 표범은 법고를 받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표범 옆에는 고양이가 타고난 게으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고양이와 마주하다보니 법고를 지켜주는 동물은 표범이 아니라 고양이였다 싶어졌는데, 이 고양이는 부석사에 도착했을 때부터 방문을 마칠 때까지 법고를 칠 때 밟는 발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