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9회>

 

 

두 대의 가마는 창을 든 어영청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아갔다. 꽃가마 안에는 함허와 신미가 타고 있었다. 함허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고 신미는 불안하여 밖의 동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가마의 행선지를 정확하게 아는 군사는 아무도 없었다. 세종이 어디서 그들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진즉 인정전을 나와 어디에선가 쉬고 있을 터였다.

 

세종이 쉬고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어영대장뿐이었다. 어영대장은 군사들 앞에서 말을 타고 성큼성큼 가다가도 이따금 손을 들어 가마를 멈추게 했다. 궁궐 주변의 길목을 지키는 오위 군사들은 눈보라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검문하는 시늉만 했다. 눈발이 얼굴에 날벌레처럼 달라붙어대므로 말하기조차 귀찮아했다.

 

밤길은 눈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가마꾼들에게 첫눈이 쌓인 눈길은 미끄럽지 않았다. 군사들은 눈길에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궁궐 쪽으로 대오를 갖추어 걸었다. 마침내 육조의 관아가 있는 육조거리를 지나 사정문(四正門) 앞에 가마 행렬이 멈추었다. 사정문은 태조 4년에 정도전의 제안으로 건립한 궁궐의 정문이었다. 어영대장의 참모와 문지기 수장이 암구호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사정문 문지기 수장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늘밤에는 누구도 문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소.”

 

“왕비마마시다. 어서 문을 열어라.”

 

“믿을 수 없소.”

 

“넌 왕비마마 가마도 보지 못했느냐?”

 

“야심한 밤에 왕비마마께서 행차하실 리가 없소.”

 

“네 이놈, 무례하구나. 문 앞에 계시는 분은 어영대장 나으리시다.”

 

그제야 육중한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지기 수장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어영대장을 보자마자 납작 땅바닥에 엎드렸다. 말에서 내린 어영대장이 말채찍을 휘두를 듯 치켜들며 호통쳤다.

 

“문지기 수장이라는 놈이 왕비마마의 가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나으리. 죽을죄를 졌습니다.”

 

교대를 대기하고 있던 문지기 군사들도 군막에서 두 손을 비비고 나와 문지기 수장 뒤쪽에서 엎드렸다. 그러자 어영대장은 뜻밖에 관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죄를 지은 게 아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문지기 군사들이 엎드린 채 고개를 쳐들고 어리둥절해 했다. 왕비가마를 분별하지 못한 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상을 내리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문지기로 배속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군사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영대장은 국수가닥처럼 얼어붙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시(子時)쯤 돌아오겠으니 이후로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

 

“네, 나으리.”

 

어영대장은 가마를 호위한 군사들을 사정문 군막에 남게 하고 자신은 가마꾼과 함께 동별궁으로 향했다. 세종은 세자(문종)의 별궁인 동별궁으로 미리 가서 쉬고 있을 터였다. 초저녁부터 어영대장을 기다리고 있던 장번내시가 청사초롱을 들고 나타났다. 궁 안에서는 관례에 따라 장번내시가 가마 앞에 서고 어영대장은 뒤로 물러섰다. 청사초롱 불빛에 궁궐 뜨락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정원의 푸나무들과 건물 사이사이 마당이 눈을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윽고 동별궁 문 앞에서 가마가 멈추었다. 어영대장이 짧게 말했다.

 

“대사, 내리시오.”

 

“나으리, 고맙소이다.”

 

어느새 동별궁 문을 열고 나온 두 궁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함허와 신미는 장번내시를 따라 동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보니 어영대장과 가마꾼들은 보이지 않았다. 궁녀가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있었다. 동별궁 안은 부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함허와 신미는 장번내시가 세종의 침전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눈을 맞으며 마당에서 기다렸다. 처마 밑에 내어걸린 등롱이 눈보라에 흔들렸다. 그러자 동별궁 정원의 푸나무들에 얹혀 있던 눈덩이가 낙화인 듯 떨어졌다.

