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현대문명, 무엇이 문제인가?
여는 말
급한 볼 일이 생겨 서울에 다녀온 일이 있다.
한 나절 시간이 나서 예전에 자주 찾아가 위안 받곤 했던
관악산을 S대학교 정문 쪽으로 올랐다.
그런데 관악산 산자락은 현대문명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망가진 채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인데 산자락에 S대학교 신축건물들이
자연을 무시하고 깔보듯 들어서 있었다.
이른바 학문의 전당이 자연을 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도대체 학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문명의 폐해는 자연의 훼손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데까지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거듭거듭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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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현대인으로서 그 대열에 처지지 않으려면 지식과 정보에
어둡지 않아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의 양이 광대하면 오히려 그곳에 매몰되어
인간이 부재하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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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들어온 곳은 보배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바깥소리에 팔리다보면 내심(內心)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다보면 개인의 창의력을 묵히게 되어
인간 그 자체가 시들어간다.
<산방한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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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있다.
둘레에는 삶의 율동과 지혜, 인간미와 흙냄새 등
현실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지식과 정보와 가상공간이 있을 뿐이다.
차디찬 정보는 있어도 따뜻한 삶의 실존이 없다.
이것은 과학문명시대라는 우리 시대의 단적인 현상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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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이르러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심성과 생활환경이 말할 수 없이 황폐화된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저지른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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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이탈한 인간은 그만큼 부자연스럽다.
커다란 생명체인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잃으면
자연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을 깔보게 된다.
우리가 어머니인 대지에 소속되려면
먼저 그 대지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돌아가 그 품에 안길 대지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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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불편함과 모자람으로
살아가는 나는 오히려 다행한 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명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자연과 더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에는 독성이 들어 있어 점진적으로 사람을 시들게 만든다.
자연은 원초적이며 건강한 것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의지처이다.
인간의 머리와 손으로 만들어낸 문명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그 문명으로부터 배반을 당할 때가 반드시 온다.
문명은 온전하지 못한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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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 죽이기도 한다.
사냥이나 낚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요즘 사람들은 ‘레저’라고 한다.
여가를 이용한 놀이와 오락이라는 것이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절박한 생사의 문제인데
그것을 놀이와 오락으로 즐기고 있다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산토끼는
어린아이처럼 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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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오늘의 문명에
어떻게 삶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암담하다.
항상 크고 많고 빠른 것과 새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
만족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면서 소모적이고 향락적인 우리들.
생명과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면서
단 하나뿐인 삶의 터전인 고마운 지구를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만들어가는 오늘의 문명에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중에서
맺는 말
자신의 둘레를 배려하지 않는 염치없는 인간부재의
문명세상이 되어가고 있어 두렵고 씁쓸하고 걱정이 앞선다.
스님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들게 된다.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서로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
산중에 산다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더불어 답답하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