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커다란 불두 옆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주조된, 우리나라 범종과는 생김새가 상당히 다른 종이 걸려있습니다. 보자마자 범종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용뉴와 음통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당좌를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이어진 띠가 있는데, 띠 안에는 가슴을 드러낸 여러 명의 비천과 인동문양이 이어져 있고, 종신에는 광배를 두른 합장한 보살이 당초문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범종이 배흘림 형태로 몸통 가운데 부분이 약간 볼록하고 아랫단(하대)에서는 살짝 오그라진 형상인데, 이 종은 아랫단(하대)이 바깥쪽으로 살짝 벌어진 형태입니다. 우리나라 범종이 아름다운 것은 상대와 하대 그리고 유곽의 덩굴무늬, 유두와 당좌를 장식한 보상화와 연꽃문양, 나풀거리는 천의를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과 보살상 등이 우아하게 새겨져있기 때문입니다.

 

 

 

 

이 종의 윗부분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신격화된 뱀 두 마리가 교차하고 있는데, 이 뱀의 머리 부분은 두 손을 합장한 여성의 상반신이 합쳐져 있으며 직교한 뱀의 윗부분에 종을 매달 수 있도록 만든 고리가 있습니다.
범종 표면이 주물을 다듬지 않아 거친 느낌인 것과 비교하면 이 종은 상당히 매끄럽고, 특히나 어떤 문양도 꾸미지 않은 당좌를 타종하는 까닭에 원형 당좌는 청동 재질이 숨김없이 드러난 채 빛났습니다. 옆에는 종을 치는 망치모양의 나무가 걸려있어서 지금도 사용되거나 얼마 전까지도 사용되었던 종으로 보입니다.
범종은 종이 매달린 아래에 움푹 파여진 명동이 있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의 여운을 만들어 내는데, 명동과 음통이 없는 종의 소리는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와우정사에는 무게가 12톤에 이르는 금과 동으로 조성한 세계 최대의 황금 종이 있습니다. “통일의 종”으로 불리는 이 종은 와우정사가 남북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도량으로 건립하였음을 상징하는데,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 타종되었고 1997년과 1999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두 차례의 세계평화를 위한 행사에서 타종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평화롭게 통일이 이루어지고, 통일된 날에 5천만 민족이 함께 통일의 종소리를 듣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이 기원이 이루어지는 날, 와우정사는 통일을 이루어 낸 사찰로 세계의 명소가 되고, 온 세계인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와우정사 대웅보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 집으로 열다섯 칸이나 되는 맞배지붕으로, 단청을 하지 않고 나뭇결 그대로를 보여주는 백골집입니다. 규모가 작은 사찰의 대웅전의 대부분이 팔작지붕을 가졌고, 화려하게 단청을 칠하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왜?”하는 의아심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찰이 주불전을 아홉 칸으로 작게 짓더라도 맞배지붕보다 팔작지붕을 고급의 건축형식으로 취하였고, 화려하게 단청을 하는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0년에 걸쳐 조성한 장육존상 오존불을 처음에는 노천에 모셨는데, 아무리 청동이라 한들 사계절의 강한 비바람에 훼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다섯의 큰 불보살님을 모시고자 지어진 대웅보전이기에 ‘백골집은 아니다’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탓에 건축된 햇수가 짧음에도 고풍스런 느낌이 들면서 단정함과 웅장한 아름다움이 돋보였습니다. 용마루 끝에는 취두 대신 치미가 올려 있어 팔작집에 비해 부족한 화려함을 보충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치미가 올라앉은 것은 말씀드렸다시피 와우정사가 남북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또 장륙존상 오존불을 조성했음을 확실히 하자는 의미로 추정하는데, 이는 경주 황룡사 터에서 큰 치미가 발견되었고 황룡사는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자장율사께서 삼존불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포는 기둥위에만 익공을 올린 주심포 형식으로 익공 사이 포벽에 평범한 화반을 놓았고, 맞배집인 탓으로 측면에는 익공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맞배집은 비와 바람에 의해 건물 측면이 입게 되는 피해를 줄이려고 풍판을 걸지만 와우정사 대웅전은 쌍시옷 모양을 한 박공으로만 마무리하였는데, 측벽 밖으로 여러 개의 서까래를 놓아 비 맞을 경우를 줄인 때문으로 보입니다. 풍판을 걸지 않아 양쪽 측벽에서 코끼리가 하늘을 향해 코를 뻗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코끼리는 우리나라에서 건축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장식입니다.

