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대웅보전 옆에서는 반가부좌 자세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깊은 상념에 잠겨있는 모습의 큰 청동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이미 보셨을 터이지만 와우정사에 봉안된 미륵반가사유상은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모습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원형과 다르지만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한 사색에 잠겨있는 미륵보살이 잘 표현되어 있고, 취하고 있는 자세와 옷의 주름 등은 국보로 지정된 진품을 보는 듯합니다. 
 

천삼백여 년 전, 짧은 국경선을 더 길게 늘여야겠다고 세 나라의 왕들이 전쟁을 이어나가갈 때, 백성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전쟁이 주는 공포와 굶주림이 전부였고, 이런 지옥과 같은 고통을 벗어나게 할 분은 미륵부처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오죽하면 궁예가 ‘내가 현신한 미륵이다’며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잡으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미륵신앙이 불이 번져나가듯 유행하면서, 세 나라 국왕은 백성들의 공포심을 떨쳐내고 사기를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앞 다퉈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조성하였는데, 그런 역사적 사실은 박물관에 가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바대로‘고통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계신 해월스님께서 와우정사에 미륵반가사유상을 봉안한 것은 미륵부처님의 가피로 전쟁을 겪음이 없이 평화롭게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담아내려는 마음을 추스른 때문입니다.

 

반가사유상 앞에는 열두 가지의 동물 석상이 놓여있습니다. 십이지신상입니다. 열두 개의 지간(支干)은 시간, 방위 등을 나타내는데, 사람이 태어난 년도를 뜻하는 동물을 자기의 수호신이나 분신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머리만 동물모양으로 관복을 입고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는데, 머리와 목덜미며 손등에 동전이 올려있어서 묶여있는 일상의 매듭이 풀어지기를 자기 분신에게 빌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와우정사는 대웅보전을 건축하면서 바깥쪽에 생겨난 칸칸의 벽면에 벽화를 그리는 대신, 그리고자했던 팔상성도를 “대각전”을 향해 올라가는 언덕 길옆에 크게 그려놓았습니다. 

 

 

 

“팔상성도”는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셨음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느껴 극한의 고행을 수행하신 후,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그림입니다.
심오한 뜻이 담긴 내용이어도, 삽화처럼 쉽게 표현된 그림을 보면 글을 익히지 않은 어린아이조차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도 팔상성도를 볼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며,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할 것을 기원합니다.

 

팔상성도 여덟 장면마다에는 각각의 설명을 간략하게 써놓았는데, 마지막 쌍림열반상 말미에는 “대한불교 열반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서 대반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수행 정진하는 전통의 불교 종단이다”를 덧붙여서 와우정사가 열반종의 본산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대각전을 향한 길녘에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약사여래부처님이 왼손에 약병을 들고 좌정하여 계십니다. 약사여래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이 삶을 꾸려가면서 겪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지녔던 재물과 건강 잃음 등의 아픔과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시고자 나타나신 부처님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부르거나 듣기만 하여도 모든 질병이 소멸되고 지혜와 방편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을 내신 부처님이니 범부 중생이 어찌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와우정사에는 미륵보살님도 그렇고 약사여래부처님도 이렇게 노천에 모셔져 있습니다. 다른 사찰이라면 미륵전, 약사전, 만월보전 등의 전각에 들어가 참배해야 할 터인데, 와우정사는 나무가 우거지고 들꽃이 피어있는 길을 오가면서 참배할 수 있어, 근심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부처님의 가피를 경내 곳곳에서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팔상성도 벽화가 있는 길옆, 작은 골짜기에는 오백나한상 불사가 진행 중입니다. 여러 사찰에서 목각이나 석고 또는 회반죽으로 조성한 나한상은 많이 보았지만 돌로 조각한 것은 처음입니다.
돌의 모양도 광산에서 떼어낸 암석이 아니라 날짐승의 알처럼 생긴 돌이고, 그 돌을 반으로 쪼갠 다음 그 반쪽을 파내면서 조각되었는데, 앞쪽만 나타내는 부조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나한님이 비를 피하려 돌로 된 동굴 속에 앉아계신 듯 보입니다.

 

 

 

나한님마다 얼굴의 표정도 명상을 하시는 분 ․ 웃는 분 ․ 노하신 분 ․ 무언가 못 마땅하신 분 등 각각이 다르시고, 크기도, 복장도, 지팡이며 경전이며 갖고 계신 지물도 다 다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지금까지 몇 분의 나한님이 조성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옆에 동참을 권하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한참 더 진행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동참하시어 나한의 경지에 올라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다음에 다시 방문하였을 때에는 더 풍성한 볼거리가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오백나한을 모시고자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풍경도 와우정사의 볼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음 회에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