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이 지나니 현묘재의 매화나무 다섯 그루에 촘촘히 달린 매실들도 제법 튼실해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10킬로그램 정도 매실을 구입해 매실청을 담갔는데, 올해부터 직접 수확한 매실로 담글 수 있게 되었다.
매화꽃을 좋아해 매화나무를 심었는데, 이렇게 매실까지 수확을 하게 되니 덤을 받은 느낌이다. 조롱조롱 나무에 매달린 매실을 한나절 걸려 13킬로그램이나 수확했다. 청매와 백매나무에서 딴 매실들은 500원 짜리 동전크기만큼 크고 튼실하다. 상품으로 치면 A급에 해당될 정도로 탐스럽다. 반면 홍매화나무에서 수확한 홍매실은 불그스레한 색깔에 크기도 작고 볼품도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서 홍매실은 따로 엑기스(청)를 담가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매화꽃은 청매꽃이지만, 외관상 가장 화려한 매화꽃은 홍매화다. 맹춘지절에 피어나는 매화꽃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눈길을 우선 잡아끄는 것은 그래서 홍매화꽃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은 화려하고 예쁜데 그 열매는 왜소하고 볼품이 없다. 꽃이 화려했으면 되었지 열매까지 빼어나서는 불공평하다는 자연의 이치가 적용된 것은 아닐까? 홍매실을 보면서 세상 이치는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도 나의 분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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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느 하나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솔직히 공평하지 못하다.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사람, 정직하지 않게 살아온 사람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권력까지 탐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또 그런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권력을 위임해준 백성이 얼마나 참담한 일을 당하게 되는지, 그로인해 쌓인 폐해를 청산하는데 얼마나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지 피부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이치는 동물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초식동물은 온순하고 행동도 느린 편이지만 강력한 뿔을 가지고 있다. 반면 육식동물은 강력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뿔은 없다. 새는 하늘을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다리는 두 개뿐이며, 무게를 덜기 위해 빨대처럼 속빈 뼈를 가지고 있다. 초식동물이 뿔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면, 육식동물이 강력한 뿔까지 갖췄다면, 새가 네 개의 다리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리하여 그런 괴물들이 활개를 쳤다면 자연생태계는 벌써 엉망이 되거나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면 이 지구에 생명류가 탄생한 이래 형성된 생태계의 질서는 생각할수록 절묘하다는 느낌이다.
정권이 새롭게 시작되거나 개각이 단행될 때면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인사청문회를 보노라면 능력과 도덕성을 고루 갖춘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이 입증되고 능력도 확인되었지만 도덕성 부분에서 공직에 진출하기에 하자가 드러난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사청문회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인사청문회는 엄격한 기준으로 시행되는 것이 옳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했거나, 전문분야에서 성과를 냈더라도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면 임명직 고위 공무원을 할 수 없다는 기준이 정착될 때, 장차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능력도 있고 도덕성도 갖춘 젊은 인재들이 양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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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빈번하게 있었던 병역기피 관행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긍정적 변화는 엄격하게 진행되어온 인사청문회의 영향일 것이다. 실제 나라의 동량을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스스로의 삶을 관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흐름이 아닐 수 없다.
학력을 위조하거나 거짓 학력 기재로 덕을 본 사람들, 논문 표절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들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드러나지 않았던 과거가 불거진 경우들이다. 대개 이들은 과거에는 일정한 기준이 없었거나, 관행으로 넘어갔던 일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억울해 한다. 그러나 관행이었다느니,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느니 하며 넘겨버린다면, 그들이 속한 단체나 집단, 기관에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있고, 아픔이 있고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겠다는 욕망은 접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포기가 반면교사가 되어야 장차 그 분야를 이끌어갈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젊은 지도자들이 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관후보로 추천된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불거져 상처를 입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인재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맡겨주면 참 잘 할 사람인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길을 찾는 게 옳다. 예컨대 선출직에 도전하거나 자문 등 다른 역할로 국가에 기여하는 방법 등이다. 
이른 봄, 화려한 홍매화꽃으로 현묘재의 맹춘을 아름답게 장엄해주었던 홍매화나무가, 이 여름에 홍매실로 또 하나의 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저 돋아나는 꽃과 잎을 보면서 보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2009년 4월 19일 법정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길상사에서 남겨준 마지막 법문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날 이후 스님의 이 말씀은 꽃과 나무를 보거나 산천을 대할 때면 사자후처럼 내 가슴에 저미곤 했다. 맹하(孟夏)의 끝날, 홍매실이 들려주는 침묵의 법문을 들으며, 큰스님께 감사의 합장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