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도成道의 모습: <대각사>와 <대각상>

 

 

 

 

 

  천근이 빠져 나간 듯 가벼움, 적적성성寂寂惺惺한 밝음, 평온한 지복, 섞이지 않는 청정한 마음 … 이것도 잠시, 오온의 업력業力은 세세생생 닦아 놓은 길을 다시 간다. 석가모니 붓다는 자신이 체득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궁극의 깨달음)의 크기와 깊이는 “생각으로 헤아릴 길이 없고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고 표현한다. [각주1] “내 마음은 관능적인 삶을 동경하는 망상에서 벗어났다.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에서 풀려났으며, 무명에서 비롯된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 같은 자유와 해탈 속에서 나는 명백히 깨달았다. 더 이상 윤회는 없다. 더 높은 삶이 성취되었다.(중부경전36)” 석가모니 붓다의 오도송(悟道頌: 깨달음의 순간을 찬미하는 게송)의 증언에 따르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면 분명한 것은 ‘다시는 태어날 일(윤회)이 없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일 속에 가려 있든 세상의 원리, 존재의 법칙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혹할 일이 없으며, 두려울 일이 없으며, 고통스러울 일이 없다. 그래서 “최상의 행복을 누린다!”라고 한다.(도판01: 삼매에 든 석가모니 붓다의 모습, 선정인의 <붓다상>, 2-3세기, 간다라,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미국의 유명한 영성지도자 아디야 샨티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상을 유발시키는) 자신의 ‘에고의 환영’과의 처절한 싸움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끈질기게 생겨나는 ‘에고’를 완전히 정복시키는 데 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겨냈을 때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해맑은 빛’ 속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적적성성한 ‘성품 자리’를 ‘일상으로 살게 된 것’이다. 또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알려진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에 인용된 R.M.버크(캐나다의 정신의학자)의 증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바로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법계의 모습이다. 세상은 크나큰 일대一大 연기의 장 場이고, 이것을 적적성성하게 아는 마음이 함께할 뿐이다. [각주1: 깨달음의 경지에 따른 상태의 변화: 초발심初發心에서 대정각大正覺까지 올라가는 단계는 다양하게 나눠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4선정의 경지에 따른 지혜(통찰지 또는 반야)의 계발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초선정의 경지는 감각적 욕망과 불선업不善業이 멈춘 희열과 행복, 2선정의 경지는 사유와 숙고(또는 집중)의 마음이 멈춘 평화와 행복, 3선정은 평등심과 통찰의 즐거움에 머무는 행복, 4선정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초월하여 순관 역관의 경계에 무심한 평등심의 상태이다. 각 상태마다 어떠한 통찰지가 계발되는 지는 지난 연재에 기재하였으므로 생략함. 그리고 공무변처는 ‘무한한 공간’과 합일된 상태, 식무변처는 ‘무한한 의식’ 세계와 합일된 상태, 무소유처는 무한한 의식을 초월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 비상비비상처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초월하여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양파 껍질 벗듯이 현재의 상태를 대상 삼아 계속 벗어나면서 더 크고 밀도 있는 경지와 합일되는 데, 결국엔 도저히 헤아릴 수도 표현할 수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지를 모두 거쳐서 ‘더 이상 높은 곳이 없다’는 무상정등각에 든 석가모니 붓다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이것은 불교 미술의 최고 최상의 화두이다. 과연, 깨달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생했던 성도成道의 자리, 보드가야의 보리수 옆에 세워진 대각사大覺寺의 주존 조각상부터 살펴보자. 물론 보리수나무 아래에 부처님은 없다. 최초의 적멸보궁인 셈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여여如如하게 현존한다지만, 육근六과 육경六境에 옴팍 갇혀 있는 중생들에게는 예경하고 경배할 신앙의 대상이 필요하다. 이에 부처님의 형상을 모시는 사당이 건립되었다.(대탑의 건립 역사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 참조.) 마하보디 대탑으로 불리는 사당으로 들어가면, 황금으로 빛나는 부처님 존상을 만날 수 있다.(도판02, 도판03)

 

  

도판04 <석가모니성도상>으로 향하는 수많은 참배객들, 대탑의 내부 통로, 마하보디 대탑
도판05 대탑 내부의 비좁은 공간에서 경전을 독송하는 스님.
   

