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과 같은 질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탐貪, 진瞋, 치痴의 마음’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마라(Mara)’라고 표현하시는데 이는 ‘마군(魔軍 악마의 군대)’이란 뜻이다. 악마의 무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평생 동안 쉴 새 없이 공격을 퍼 붓는다. 사실 시달리면서도 시달리는 줄도 모른다. 우리가 세세생생 갈고 닦아놓은 집착과 욕망의 길은, 이미 미끄럼틀처럼 견고하게 닦여있어서 아주 조그마한 자극에도, 제 갈 길을 순식간에 가버린다. 이미 우리가 장착하고 있는 육근六根에는 전생前生에서부터 가지고 온 업식業識 또는 업장業障이 심어져 있다. 그렇기에 중생은 (지혜의 빛을 밝히지 않는 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육근: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되는 여섯 개의 뿌리로 눈眼·귀耳·코鼻·입舌·몸身·의식意을 말한다. 육근과 육경(六境:형상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관념法)이 만나 우리가 체험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종횡무진 들끓는 다양한 마음의 한 가운데에는 ‘나’라는 ‘아상我相’이 있다.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또는 ‘치痴(어리석음)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리석음 중에서도 가장 최상의 어리석음이라 ‘근본 무명’이라고 하고, 이것은 ‘내 몸이 있다고 착각’하기에 ‘유신견有身見’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마왕은 ‘무명’이고 마왕의 군대는 ‘무명의 작용’이다. 무명은 ‘오온五蘊’으로 작용한다. 부지불식간에 작용하여 삽시간에 휘감는 오온의 덩어리. 오온이 뱉어놓은 번뇌 망상이 실제인 줄 알고 우리는 정신없이 휘둘린다. 그리고 한 번 일어난 무명의 마음은 그냥 가지 않는다. 지나간 길의 자국들을 선명하게 남기도 간다. 이렇게 무명이 남긴 그림자들은 차곡차곡 쌓여 업장이 된다. 이것은 윤회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업장소멸’이란 말이 있고, ‘무명타파’라는 말이 있다. 궁극의 업장소멸을 하면, 궁극의 무명타파를 하면 드러나는 것은 열반이다. 무명을 바탕으로 한 업장의 힘이 윤회를 하게 만드니, 이것을 타파하면 윤회는 없다. 이 세상 다시 볼 일 없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이처럼 무명과 지혜의 험난한 싸움의 과정이다. 지혜가 이기면 결과는 열반이고, 무명이 이기면 결과는 윤회이다. 열반은 자유이고, 윤회는 고통이다. 자유를 택할 것인가. 고통을 택할 것인가. 유아有我와 무아無我의 대결. 유아有我를 만드는 ‘무명과 무명의 작용(오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왕과 그의 군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방법을 밝혀놓으셨다. 마왕이 꼼짝 못하는 두 가지 무기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이다. 사마타는 고요한 마음 ‘선정禪定’을 말하고 위빠사나는 통찰해 보는 ‘지혜智慧’를 말한다. 이러한 ‘선정과 지혜’를 간략히 줄여서 합쳐 말해 ‘정혜定慧’라고 한다. 또는 ‘지관止觀’이라고 한다. 정혜쌍수定慧雙修와 지관겸수止觀兼修,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일컫고 있는 말이다.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이다. 이것을 시작하는 지름길로 석가니 부처님은 ‘아나빠나삿띠’라는 호흡 관찰법을 제시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실참법으로 제시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경전들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6에 언급함. 참조〕 마음을 일단 호흡에 말뚝 박아 두는 방법이다. 부지불식간에 집착과 욕망에 휘둘려 요동치는 마음을 잡아두는 방법이다.

 

<붓다를 향한 마라의 공격> 무불상시대, 2세기, 아마라바티, 기메박물관 소장, 파리, 프랑스. 붓다는 보리수와 빈 의자만로 표현되고 있다. 이미 무아를 증득한 붓다이기에, 마라의 공격에 동요되지 않는다.

 

 

 

마왕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大정각에 들려고 할 때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행하는 기간 내내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드디어 완전한 열반에 들 정도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선정과 지혜의 힘이 막강해졌을 때,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소멸하게 된다. 이 순간을 표현한 것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모니 성도상>이다. 궁극적으로 마왕을 항복시키고 궁극의 열반에 든 상징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성도상>은 곧 <항마촉지인상>이다. 『상윳따니까야』에는 마왕을 갈애(渴愛, 딴하), 혐오(嫌惡, 아라띠), 탐욕(貪欲, 라가)라고 언급한다. 그 외 『숫타니파타』 등 초기불전에서는 애욕(까마), 혐오(아라띠), 기갈(꿉삐빠사), 갈애(딴하), 혼침 수면(티나밋다), 공포(비루), 의혹(위찌낏차), 위선과 오만(막카탐바)의 8가지로 세분하기도 한다. 이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마왕의 내용들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느 것이건 간에 ‘아상(我相)으로서의 무명’과 ‘이것을 유지하려는 집착의 작용’이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 마지막 구절에는“나의 마음은 열반에 이르러 ‘모든 욕망’은 파괴되어 버렸네(법구경153·154)”라고 하셨다. 즉, ‘모든 욕망(갈애와 집착)’이 마군임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음의 요소’로서의 마군은 ‘의인화擬人化’되어 조형적으로 표현된다. 깨달음의 과정을 (의인화된) 마왕과의 일대 접전으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마명의 『붓타차리타』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석가모니의 깨달음 성취를 영웅적 승리 또는 영웅적 서사시처럼 표현하고 있다. 무불상無佛像 시대에서 유불상有佛像 시대(무불상시대라는 학술용어는 널리 잘 알려져 있지만, 유불상시대라는 기존의 학술용어는 없다. 내용 전개상 맥락의 편의적 이해를 위해 필자가 만들어 쓴 점, 양지하기 바란다.)로 옮겨가는 데, 소의所依 경전 역할을 한 초기 대승 경전이 아닌가 사료된다. 『붓다차리타(한문제명 佛所行讚)』와 『랄리타바스타(方廣大莊嚴經 또는 普曜經)』에서는 특히 ‘마왕’과의 싸움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이는 신화적 구성을 가지고 전개되는데, 선善의 진영과 악惡의 진영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이에 대한 영웅적 물리침이 칭송된다. 석가모니 득도의 순간을 영웅적 대서사시와 같은 극적인 세팅으로 풀어낸 것은, 아마도 고대인도 베다시대 문학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붓다의 승리, 마라의 패배> 19세기, 루빈 미술 박술관. 깨달음에 이르려는 붓다를 향해 마군들이 총 공격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겨눈 날카로운 창과 칼의 끝은 연꽃(깨달음의 꽃)이 막고 있다. 

