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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도와 사도

선업은 인간사회에서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지만 그러한 과보는 절대성을 띠지 못한다. 인간의 선악판단이 상대적인 뿐만 아니라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노력(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업을 지어도 인간은 덧없음(生死)을 면할 수가 없다. 업설이 지닌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을까? 불교는 업설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다시 이 문제를 파고든다. 그것이 사제 팔정도이다.

모든 것이 덧없고 덧없는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운 것은 나(我)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것을 나라고 집착하여(我執) 업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인간 존재는 그 자체가 힘든 일(苦)이 아닐 수 없고, 그러한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덧없음) 아무리 선업을 지어도 덧없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속의 아집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아집의 타파를 통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

거짓 나의 부정은 참 나의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참 나는 과연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금껏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 아닌 것을 나라고 집착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그러한 참 나를 깨우쳐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중층적인 법문을 시설(施設)하고 있다. 참 나는 거짓 나의 부정을 통해 도달된다는 것이다. 괴로움의 근본적인 해결은 이러한 아집의 부정, 정사(正邪)의 결택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다. “네 가지 성스러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존재(五趣蘊)는 괴로움이요(苦聖諦), 그것은 아집에서 일어난 것이니(集聖諦), 마땅히 멸해야 하고(滅聖諦), 그러기 위해서는 도를 닦지 않으면 안 된다(道聖諦), 그 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언어(正語) 바른 직업(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기억(正念) 바른 집중(正定)의 여덟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러한 사제 팔정도는 사회적인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업설과는 달리 한 인간의 내심(內心)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사회윤리에 무관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팔정도를 볼 때, 그것이 띠는 강력한 사회윤리적인 성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팔정도가 철저한 무아실천의 길이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한 아집의 타파는 팔정와 같이 정사를 결택하는 윤리가 되어야 한다.

또 업설에서 선악의 판단은 각자의 마음(意志)에 맡겨져 있지만,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악이요,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이 선이다. 그렇다면 팔정도는 진정한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움의 근본적인 소멸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팔정도의 구성은 십업설을 계승한 양상이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은 의업(意業), 바른 언어는 구업(口業)에, 바른 직업 바른 생활은 신업(身業)에 해당되어, 십업설의 신구의 삼업을 토대로 조직된 것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불교의 윤리적 교설은 선악의 윤리에서 이렇게 정사의 윤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계속)

고익진 저       불교의 체계적 이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