수많은 참배객들 사이에 끼어 줄지어 들어가면 내부는 좁다란 통로처럼 되어 있다.(도판04) 왼쪽 줄이 들어가는 줄이고 오른 쪽 줄이 나오는 줄인데, 이 두 줄로 내부는 꽉 차버린다. 그런데 이렇게 비좁은 공간 속에서도 자투리 공간에 자리를 깔고 앉아 경전을 독송하는 스님 및 신도들이 한 둘이 아니다.(도판05) 기다란 복도식 내부 공간 끝에는 황금의 대각상大覺像이 있는데 푸른색의 육계가 인상적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스님들은 정성스레 준비해온 부처님의 법의를 공양하기에 바쁘다. 하루에도 옷을 수차례 갈아입으신다.(도판06,도판07) 대각사가 여러 번 중축과 개축을 거치면서 본존상이 재 안치되었기에 시대 가늠이 어렵다. 하지만 크기와 형식은 어느 정도 이전 존상의 것을 유지하였을 것이다. 법의法衣에 가려 있지만, 팔의 각도로 보아,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대탑 입구의 문 바로 위에도 항마촉지인의 붓다상(도판03의 한 가운데 붓다상, 도판08)이 있어서 ‘항마상降魔像’이 바로 대정각을 상징하는 ‘성도상 成道像’임을 말해주고 있다.

 

 

 

 

 

  대각사의 본존상에 대해서는, 당 나라 현장법사(602~664)가 쓴 『대당서역기』를 통해, 적어도 7세기 이전에 어떤 형식의 존상이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기록을 보면, “왼손은 샅 위에 올려있고 오른 손은 늘어뜨리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항마촉지인’의 존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쪽을 향하고 앉아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새벽이 동터올 때 찬란한 빛을 받으며 대정각에 든 시점을 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록 보다 약 2백 년 앞서는 법현스님의 기록에 “(정각의 자리에) 탑을 짓고 상을 만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라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존상은 적어도 5세기 이전까지 소급되는 굽타 양식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대당서역기에 기록된 존상의 크기(대좌 높이 당척 4척 2촌이고 넓이 1장 2척 5촌, 상의 높이 1장 1척 5촌, 양 무릎 폭 8척 8촌, 어깨 폭 6척 2촌)가 우리나라 석굴암의 본존불 크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미술사학계 원로학자 강우방씨에 의해 1986년 밝혀진 이래로 학계의 정설로 되었다. 즉, 석굴암의 본존불은 보드가야 붓다 성도의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고, 이곳 신라 땅에 구현되어 이곳이 바로 붓다 성도지임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법현과 현장이 목격했던 대각사의 당시 불상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것의 재현으로서의 석굴암 본존불이 있기에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하겠다. 석굴암 본존불을 바탕으로 보드가야 대각사의 본존상이 어땠는지 역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석굴암 본존불의 얼굴 모습은 당시 통일신라의 정서에 맞게 이상적인 한민족의 용모로 토착화되었다. 하지만 우견편단의 형식이라든가 몸체의 비례 등은 보드가야 것과 거의 흡사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깨달음 이전과 이후의 석가모니 붓다의 모습은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가. 그 안에서 깨달음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깨달음 이전의 모습은 일반 속인의 모습이다. 태자 시절에는 긴 머리에 관을 쓰고 궁중 의복을 입고 있고, 출가 이후에는 삭발하고 허름한 옷을 입은 모습이다. 태자 사유상의 조형에서는 보살로서의 용모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정각大正覺 이후에는 여래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정각의 모습은 깊은 선정삼매에 든 선정인禪定印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마구니를 항복 시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두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쥔 설법인說法印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선정인-항마인-설법인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관계를 갖는 도상으로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항마인의 존상이 대정각을 맞이한 결정적인 순간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깨달음의 기본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깨달음과 계합하였기에 몸에서 깨달음의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것은 광배로 표현된다.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신광身光으로,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두광頭光으로 조형된다.

