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타는 뙤약볕을 잘 견뎌내고, 모처럼 내린 장대비에 신바람이 난 보리수(菩提樹) 한 그루가 현묘재 화단에서 자라고 있다. 오랜 가뭄에 혹시라도 말라 죽을까, 몇 달 내내 물을 챙겨 주는 등의 정성을 기울였다. 하루는 보리수 이파리에 진딧물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방세재를 희석해 일일이 제거해준 적도 있었다. 뭘 기르는 데는 영 젬병이지만 이 보리수만은 3년 넘게 잘 키우고 있는 중이다.

 

 

 

현묘재의 보리수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함께 경전을 공부한 도반이었던, 서울 사는 동인 거사가 부처님의 성도지인 인도 보드가야(부다가야)에서 보리수의 열매를 몇 개 국내로 들여와 정성을 다해 싹을 틔운 후, 어느 정도 자란 후에 내게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귀한 보물을 받아 서울에서는 화분에서 키웠고, 당진에 내려와서는 다실에 붙은 온실에 심어 이태를 보냈다. 온실이지만 겨울에는 얼어 죽을 염려가 있어 비닐로 방한장치를 해주고 틈틈이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봄, 날이 풀리면서 이 보리수를 화단으로 옮겼다.

 

실내에서만 자란 탓인지, 처음 화단으로 옮겼을 때는 몸살을 몹시 앓았다. 이파리가 마르는가 싶더니 며칠 새 거의 다 떨어졌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외 화단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옮긴 것인데, 그 순간 몹시 후회를 했다. 죽겠구나, 체념을 하고 며칠을 보낸 후 다시 화단으로 가 살펴보니, 세상에나! 나무 아래 부분에서 새로운 이파리가 돋는 게 아닌가.

 

이후 보리수 잎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내겐 하나의 낙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 잎이 돋아나고, 자랐다. 처음에는 새롭게 돋아나는 이파리의 모양이 인도 보리수와 달라지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인도 보드가야에서 보았던 보리수 잎 그대로의 모양을 한 보리수 이파리가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보리수라는 이름의 나무는 서너 가지로 추릴 수 있다. 먼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의 보리수, 즉 인도보리수(공식 학명)가 있고,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며 빨간 열매를 맺는 보리수나무도 있다. 인도보리수와 우리나라의 보리수의 생김새는 서로 다르다. 인도보리수는 뽕나무 과의 상록활엽수인데, 잎이 넓고 무척 두꺼운 편이다. 그러나 인도보리수는 우리나라에서는 기후가 맞지 않아 월동이 불가능하다.

 

 

 

아무려나. 부처님 성도지 보드가야를 찾아가야만 친견할 수 있는 보리수의 분신이 현묘재 화단에서 펄펄 살고 있다는 것이 어찌나 대견하고 기쁜지 절로 쾌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보리수를 향해 여러 차례 합장하며 살아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더구나 보리수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불상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부처님을 상징했던 존귀한 존재가 아닌가.

 

보리수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아슈바타(Aśvattha) 또는 피팔라(Pippala)라고 불린다. 이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불교에서는 나무의 이름을 보디 브리쿠샤(Bodhi-vtksa, ‘깨달음의 나무’라는 뜻)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보리수’는 브리쿠샤의 한역 음사인 셈이다.

 

실제로 보드가야의 보리수는 ‘깨달음’ 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징으로서 숭배되었다. 초기의 불교도들이 불상이 출현하기 전, 불상 대신에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석가와 ‘깨달음’을 나타내는 보리수와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륜’의 도상이었다. 대승불교 경전에는 극락세계에 우뚝 솟아서 미풍에 묘음을 내서,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신비화된 보리수도 등장한다.

 

보드가야의 보리수는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룬 장소, 즉 마하보디대탑 바로 옆에 장엄하게 서 있는데, 사실 이 보리수는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룰 당시의 그 보리수는 아니다. 부처님의 대각을 도운 보리수의 나뭇가지를 아소카 대왕의 딸 상가미타 비구니가 꺾어 기원전 3세기 경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로 옮겼고, 이후 이 보리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보드가야의 보리수가 소실되었는데, 당시의 불교도들은 스리랑카로 건너간 보리수의 2세를 다시 가져다가 보드가야에 심었다. 이렇게 스리랑카에서 인도 보드가야로 옮겨진 보리수의 2~3세쯤 되는 보리수가 현재 현묘재까지 와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니, 예삿일은 결코 아니다.

 

가을이 점차 완연해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내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현묘재 보리수가 다가올 겨울을 잘 이겨낼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문제다. 다시 온실로 옮기려니 해마다 옮겨심기를 반복해야 하고, 또한 그로 인한 몸살을 앓게 해야 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화단에 놔둔다면 한 겨울에 동사(凍死)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동사를 견디고 야외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방안이 있다고 해도, 높이 30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인도보리수를 작은 화단에 남겨둘 수는 없는 형편이다.

 

보리수 주위에 번진 잡초를 뽑았다.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대하듯 거둬냈다. 어떤 이는 잡초를 뽑으며 번뇌도 같이 뽑는다는데, 그래서 마침내 보리를 얻는다는데, 어째서 나는 뽑아낸 잡초의 자리에 되레 번뇌가 채워지는 모양새란 말인가. 오늘따라 답답하기가 짝이 없다.

 

즐거우니
근심이 이네.

 

기쁘니
슬픔이 솟네.

 

멋진 삶이 뭔지 아는가?

 

즐길 줄도 알고
근심할 줄도 아는 것이네.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것이네,

 

흐를 줄도 알고
흘러갈 뿐인 줄도 아는 것이네

 

-졸시 ‘보리수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