 

 

붓다차리타에서는 마왕을 ‘오욕의 자재천왕(五欲自在王)’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해탈을 방해하는 마왕의 정체를 오욕(五欲)으로 기술한다. 오욕은 성욕·식욕·명예욕·수면욕·재물욕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다섯 가지 대표적 욕망이다. 마왕이 쏜 ‘오욕의 화살(五箭)’에 “마치 바람처럼 조금이라도 스치기만 해도 그 마음을 미친 증세를 낸다(小觸如風吹 其心發狂亂)”라고 한다. 또 마왕은 “나의 화살 소리를 듣기만 해도 혼미하여 본성을 잃게 된다(聞我此箭聲 惛迷失本性)”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자신의 세 딸로 ‘애욕’을 일으키고, 그의 군사들로 위협하여 ‘공포’를 일으킨다. 마군들의 이 같은 모습들은 초기 간다라의 조각상에서부터 매우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또 극적인 구성의 불화로도 자주 그려지게 된다.
마군들은 창, 칼, 방망이 등 갖가지 무기를 갖추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한꺼번에 달려듣다. 마군들의 모양새도 참으로 기괴스러운데, 짐승이나 괴물 또는 귀신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마귀로도 나타난다. 온갖 수단괴 방법을 동원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을 ‘동요’시켜서 고요한 선정의 마음을 깨뜨리려 하하고 있다.

 

 

 

물론, 마왕과 그 군대의 특징은 ‘동요’이다. 끊임없이 계속 변하고 흔들리고 조합하고 해체하고 움직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선정과 지혜의 특징은 ‘부동不動’이다. 영향 받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다. 부동지不動地의 마음, 불퇴전지不退轉地의 마음, 청정한 적멸의 마음이다.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 성도상은 ‘부동’의 강건함이 서려 있다. 깨달은 자만이 갖는 ‘부동의 마음’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에서는, 이 꿈쩍 않는 ‘부동의 힘’을 강조하는 <항마품> 게송을 만날 수 있다.(지난 연재 게재하여 본 연재에서는 생략함.)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반야지혜를 완성하여 12연기를 보시고 나서, 그 자리와 그 주변을 맴돌며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신다.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상태로 7주를 머무셨다고 전한다. 먼저 첫째 주 동안은 보리수 밑에서 12연기의 순관 역관을 관찰하셨다. 두 번째 주에는 보리수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그곳에 <아니미샬로짜나 탑>이 세워져 있다)에서 수행 동안 자신을 지켜 준 보리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리수를 응시했다고 한다.

 

 

 

셋째 주는 경행을 하며 지내셨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연꽃이 피어나 발을 받쳐주었다. 마하보디 사원 북쪽 면에는 <둥근 연꽃 자리>가 일렬로 늘어서 있어서, 이곳이 부처님께서 경행한 자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주에는 보리수에서 서북쪽 방향 인접한 곳에 천인들이 마련해준 <라따나가라 궁전>에서 머무실 때 몸에서 6가지 찬란한 색의 광명이 발산되었다고 한다. 다섯째 주에는 아자빨라 나무(반얀 나무) 아래에서 교만한 바라문을 제도하신다.   

 

 

 

이어서 여섯째 주에는 무짤린다 나무 아래로 가서 계속해서 깨달음의 환희를 누린다. 그런데 이때가 마침 장마철이라 7일 동안 큰 구름이 일고 폭우가 내라고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러자 나가(Naga 용왕)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펴서 서가모니 부처님을 감싸 보호하며 “냉기가 깨달은 자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소서. 더위가 깨달은 자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소서. 파리와 모기, 소나기와 땡볕, 그리고 도마뱀이 깨달음 자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했다.

 

 

 

 

무짤린다 용왕 연못에는 그가 부처님을 보호하는 조각상이 연못물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무짤린다 용왕으로 불리는 부처님의 수호신은, 특히 동남아시아 불교미술 전통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도상으로 정착하게 된다. 일곱째 주에는 라자야타나 나무로 옮겨 법열法悅을 누리는데 두 상인 타푸사와 발리카가 와서 쌀떡과 꿀을 공양했다. 부처님은 이를 받으시고 이들을 첫 번째 신도로 거두신다.

 

 

 

 

이렇게 7주가 지난 후, 부처님은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서, 자신이 경험한 깨달음의 진리와 그 세계가 너무 심오하여 이것을 설법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때 바라문 사함 파띠가 나타나 자비심으로 설법할 것을 간곡히 권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대목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설법을 위해 사르나트로 향하게 된다. 바야흐로 전법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지게 된다. <다음 연재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