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계시다는 소문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아무리 바쁜 도시의 생활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짬이 없겠는가만 순간마다 흐트러지고 가슴엔 돌만 쌓인다. 어른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이 중생을 어찌하오리까?”
새벽을 달려 송광사 샛길로, 어른이 살고 계시다는 오솔길을 들어섰다. 알맞은 기울기의 호흡이 흘러 오르고 있다. 숨결은 차분하리라. 발걸음이 어지럽지 않으리라. 어른의 호흡을 폐 속 깊이 느끼며 발걸음이 더딘데, 문득 눈을 드니 느닷없는 대나무 숲이다.
열려있는 허리춤 한 나무문 너머로 대나무 터널이 편안하다. 저 모퉁이를 돌면 계시겠지 ·····. 이런! 터널을 돌아 마주한 건, 어머니의 자궁을 나오려던 순간 마주했던 기억, 그 잊어버렸던 기억이 녹음의 어둠으로 명패도 없이 일주문으로 서있다.
벼락같은 충격으로 일주문 앞에 서 있던 순간이 몇 겁으로 지났을까. 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옆을 돌아보니 어른이 계신 곳이다. 그런데 신발은 있건만 어른이 안 계신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현판 아래로 신발 두 켤레. 뒤축을 꿰맨 흰 고무신과 다 헤어진 방한화만 남겨 두시고 무슨 일에 맨발로 바쁘셨는가? 8월 땡볕 나무 댓돌 위에 두 계절만 올려놓고 급한 볼일이 있으셨던 게지.
어른을 기다리다 둘러본 암자 뒤편의 아름답고 낮은 축대 위로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가뭄 끝에 단비가 세상에 아무런 차별도 없이 비를 내리고 홀연히 지나가 듯, 지금은 태양이 이 낮은 담벼락을 죽일 듯이 달구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집착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은 가뭄 뒤의 단비에도, 가뭄 속의 땡볕에도 있다.
암자 아래 아담한 채마밭 풍경이 곱다. 삶은 먹고 먹히는 일. 먹는 것은 사는 것을 전제로 하고, 먹히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때를 맞춰 성장하고 길을 잘 알아서 잎과 열매를 맺는 생명. 저렇듯 곱게 다룰 줄 아는 이가 살아가며 갖는 죽음에 대한 겸손이 느껴진다.
후박나무 옆, 웬 대나무 울타리 안에 글이 몇 줄 서있다. “스님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 아래 유골을 모셨다.” 이전에 계셨던 법정 스님이라는 분의 수목장인가 보다. 저렇듯 소박한 부도를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저분의 사리는 대나무 울타리나 표지말도 번거로우리라.
어른께서 멀리 나가시긴 한 모양이다. 평상시에 앉아 계셨을 껍질도 벗기지 않은 투박한 나무의자 위에, 헛걸음이 섭섭하셨는지 몇 가지를 올려놓으셨다. ‘책갈피’, ‘남기고 싶은 마음의 글!’ 노트, ‘송광사 책자’, 바구니에 든 ‘부채’, ‘사탕 드세요’ 깡통 하나. 책을 사랑하시던 마음이 놓여 있다. 내가 남기고 싶은 글이 어른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이 염천의 세상에 시원한 바람을 접어놓았다. 땀나게 올라온 방문객 입속의 깡통 속의 박하사탕 한 알은 바로 감로수였다. 저 조그만 의자 위에 저렇듯 풍성한 배려를 올려놓을 수 있다니. 어른께서 멀리 나가시긴 나간 모양이다.
암자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니 자정국사의 부도 묘광탑이 있다. 이 분도 이 암자를 참으로 좋아하셨나 보다. 죽 늘어선 부도탑들의 위용을 마다하고 이 적막한 산 중에서 한가롭다. 평소 좋아하던 후박나무와 같이 계신 스님이나 낮은 돌을 두르고 7백 년 세월을 풍상으로 서 계시는 분이나, 이곳에 계셨던 이들은 참 많이 닮았다. 어른은 두 벗을 두고 어딜 가셨나?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모양이다. 어른을 기다리며 댓돌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데, 꽉 차있다. 멀리 보이는 산 능성도 가까이 있는 대나무 잎이며 활엽수, 상록수 이파리 할 것 없이 빈틈이 하나도 없다. 모든 실루엣에 바늘 자국의 틈도 없이 하늘과 이빨이 꼭 맞는다. 손바닥을 올려 하늘을 어루만져 본다. 손에 느껴지는 하늘이 나와 함께 빈틈이 없다. 주먹을 쥐어본다. 나와 같이 멈춰 서 꼼짝 않는다. 홀로 자각하고 있지 못했지만, 하늘은 항시 나와 함께 움직이고 멈춰 있었다.
내려오는 참에 들른 예쁜 기와집. 쉬원하게 하늘을 쏟아내고 올려다본 암자에서는 배웅이나 하듯, 벽에 걸린 법정 스님의 사진이 웃고 있다.
어른을 뵙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되돌아본 일주문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이제 어미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니, 어른을 다시 찾을 일이 없겠구나."
일주문을 나서는 발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