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행자나 바라문들 또한 육신을 극복하지 못한다. 사무치는 욕망으로 끈끈한 갈망과 유혹, 갈등과 목마름 그리고 타는 듯한 갈애를 내면으로부터 없애지도 온전히 가라앉히지도 못한다.”
                                        -「마하시짜카경」,『맛지마니까야 36』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 후, 당시에 보편적으로 유행하던 수행법들을 찾아다닌다. 출가인으로서의 태자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최선을 다해 이들을 섭렵한다. 먼저, 도인으로 이름난 박가와(발가선인)를 찾아갔으나, 수행의 목적이 천상에 나서 ‘복 받는 것’임을 알고 실망하고 바로 그를 떠난다. 태자의 수행 목적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의 양태는 ‘고苦’이다. 집착과 고통의 반복인 이 몸이라는 것, 존재라는 것. 윤회의 고리를 끊어 다시는 ‘생生’을 받지 않는 것이 태자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것,‘업業’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生死로 부터의 해탈’이란, ‘고苦라는 이 존재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도 절절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육체가 죽는다고 해서 삶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죽는 것을 ‘사대가 흩어진다’라고 표현한다. 사대四大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요소들을 가리킨다. 육체란 이러한 요소들의 만남으로 인한 덩어리였고 이러한 요소들이 만남의 인연을 다해 흩어져 가면, 덩어리인 육체도 허물어지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남는 것이 있다. 바로 업業이다. 법당에서 자주 독송하는 「영가 전에」의 내용 중에는 “사대육신四大六身 흩어지고 업식業識만을 가져가니”라는 낯익은 구절이 있다. 죽어도 마음이 남는데, 이때의 마음을 업, 업식, 업력業力, 업장이라고 하고 영식靈識, 영가靈駕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깨닫지 못한 마음을 가리킨다. 불교에는 마음이 크게 딱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중생의 마음과 지혜의 마음이다. 중생의 마음은 갈애와 집착으로 반응하여 결국 존재와 고통을 만들어내는 업의 마음이다. 깨닫지 못한 무명無明의 마음이 업의 마음이고, 깨달은 청정한 마음이 반야의 마음, 지혜의 마음이다.
  깨닫지 못한 마음인 ‘업의 마음’이라는 것은, 중생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의 바탕에서 존재의 생사生死를 주관하고 있다. 그리고 깨닫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즉, ‘업業’이라는 것은, 몸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육체를 받아 고통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큰 깨달음에 계합한 뒤에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나서, 통찰지로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본 대목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킨 뒤에 다시 저 중생들을 관찰하니/ 여섯 갈래 속에서 윤회하면서/ 나고 죽음의 끝이 없네/ 그것은 거짓이고 견고하지 못하여 마치 파초 꿈 환영 같네/ 이어 한밤중에/ 깨끗한 하늘 눈天眼을 잇따라 얻어/ 일체 중생을 관찰하기를 거울 속 모양 보는 듯하니/ 중생의 삶과 나고 죽음, 귀천과 부귀는/ 청정업淸淨業과 청정하지 않은 업不淨業 그것에 따라 고통과 즐거움苦樂의 과보報를 받네.           
                   -「부처가되다(阿惟三菩提品)第14」『붓다차리타(佛所行讚)』

 

  존재를 만드는 근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윤회를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길은 무엇인가? 태자의 수행 목표는 이 몸이라는 것, 존재라는 것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도전이었다. 태자는 여러 수행자들을 찾아다녔는데, 석가모니 일대기 관련 경전들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두 스승이 있다. 그들은 전통 수행자로 추앙받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라(『팔상록』에는 아라나阿羅邏와 가란迦蘭으로 명기됨)이다. 알라라에게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관觀하는 선정삼매(또는 존재가 없는 선정삼매)’인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의 경지까지 성취한다. 웃다까에게서는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하는 선정삼매’인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를 성취한다. 두 경지는 모두 각각의 선인이 최고의 경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수행의 한계점은, 그러한 상태인 선정에서 깨어나면 다시 일상의 동요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 상태에서 육신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다만, 무소유처정 또는 비상비비상처정에 들게 했을 뿐이지, 나를 집착이 없는 곳, 갈애가 없는 곳, 고가 멸한 곳, 완전한 지혜로, 궁극의 깨달음으로는 이끌지 못했다.”라고 태자는 토로한다.
 
