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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아설의 내용

‘무아’라는 말이 아함에 사용된 예를 보면 무상無常  고苦라는 말과 함께 어떤 주어에 술어로 연결되어 있음이 보통이다. 이런 문장에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말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십이처 육육법 오온  십이연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느 것이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 아함의 술어를 빌리면 일체一切  세간世間을 가리킨다. 이러한 현실 세계는 연이생緣已生  유위법有爲法, 다시 말하면 ‘연기한 것’이다.

따라서 아함의 무아설은 단순한 무아설이 아니라 연기에 입각한 것이요, 그것이 부정하고 있는 ‘나’는 그렇게 연기한 나를 말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무아설을 ‘무아연기설’이라 부른다.

연기무아설이 부정하고 있는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기한 ‘온蘊’을 가리키고 있다. 아함에는 여러 가지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이 설해 있는데, 그 ‘나’는 항상 ‘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가령 네 가지 유신견有身見을 예로 들면,
1) 오온이 나이다.
2) 나는 오온을 갖고 있는 것이다.
3) 나 속에 오온이 있다.
4) 오온 속에 나가 있다.
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연기무아설이 부정하고 있는 ‘나’는 ‘온’과 동일하거나 또는 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온’의 ‘나’는 무아설이 아니라도 연기를 살필 때 그 실재성이 마땅히 부정된다. 십이연기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는 근본 요인은 무명無明과 행行이다. 무명은 아함에 사제(satya)에 대한 무지라고 설명되어 있다. 무명은 ‘실재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뒤바뀐 착각이다.

‘행’은 이러한 무명에 연하여 일어나 것임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게끔 하려는 형성작용形成作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을 성립 유지시키는 근본 작용이다.

무명과 행이 이런 성질을 가진 것이라면, ‘나’는 ‘있다’고 할 수 없다. 왜 그러냐면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생각한데서 연기하여 하나의 큰 ‘온’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연기의 고찰은 필연적으로 무아설에 도달한다. 무아설의 진정한 뜻은 그렇게 실재하지 않는 ‘나’에 집착하지 않음은 물론, 적극적으로 그것을 없애는 실천을 하는데 있다. 연기설이 ‘온’의 성립 과정을 밝혀주는 철학적인 설명이라면, 무아설은 그러한 ‘온’의 ‘나’를 제거하기 위한 실천 원리이다. 이것이 연기설과 무아설의 관계요 차이이다.

무아설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부정되는 것은 무명에서 연기한 ‘온’의 ‘나’이므로 참다운 ‘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참다운 ‘나’는 오히려 그러한 부정을 통해야만 나타난다. 추호라도 나의 긍정이 있다면 나타날 수가 없다. 불교에서 아트만을 내세우지 않음은 이 때문이다.

무아는 곧 공空이며 제법실상諸法實相이며 반야般若이며 아트만이다.

고익진 저     불교의 체계적 이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