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 미얀마 수행기

한 여름 가을풍경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8-07-20 (금) 06:40

7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산하대지를 태워버릴 듯 매섭다. 오는 둥 마는 둥 장마가 지나가더니 곧이어 시작된 가뭄이 제법 오래 가고 있다. 이제 가뭄 피해가 닥칠 것인데, 이렇다 하게 뾰족한 대안도 없으니 갑갑하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공하는 농업용수가 있긴 하지만, 가뭄 때는 너도나도 끌어다 쓰니,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우리 집은 그 덕을 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밭 경작용 농업용수를 논에다 끌어대는 얌체들까지 있으니 부아가 치밀 때도 있다. 그런 부류들은 어수룩한 듯 보이지만 속내는 음흉하기 짝이 없다. 요즘 같아서는 가뭄에 타들어가는 농부의 가슴을 알 것도 같다.
 
7, 8월 여름 절정기에는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짧다. 새벽 해뜨기 전과 해진 후 몇 시간을 빼면 뜨거워서 밭에 나갈 수가 없다. 이 아린 더위를 견디며 푸른 이파리를 유지하는 작물들의 생명력이 놀랍고 고마울 뿐이다.
 

제초제로 가을을 일찍 맞이해버린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그런데 요즘 농촌의 논두렁이나 밭두렁, 그리고 길가에는 ‘가을 분위기’가 물씬하다. 초록이 지쳐 검푸른 색이 감돌 시기에 웬 가을 분위기 타령이냐 생각할 수 있지만, 누렇게 색이 바랐거나 적갈색으로 말라있는 잡초를 마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정확히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해가 갈수록 ‘한 여름 농촌의 가을 분위기’는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눈치 빠른 이는 벌써 알아챘겠지만, 시골의 봄과 여름은 제초제 공해로 몸살을 앓는다. 논밭에서 제초제를 뿌리는 광경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쭈그려 앉아 호미로 풀을 매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가족이 밭에서 풀을 매고 있노라면,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동네 어르신들의 핀잔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제초제 벼락을 맞아 말라비틀어진 논두렁, 밭두렁과 길가의 풀들은 그래도 눈에 띄지만, 밭에 뿌린 제초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농사를 짓는 분들의 연령대가 60대에서 80대가 중심이니 제초제에 의지하는 게 한편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제초제 먹고 자란 낱알을 먹는 누군가는 어쩔 것인가. 어느 농부가 제초제 효과, 즉 결실도 튼실하고 힘도 덜 드는 매력에 중독되어 매년 그 강도를 높여가다가 제초제의 독성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주위에도 월남전에 참여한 이후 고엽제 중독에 의해 평생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이 있어, 귀농을 하면서부터 아내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초제는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첫 해에는 450평 밭에서 용암처럼 무섭게 분출되는 풀들과 호미로 대항을 해보았지만, 역시 결론은 역부족! 고랑의 밭을 매며 나아가다 뒤를 돌아볼라치면 채 이틀도 안 되서 파랗게 돋아나는 푸른 기운이, 파충류의 피보다도 섬뜩하게 느껴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뿐인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장시간 노동을 하노라면 무릎은 물론이고 팔다리 등 온몸이 쑤셔온다. 아내의 한의원 방문이 잦아졌고, 내 손가락도 잘 접히지 않거나 마디가 튕겨지거나 쑤시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부득이 두 번째 해부터는 고랑에 부직포를 덮었다. 햇볕을 차단해 풀이 나지 않게 하는 방법인데, 효과 만점이어서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다.
 

제초제 벼락을 맞아 말라비틀어진 논두렁, 밭두렁
 

그러다보니 올 봄에는 한 동네 할머니가 찾아와 “이 집은 제초제를 안치니, 밭 옆에 난 쑥 좀 뜯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온 적도 있었다. 귀농 3년여 만에 우리 집이 제초제 없는 집으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제초제를 금하다보니 밭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3년 만에 눈에 띄게 흙이 많아졌다. 밭에 새 흙을 부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밭이 높아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초제를 치지 않으니, 밭에 미생물과 지렁이가 많아졌고, 특히 지렁이 녀석들이 흙 속을 헤집고 다니며 땅속에 무수한 굴을 파 땅을 갈아엎고, 흙을 먹고 배설해 분변토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해 준 것이다.
 
우리 밭이야 그리 넓지 않고 생산량의 대부분이 우리 가족의 먹거리인 셈이니, 다소 힘들어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지만, 솔직히 제초제를 치지 않는 농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콩밭이든, 감자밭이든 고랑에 한 달에 한 번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은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거기에서 수확한 결실이 제초제 성분을 머금고 있을 것은 불문가지의 일. 그래도 도시 사람들은 일단 겉보기에 좋은 것을 찾는 경향이 많으니, 이를 어쩌랴.
 
벌써 우리 동네에도 친환경 농사를 짓다가 도중에 포기한 ‘50대 젊은이’가 생겼다. 처음 귀농해서는 트랙터도 사고, 값 비싼 친환경 유기농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등 의욕 넘치게 시작하더니, 이태를 못가서 포기한 것이다. 연유를 알아보니, 친환경 농사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몰이해 및 외면이 원인이었다. 겉보기에 볼품은 없고 값은 훨씬 비싼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의외로 구입해주지 않으면서 판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결국 ‘세상은 어느 한 쪽의 노력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젊은 귀농인의 사례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도시의 소비자들이 먹거리 오염의 심각성을 피부로 체감하고,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사 먹어준다면 농촌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제초제를 뿌리는 일도 줄어 한 여름에 황폐하게 말라 비틀어져 죽은 풀들도 줄어들 것이고, 독한 농약과 살충제, 살균제의 사용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잎마름병으로 시들해진 고추나무 하나를 제거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병이니, 솔직히 대책도 마땅치가 않다. 이 병이 주변의 고추나무로 확산되지 않기만을 염원하며, 병든 고추나무를 뽑아낸 자리를 붕소로 소독했다. 끼고 있던 장갑은 빨고, 뽑아낸 고추나무는 멀찌감치 산 기스락에다 버렸다. 정성을 다해 가꾸는 고추나무 400그루 가운데 한 그루를 뽑아냈을 뿐이지만, 가슴이 쓰리고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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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담 2018-07-20 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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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타들어 가는 농부의 마음이라지요.
쓰리고 허전한 가슴이라니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가뭄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리는 비를 가두었다 쓰는 방법은 없을까?
마을 마다 굴삭기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화엄 2018-07-21 09:48:08
답변 삭제  
서로 의식이 변하여 제초제를 덜 사용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비교적 유기농을 사는 편인데, 정부 지원이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가격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안은데요.

너무 더운 날씨 농사일에 건강 조심하세요.
다경 2018-07-22 08: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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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다녀가세요. 제 사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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