“마을로부터 격리되어 깊은 숲 속에 홀로 산다는 것, 고독과 은둔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렵구나. 무심(無心)에 이르지 못한 수행자의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쉽지 않구나.” 싯다르타 태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깊은 숲 속의 외진 곳에 거주하는 모든 고행자들과 바라문들은 아직 몸, 말, 생각 등의 삶이 청정하지 않다. 갈애와 질투, 정욕, 증오, 탐욕으로 가득 찼다. 나태와 무기력, 마음의 부조화와 불균형, 의심과 불확실로 마음은 혼란스럽다. 혹, 그들은 제 잘난 맛에 숲 속 생활을 하며 남을 헐뜯는다. 명예와 명성을 얻고 지키기 위해 비굴해진다.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지며, 의욕을 상실하고, 나약해져서 방일하게 된다. 지능은 감퇴되고 자제력은 줄어들어 마음은 쉽게 동요한다. 이러한 청정하지 못함 때문에 글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바보처럼 두려움과 공포를 자초한다. 그러나 깊은 숲 속 외진 곳에 홀로 살면서도 나는 몸, 말, 생각, 행동 등의 삶에 청정함을 유지했다. 탐욕을 극복하고 자비심을 기르고 나태와 무기력을 추방했다. 자신을 뽐내거나 남을 헐뜯지도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전심전력으로 정진했다.
                                                         -『맛지마 니까야 4』
 
  당시의 두 가지 수행 방법, 선정과 고행
  끊임없는 정신통일의 반복을 통해 특정한 정신 상태의 도달로는 궁극의 해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태자는 이같은 ‘선정禪定’ 수행의 한계를 깨닫고 다음에는 ‘고행苦行’ 수행을 택한다. 선정 수행이 전통적 바라문교 계통의 수행법이었다면, 고행 수행은 자유사상가로 불리던 육사외도의 대표적 수행법이었다. 태자는 숲으로 들어가 고행 수행을 시작한다. 격리된 외로운 생활 속의 부조리 속에서도 태자는 스스로 그것을 끊임없이 극복하려고 애쓰며 전심전력으로 힘차게 정진해 나아간다. 당시 가장 엄격한 고행주의를 실천했던 사람들은 자이나교도들이었다고 한다. 태자는 생각을 집중하여 빈틈없이 몰아붙이는 것, 호흡을 멈추고 주의를 집중하는 것, 음식을 완전히 끊는 절식絶食, 음식을 조금씩 감식減食하는 것 등 육체를 괴롭히는 다양한 고행 수행들을 철저하게 이행하였다. [보다 상세한 부처님의 수행법은『위빠사나I』(김열권 편저, 불광출판사, 1993년) 참조.]

 

  전변설과 적취설, 양자를 모두 부정하다
  싯다르타 태자가 생존했던 당시에 인도에는 크게 두 가지 수행법이 존재했다. [이하 두 수행법은 『사캬무니 붓다(마성, 대숲바람, 2010년)』에서 요약 인용.] 하나는 바라문 계통이고 또 하나는 사문 계통이다. 바라문 계통은 유일신인 근본 원리로 브라흐마라는 본질적인 성性을 내세웁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상만물이 전변轉變하여 성립한다는 설이다. 바라문 계통 사상은 오로지 선정을 체험함으로써 해탈을 얻는다고 주장이다. 이 같은 정통설에 반해, 자유사상가라고 불리던 육사외도들의 주장은, 유일한 원리는 없고 많은 독립된 요소들이 특정 형태로 결합하여 이 세상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4가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요소들(이를 7가지 또는 12가지로 나누기도 함)로 구성되었으며 신체가 소멸할 때 이들 요소들도 각각 분해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 같은 요소들의 취합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이들은 적취설積聚說을 택하고 수행방법으로는 고행을 택한다. 그 이유는 육체와 정신의 요소를 따로 보고, 정신이 육체에 의해 지배되어 더럽혀 진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적 욕구를 고행을 통해 소멸함으로써, 정신이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죽음에 직면할 정도로 고행 수행을 철저히 행한다. 혹독한 수행은 6년 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정수리를 깨 부시는 아픔, 오장이 찢기는 고통, 드러나는 갈비뼈, 움푹 들어간 눈동자, 등뼈에 가닿은 뱃가죽 등. 몸이 혹독한 고통에 겨워 뒤틀리고 흐트러지는 것뿐이었다. 이에 그는 “육신을 극복하지 못하건, 극복하건 간에 여기에는 지혜와 통찰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즉, 선정 수행과 고행 수행이라는 양자의 수행은 모두 반야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필경 다른 데 있으리라!”라고 태자는 결론 내리게 된다. 태자가 고행 수행을 한 장소는 마가다국 우루베라의 세나 마을의 네란자라(니련선하) 강가라고 전한다. 이곳은 강기슭이 평탄하고 물이 풍부하며 숲이 아름다고 무성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자가 고행 수행에 들어간 이곳은 ‘가야’라로 불리는 도시로서, 힌두교의 성지로서 다양한 수행자가 모여드는 당시 수행자들의 거점지였다. 태자가 성도한 보드가야는 이곳에서 약간 남쪽 10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고, 그 사이에는 네란자라 강이 흐른다. 필자가 이곳, 부처님께서 수행하셨던 보드가야와 근처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겨울철이라 네란자라 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수위가 낮은 강이기에 우기雨期 때에나 강이 생겨난다고 한다.
 

