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기운 섞인 바람이 불면서, 꽃 보는 재미가 부쩍 줄어들었다. 화단의 국화는 벌써 시들었고, 배롱나무 꽃들은 한 나절이 다르게 생동감을 잃어간다. 뒤란의 무궁화도 몇 송이 꽃을 가까스로 피워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중이다. 건넛집 할머니에게 몇 송이 얻어다 심은 돌단풍 꽃만이 뒤늦게 꽃송이를 활짝 피우고 있다.

 

꽃이 드물어지면서 급해진 건 벌과 나비들이다. 뒤늦게 핀 손톱만한 고추꽃잎과 서리태 꽃을 찾아 부리나케 옮겨 다니는 녀석들의 몸부림이 애처롭다. 사정이 이러니 이 녀석들에게 풍성한 돌단풍 꽃은 반갑기 그지없을 터. 꽃잎 하나에 두세 마리의 나비들이 날아들어 다투듯 앉았다.
 
멋진 자태를 한 나비들이 몰려와 꽃 한 송이에 앉아 있는 광경이 재밌어 가을볕 잔잔히 흐르는 잔디밭에 선채로 한동안 우두커니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나비들의 날갯짓을 집중해서 바라본 것이 처음인 듯하다. 그동안은 이런 모습들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곤 했던 것이다.
10여분은 족히 넘게 나비들을 바라보았을까. 나비들의 날갯짓은 점점 더 현란해지고, 꽃조차 춤을 추듯 일렁인다. 나비와 꽃이 어우러져 네 박자 블루스를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보다 관능적인 라틴댄스를 추는 것 같기도 하다. 시나브로 시선이 몽롱해지고, 꽃과 나비가 엉겨 붙듯 겹쳐지면서 어떤 것이 꽃인지, 또 나비인지, 내가 나비와 꽃을 보는 것인지, 나비와 꽃이 나를 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몽환에 빠져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냥 정신 줄을 놓은 채 꽃과 나비의 어우러짐에 몰입해 있다가, 고추밭을 헤치고 불어온 하늬바람에 흔들린 풍경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시울을 훔쳤다.

 

“언제인가 장주(莊周; 장자의 이름)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자 제물론> 제2 
    
자연스럽게 장자(莊子, 기원전 360?-280?)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장자> 제물론(齊物論) 제2에 나오는 것으로,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중천 김충렬 선생이 생존해 계실 적에 재밌게 들었던 ‘장자 강의’를 통해 비로소 그 심원한 의미를 어느 정도 알게 된 후, 나는 점심 식사 때가 되면 ‘장자의 나비’라는 간판을 단 인사동 음식점을 즐겨 찾곤 했었다.
 
호접지몽은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겉보기에 구별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장자는 이렇게 그가 나비이고, 나비가 곧 그인 경지가 강조되는 세계를 호접지몽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 보였다. 장자는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 즉 만물의 변화라고 불렀다. 그는 유일 절대의 도의 입장에서 현실세계의 갖가지 현상, 즉 시비‧선악‧미추‧정사‧빈부·화복‧길흉‧각몽‧생사 등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가를 뚜렷이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려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대붕(大鵬), 즉 대자유인의 조건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데 있다고 주장한 장자의 가르침은 일단 매력적이다. 그의 철학에서 상대적인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인 가치를 아예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상대적인 것이 의미가 없음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적인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비는 고전(古典)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대표적이다. 나비효과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예에 빗댄 표현이다. 이후 나비효과는 ‘작은 사건 하나에서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라는 뜻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나비효과 이론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61년 기상 관측을 하다가 생각해 냈다. 그는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렌츠는 대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온과 기압, 기압과 풍속 등을 나타내는 방정식을 만들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수치의 차이가 전혀 엉뚱한 그래프를 그려 놓았던 것이다. 그는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변수도 기상 현상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런 사실을 1952년 미스터리 작가인 브래드버리의 시간여행에 관한 단편소설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에서 처음 사용한 ‘나비효과’라는 용어를 차용해 명명했다.

 

이후 나비효과는 기상분야를 넘어 글로벌 시대의 특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용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의 재채기로 세계 경제가 독감에 걸렸다’던가, ‘미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되니 세계 주요국들의 주식시장이 일제히 급락했다’는 등의 현상들을 사람들은 ‘나비효과’라는 용어로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돌단풍 꽃에 모여 앉아 나비들의 날갯짓이 참으로 오묘하고 어지럽다. 저 날갯짓이 내게, 또 나의 주변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그 결과가 짐짓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