 

 

와우정사 대웅보전에는 주련이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대장경의 깊은 뜻과 좋은 말씀, 뛰어난 선사들이 깨우침을 전하는 주련이 없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송광사 대웅전에 주련이 없는 이유는 설익은 지식을 경계하고자 함이라고 들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즈음하여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신 것처럼 ‘자기 스스로 공부하여 깨우치라’는 의미로 주련을 걸지 않았나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사찰의 대웅전 벽에는 팔상도, 심우도, 달마도, 방아 찧는 혜능선사 등의 많고 깊은 불교의 내용을 쉽게 보여주고 있는데, 와우정사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에 화려한 색을 입히지 않으려한 검소함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대웅보전”에서 “대각전”을 오르는 언덕길옆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담은 “팔상성도”를 크게 그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찰이 대웅전을 지으면서 바깥 둘레기둥보다 훨씬 높은 두 개의 기둥을 세운 다음 기둥 사이에 벽을 치고,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는데, 와우정사 대웅보전은 높은 기둥을 세움이 없이 뒷벽에 붙은 불단을 길게 만들어 다섯 분의 불보살님을 모셨습니다.

 

 

밖에 단청을 하지 않은 것처럼 안에도 단청을 하지 않았고 닫집도 짓지 않았습니다. 또 중단과 영단을 조성하지 않았기에 후불탱화도 걸지 않았습니다.

 

장육존상 오존불(丈六尊像 五尊佛) 

대웅보전에는 비로자나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의 다섯 분에 불보살님이 모셔져 있는데, 오존불은 인도에서 가져온 황동 8만근으로 10년간 만든 불상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인도에서 보낸 철과 금으로 삼존불을 만들어 황룡사에 봉안하였는데,‘일장 육척(一丈 六尺, 약 4.8m)이다’라 전하여 집니다. 해월삼장법사가 민족화합을 기원하는 와우정사를 세우면서 황룡사를 창건의 토대로 삼았으니, 황룡사에 봉안되었던 삼존불상을 이 시대에 다시 조성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에 “황룡사 9층탑”과 “황룡사 장륙존상” 그리고 “천사옥대(하늘에서 진평왕에게 내려주었다는 옥을 두른 허리띠)”의 삼보가 있다고 하였음을 보면 장육존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불상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오존불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빚어낸 사대부중의 커다란 염원과 공력이 들었음인지 위엄과 함께 부처님의 미소를 일컫는 은근한 미소, 자비로운 눈길 등 중생을 사랑하시는 대자대비하신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섯 분의 불보살님 모두 네모진 얼굴에 귓불이 어깨까지 늘어졌고, 눈썹은 가늘어 초승달 같으며, 약간은 굵어 보이는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 원만한 발꿈치에 평평한 발바닥 등 부처님이 갖추신 32상 80종호를 충실하게 나타난 것이 그것입니다. 
   

 

왼쪽에 좌정하신 관세음보살님은 오른손에 연잎과 붉은 연꽃을 잡고 계신데 넓은 연잎 위에는 동자가 다라니를 바치는, 오른쪽 대세지보살님께서 왼손으로 잡고계신 연잎 위에는 주전자를 바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은 물론 다섯 분의 불보살을 좌우로 균형지게 조성하여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평화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존불은 조성한 처음에 대웅보전에 모셨던 것은 아니고, 바깥 노지(露地)에 계셨던 것으로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안으로 모신 것입니다. 당연히 노지에 계시는 동안 그대로 드러난 황동 재질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때가 입혀졌고, 이로 인해 부식된 표면과 금속의 광택을 잃은 부처님을 조석으로 뵙는 와우정사의 스님과 불자들께서는 부처님을 뵐 때마다 존경심과 환희심에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다섯 분 부처님의 아름답고 자비스런 모습을 뵐 수 있게 해주신 스님과 불자들의 큰 원력과 보시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다음 회에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