 

함허는 담담했지만 신미는 두렵기조차 하였다. 가마를 타고 있었으므로 밖의 풍경이 차단된 채 불과 몇 식경 만에 다가선 현실이 꿈속의 일만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임금을 만나리라고는 상상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신미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세종은 말을 걸기조차 어려운 엄한 임금의 인상이 아니었다. 엎드려 절한 뒤 잠깐 동안 고개를 들어 보니 동안의 청년처럼 풋풋하고 왠지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눈매는 부드러웠고 열정이 담겨 있었다. 불빛에 빛나는 이마는 지혜롭게 보였고, 세종의 마음도 둥그런 이마처럼 넓고 자애로울 것 같았다.

 

앉아 있는 자세는 바위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말할 때마다 간간히 어깨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신미는 세종의 따뜻한 음성을 듣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종은 함허에게 먼저 눈길을 주더니 말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소. 과인은 눈보라가 그치지 않기에 은근히 걱정을 했소.”

 

“미천한 소승을 불러주시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함허는 동별궁 마당에서 신미에게 건네받은 자신의 저서 <현정론>과 <금강경오가해 설의>를 세종 앞으로 나아가 바쳤다. 세종은 책을 받아 제목만 읽고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사를 만나고 싶었소. 오늘에야 뜻을 이루었으니 앞으로는 대사를 자주 부르겠소.”

 

“전하, 수행이 일천한 소승은 전하의 혜안을 흐리게 할 소지가 다분하오니 깊이 살피신 뒤 불러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겸손이 아름답소. 과인은 정사를 펼치면서 대사의 안목이 필요할 때마다 별궁이나 침전에서 만날 것이오. 그러니 옆에서 과인을 도와주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함허의 대답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신미는 함허의 말투에서 ‘전하가 하명하신다면 불길 속이라도 뛰어 들겠습니다’라는 결심을 읽었다. 세종도 함허와 이심전심했는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세종이 함허를 부른 것은 이른바 ‘대장경 외교’에 있어서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야심한 밤이니 과인은 대사에게 묻고 싶은 말을 더 참지 못하겠소.”

 

“전하, 무엇이옵니까?”

 

“경자년(1420)에 일본 사신이 우리나라에 온 일이 있소. 사신 양예(亮倪)는 <대장경>을 달라고 왔소.”

 

세종이 얘기하는 <대장경>은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된 <대장경판>이 아니라 여러 사찰들이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인쇄본을 말했다. 세종은 군권을 쥔 상왕(태종)의 의지로 즉위하자마자 대마도를 정벌하여 일본과 사이가 소원해졌으므로 사신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왕권이 안정된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일본과 전쟁을 하기보다는 화친을 다져야 했고, 대마도와 일본 섬에는 일찍이 왜인 도적에게 붙잡혀갔거나 풍랑에 표류하여 거주하게 된 조선인 어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그들을 불러들여 조선 땅에 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하, 양예가 바라는 것은 그뿐이었습니까?”

 

“오직 <대장경>만 달라는 것이었소. 희귀한 것이므로 함부로 내어줄 수 없는 것이지만 인정전에 나온 군신들의 생각은 다르오. 배불의 나라에서 <대장경>은 무용지물이니 내어주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소.”

 

“전하, 무용지물이 아니옵니다. 고려에서는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대장경>을 제작했사옵니다. <대장경>을 제작한 것은 부처님의 가피로 호국하자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사옵니다. <대장경>에는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다는 거룩한 뜻이 있사오니 결코 무용지물이 아니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있는 <대장경>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불교국에서 유교국이 됐으니 이제는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허나, 과인은 <대장경>이 무용지물이라는 군신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것은 또 무슨 뜻이옵니까? 소승은 도무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우리나라의 <대장경>은 모두 한자로 된 것이오. 어떤 사찰에는 범자로 된 <대장경>도 있소. 그러니 문식(文識)이 깊은 승려들이나 부처의 가르침을 읽을 수 있지 나라 안의 백성들이 그것을 어찌 읽을 수 있겠소. 부처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없는 진리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한자로 된 유가의 경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무지렁이 백성들에게는 한낱 그림의 떡일 뿐이오.”