 

 

  “깨달음의 길은 필경 다른 데 있으리라!”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되도록 고행을 하였지만, 그의 결론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수행하고, 이와 같은 극도의 고행을 하였지만, 나는 그 이상의 인간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을 얻지 못했다!”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새롭게 자신 만의 방법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고행 수행을 버린다. 많은 경전들에서는 고행을 ‘포기’했다 라는 표현을 쓰지만, 태자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멈춘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근처 마을의 수자타 처녀가 바친 우유죽을 먹는다. 수자타가 태자를 나무의 신神이라고 생각하고 공양을 올릴 때의 그의 모습은 이렇게 피골이 상접한 형상이었다.

 

 

 

  수자타가 바친 우유죽을 받아먹는 태자의 모습을 보고, 함께 수행을 한 다섯 수행자의 무리는 그를 타락했다고 비난한다. “석존은 타락해서 고행을 버리고 음식을 먹었다. 우리들이 여태까지 석존에게 걸었던 특별한 기대는 이제 배신당했다.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라고 하며 떠나가 버린다. 이들 다섯 수행자는 후에 다시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만나게 되고 첫 번째 승가를 이루게 되는 구성원들이 된다. 
  이때 태자가 받아먹은 우유죽은 ‘파야사’라고 하는데, 한역 경전에는 ‘유미죽乳糜粥’으로 번역된다. 쌀죽에 우유, 꿀, 설탕을 넣은 음식이다. 수자타는 네란자라 강 근처 마을의 부잣집의 딸로, 마침 아들을 낳아 감사하다는 뜻으로 우유죽을 (냐그로다 나무의 신에게) 바치러 갔다가 그곳에 있는 태자를 보고 나무의 신이 나타났다고 기뻐하며 공양하였다.

 

 

 

 

 

 

 

 

  태자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기운을 회복한 후, 네란자라 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근처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앉았다. 이것은 태자가 택한 ‘수행 방법의 전환’을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그 위대한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 ‘수자타의 공양’이다. 그렇기에 수자타의 공양은 석가모니 일대기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다양한 조형미술로 표현된다. 초기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산치대탑의 북문의 중간 패널을 보면, 수자타의 공양 장면과 연이어 기운을 차린 태자의 모습, 그리고 태자가 마라(마군)와 대적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시점과 횟수 등은 후대에 전하는 기록에는 조금 번안되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우유죽(유미죽)을 공양한 사람은 난다와 난다발라(『인과경因果經』에는 목녀牧女 난타와 바라로 나옴)인데, 마을의 소치는 여인 두 여인으로 전하고 있다. 또 『팔상록』 등에는 난다와 난다발라가 먼저 공양을 올리고, 네란자라 강에서 태자가 목욕하고 난 뒤, 수자타가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는 『대당서역기』에 현장이 목축을 한 두 여인의 옛 집터와 우유죽을 끓인 장소에 참배했다는 기록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분파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가모니 일대기를 여덟 폭의 불화로 그린 <팔상탱>에서 ‘수자타의 공양’ 장면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의 고행 수행의 종지부를 찍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팔상탱의 <설산수도상>의 상단 왼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좌측에는 네란자라 강의 목욕 장면, 그리고 우측에서는 ‘수자타의 공양’을 찾아볼 수 있다.  

 

 

 

 

 

  붓다의 일대기 속에는 태자가 네란자라 강에서 몸을 씻고 나올 때 너무 몸이 쇠약하여 물에 휩쓸려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강물의 수위는 무릎에도 차지 않는 얕은 강이었다. 고행 수행의 결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 얕은 강기슭도 기어 올라오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하는데, 이 몸으로 누구를 구하랴.”라고 태자는 한탄했다. 가까스로 풀 더미를 잡고 올라온 태자는 나무 밑에 앉아 자신만의 수행 방법으로 이를 타파하리라고 결심하게 된다.『팔상록』 에는 이 대목에서 “수신(樹神, 나무의 신)이 나뭇가지를 눌러 못가에 닿도록 나직하게 해서 석존이 이것을 붙들고 언덕에 올라올 수 있었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석존이 목욕하신 물을 마신 어족들을 모두 천상에 올랐다라고 한다. 이 장면 역시 <설산수도상>의 석존의 목욕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강물이 하늘로 치솟고 그 안에는 다양한 물고기 종류들이 있다. 목욕 후(초기 경전에는 목욕 전에 우유죽 공양을 받은 것으로 전함)에는 강물의 용녀龍女가 석존의 보배자리를 받들어 그 자리에 앉고, 무구광천인이 바친 가사를 입고, 수자타의 우유죽을 받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다음 호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