 

 

 

또 부처님으로서의 변신된 인체 특징을 보자면, 머리 꼭대기에 ‘육계’가 불쑥 올라오게 된다.(도판01, 도판02, 도판10) 이것은 머리의 백회 부분에 있는 제7차크라가 열린 것으로, 인체의 일곱 개의 차르라가 모두 열려 우주의 바탕과 전적으로 계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육계에 다시 여의주(전문용어로 계주髻珠라고 한다)를 올려 법계와 합일된 모습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미간 차크라 열려 찬란한 빛이 발생하는 것은 미간의 ‘백호’로 표현한다. 뒤통수 쪽에서 천개의 연꽃 잎사귀가 피어나는 듯한 에너지의 방출은 연꽃 대좌 또는 연꽃 광배로 묘사된다. 육계나 계주, 백호, 광배 등은 모두 둥근 빛 또는 둥근 구슬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를 ‘여의주, 보주, 마니보주’ 등으로 경전에는 비유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 선종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 합일된 모습을 하나의 커다란 원, ‘일워상一圓相’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여의주’의 형상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핵심적 도상이다. 응신應身으로서의 몸이 법신法身으로서의 몸과 계합한 증거이다. 그렇기에 신성한 태초의 에너지가 몸 전체에 충만하게 되고 또 발산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한 존상으로 석굴암의 <석가모니성도상>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보드가야 대각사의 5세기 당시 굽타양식의 본존상이 남아 있었더라면 이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유사한 시대의 비견할 만한 존상을 예로 들어 대각사의 본존상이 어떠했는지 유추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찾은 가장 근사치의 작례는, 현재 미국 에모리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굽타시대 <석가모니성도상>이다.(도판12) 이들 존상(도판11,12)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을 압도해 버리는 양식적 특징은, 몸체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당당한 충만감이다. 특히 석굴암 본존상의 경우에는, 아마도 ‘양감量感’을 이토록 훌륭하게 승화시킨 조각상은 세계에 전례가 없을 것이다. 마치 단단하고 견고한 생명으로 꽉 찬 씨앗 또는 열매와 같은 볼륨감이다. 하지만 넘치지 않는다는 것,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그 충만감이 절묘한 양감으로 표현되었다. 조각상 몸체 전체를 흐르는 이 특유의 양감은 ‘이상화’된 양감이다. 굽타 양식은 신성성을 나타내는 데 있어 신체의 이상화된 양감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상은 이같은 굽타 양식의 양식을 통일신라 식으로 더욱 완성시킨 작품이라 하겠다. 우견편단 법의法衣의 얇디 얇은 재질로 인해 걸친 듯 걸치지 않은 듯 표현해, 인체 표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 있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굽타 양식 작품들이 더 사실적이라 할 만큼, 석굴암 본존상은 보다 강력한 양감을 성취하고 있다. 팽만한 가슴과 건장한 어깨, 볼륨감 넘치는 뺨과 커다랗게 불룩 올라온 육계, 둥근 무릎과 넓고 평평한 발, 그리고 어깨-팔-손등–손가락 끝까지 이어지는 팽만한 곡선의 볼륨감 등은 석가모니상의 적적성성한 신성성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충만한 우주의 에너지가 본존상을 통해 그 ‘실재성實在性’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대승불교로 전환되면서 석가모니불 이외에도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미륵불, 연등불 등 다양한 부처님들이 등장하게 된다. 무수한 부처님들 중에 석가모니 부처님 존상을 식별하는 가장 중요한 형식적 특징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이다.(세계 각국의 <석가모니 성도상> 도판13,14,15,16,17) ‘항마촉지인’이라는 명칭을 풀자면, ‘땅을 가르키자 또는 어루만지자(촉지觸地) 악마가 항복하였다 또는 사라졌다(항마降魔)’이다. 즉, ‘땅을 가르켜 악마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이는 싯다르타 태자가 최종적으로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커다란 깨달음에 이른 순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석가모니가 도道를 이룬 상’이라 하여 ‘석가모니성도상釋迦牟尼成道像’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싯다르타 태자의 수행과 정각을 끊임없이 방해하던 요소인 악마(마왕 파순)는, 태자가 깨달아 이미 붓다가 된 상태인데도 한 번 더 나타난다. 그리고 ‘깨달음을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붓다에게 온 마지막 의심인 것이다. 이에 붓다는 큰 선정에 들었던 선정인의 자세에서 오른 손을 풀어 검지를 들어 땅을 가르켰다. 그러자 대지大地가 크게 진동하였다. 『대열반경』에는 ‘대지가 진동하는 8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그 대목을 보면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을 때, 땅이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땅의 큰 흔들림이 일어나는 원인이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리고 지신地神이 나타나 붓다의 깨달음을 증명하였고, 이에 마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종적 무상정등각을 증명하는 정점을 찍는 수인이 바로 ‘항마촉지인’이다.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