 

신미는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엎드려 입을 열었다.

 

“전하, 모든 백성이 <대장경>이나 유가의 경전을 볼 수 있도록 한자가 아닌 우리 글자를 만드시옵소서.”

 

신미의 제안에 세종은 잠시 침묵했다. 신미는 숨을 죽이며 세종의 기색을 살폈다. 세종의 입가에는 잠깐 미소가 어리었다.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여러 의견들을 들어가면서 심사숙고한 뒤 결정하겠다는 신중함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지금 세종의 관심은 오로지 일본과의 이른바 ‘대장경 외교’에 있었다.

 

세종은 다시 함허에게 물었다.

 

“일본 왕이나 구주총관 등이 우리나라에 있는 <대장경>만 바라니 그 뜻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오?”

 

“일본을 불국(佛國)으로 만들고자 함이옵니다.”

 

“과인은 어찌 처신해야 하는가?”

 

“전하께서는 화친도 더없이 중요할 것이오나 소승은 부처님 제자로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더욱이 해인사 <대장경판>은 우리나라에 오직 1질밖에 없사오니 숙고해 주시옵소서. 소승, 다시 엎드려 간청을 드리옵나이다.”

 

함허는 인쇄된 <대장경>은 물론 해인사가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에둘러 점잖게 말했다. 사신 송희경(宋希璟) 일행 편에 <초조대장경> 인쇄본을 일본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는 세종이 또 다시 일본사신의 요구에 응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국왕이나 왕후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어 지속적으로 <대장경>을 달라고 떼를 섰다. 나중에는 해인사에 <대장경판>이 있음을 알고는 그것까지 요구했다.

 

“일본과의 화친도 중요하거니와 <대장경>을 무용지물이라는 군신들의 의견을 무조건 물리칠 수만은 없으니 백성이 알지 못하는 한자로 된 경전이나 중들도 읽지 못하는 범자 <대장경>은 과인의 뜻대로 하되 오직 1질밖에 없는 해인사 <대장경판>은 결코 내어주지 않겠소.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해인사 <대장경판>을 지키신 전하의 공덕은 춘추만세에 빛날 것이옵니다.”

 

신미는 해인사에 <대장경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해인사에 가면 부처님의 팔만사천 가르침을 다 볼 수 있을 터였다. 신미는 흥분하여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세종의 한 마디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났고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오롯이 담긴 <대장경판>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시간을 알리는 고루(鼓樓)가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한밤중인 자시(子時)를 알리는 북소리가 바로 문밖에서 들리는 듯하였다. 그제야 세종이 일어나 함허에게 말했다.

 

“과인은 반드시 대사를 지척에 두고 지혜를 구할 것이오.”

 

신미에게도 지난여름에 약속한대로 격려의 말을 했다.

 

“그대는 대사를 잘 받들어 불가의 동량(棟樑)이 되라. 과인은 흥천사의 사리전을 잊지 않으리라.”

 

함허와 신미는 세종이 방을 떠나고 없을 때까지도 엎드려 절을 했다. 그런 뒤 내시를 따라 동별궁 문을 나섰다. 문 밖에는 어느 새 타고 왔던 가마 두 대가 놓여 있었다. 가마꾼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어영대장 참모의 지시에 따라 가마가 움직였다. 사정문에서는 초저녁에 가마를 호위했던 군사들이 다시 따라붙었다. 어영대장 참모가 소리쳤다.

 

“대사님을 흥천사로 모셔라.”

 

눈발은 그쳐 있었다. 바람도 잦아 눈길은 사뭇 포근했다. 함허와 신미가 탄 가마는 검문 없이 육조거리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도 밤의 어두운 장막을 찢지는 못했다. 야경을 도는 포도청의 포졸들이 희미하게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