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7회>

 

 

오대산으로 가려던 신미는 흥천사에 남았다. 스승 함허가 신미의 오대산행을 단호하게 막았던 것이다. 중물이 덜 든 풋중이니 대중 속에서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미는 몹시 아쉬웠지만 함허의 당부를 따랐다. 다행히 흥천사 주지가 방을 하나 내주겠다고 약속했던 적이 있으므로 군색한 처지는 아니었다.

 

신미가 남자, 흥천사 여러 대중 가운데 누구보다도 주지스님이 반색했다. 마음속으로는 신미가 흥천사를 떠날지 모르므로 은근히 걱정했던 참이었다. 주지스님이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신미스님, 흥천사에 남아 나를 좀 도와주어야 하네.”

 

“은사스님께서 오대산으로 혼자 가신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 그랬습니다. 저도 오대산에서 정진하고 싶었습니다만 아직은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허허. 삼각산이나 오대산이나 다 같은 청산이 아닌가. 청산에 머무는 흰 구름 같은 것이 우리들 중의 살림살이이고.”

 

“스님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저도 이곳 흥천사가 좋아 아쉬웠던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신미는 공손하게 주지스님 앞에서 합장했다. 사실 신미는 함허가 흥천사 산문을 나선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 함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주지스님의 배려로 흥천사의 심장 같은 5층 사리전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다. 백일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말끔하게 함허의 그림자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사리전의 주불은 42개의 손을 가진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었다. 42개의 손은 1천개의 손을 상징하는 것이니 천수관세음보살인 셈이었다. 천수관세음보살의 1천개의 손은 세상 사람들의 온갖 고통을 다 어루만져 낳게 해주므로 대자대비의 손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은 신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미는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 자신을 보고 미소 지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 재를 지낼 때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 갑자기 입술을 움직이며 자애롭게 웃었던 것이다. <아미타경>을 소리 내어 외는데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 굳게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었던바, 그때 신미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쥐고 있던 목탁을 떨어뜨릴 뻔했고 자신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염불했던 것이다.

 

그날 밤 신미는 자신의 경험이 너무도 신령하여 함허의 방을 찾아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함허는 쥐고 있던 부채로 윙윙거리는 모기를 쫓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관음보살님이 입술 좀 달싹인 걸 가지고 무얼 그리 호들갑이냐!”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그럼, 네 앞에 계시던 관세음보살님이 허깨비란 말이냐.”

 

“아닙니다.”

 

“손은 움직이지 않더냐?”

 

“너무 놀란 나머지 다른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42개 중에서 한 개의 손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봐야 했는데 아쉽구나.”

 

“스님께서는 다 보셨다는 말씀입니까?”

 

“마음을 다해 염불하는 중에게는 이심전심의 눈이 생기는 법이야. 염불삼매에 들면 부처님 의 눈썹이 몇 개인지, 부처님 마음까지도 다 볼 수 있어.”

 

그날 밤 신미는 함허의 방에서 아리송한 대답만 들은 채 모기들에게 된통 고통만 당하고 물러나오고 말았다. 하필이면 모기가 입술을 물어 부풀어 올랐다. 함허의 골방으로 날아든 모기들이 유독 젊은 신미에게만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 어느 절에 있다가 흥천사 사리전으로 모셔졌는지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태조가 계비인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어주고자 흥천사에 사리전을 건립한 뒤 어디선가 이운해온 것만은 분명했다. 태조가 다니던 절에서 왔을 가능성이 컸다. 태조가 불모를 시켜 조성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그것은 믿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이 신덕왕후를 닮아 여성스럽고 자애로운 모습이 돼야 하는데 남성스럽고 위엄이 느껴지는 풍모인 것이었다.

어쨌든.

원경왕후 재가 끝난 지 두 달 만이었다.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은 신미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신미는 기도하고 난 뒤 사리전 주변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었다. 삼각산 자락의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낙엽들이 바람에 사리전으로 불려와 뒹굴었다. 신미는 낙엽을 쓸다가 비질을 멈추었다. 낙엽들이 우수수 우수수 소리 내며 굴러다녔다. 새들만 소리 내어 우는 줄 알았더니 메마른 낙엽도 슬픈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몸집이 큰 늙은 사내가 산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내의 몸이 산문을 꽉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흥천사에 머물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미 늙은 사내는 대방 쪽으로 사라졌지만 신미는 자꾸 산문 쪽에 눈을 주었다. 산문의 기왓장에 붉은 빛깔의 노을이 떨어지는 시각이었다. 무상감(無常感)이 밑도 끝도 없이 바람 한 자락처럼 옆구리로 스쳤다.

 

아마도 사내가 대방에 든 모양이었다. 잠시 후 11살 된 동자승이 신미에게 다가와 삭발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스님, 손님이 찾습니다.”

 

“나를 말이냐.”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나를 불러오라고 하다니.”

 

신미는 가늘게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빗자루를 떨어트렸다.

 

“유배되신 아버지께서 종편(從便)을 받으셨다는 말인가!”

 

종편이란 임금이 내리는 사면을 뜻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흥천사에 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출가한 뒤에는 속가 소식을 자세히 듣지 못했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므로 신미는 뜻밖의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동자승을 앞세워 대방으로 든 신미는 뜻밖에 담담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절을 받으려는 듯 아버지 김훈이 양반자세를 하고 앉아 신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신미는 아버지 김훈에게 사찰의 예법에 따라 절하지 않았다.

 

“용서하십시오. 중은 속가의 인연을 끊어버린 까닭에 절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와 아버님은 스님과 신도 사이일 뿐입니다.”

 

“절이 그런 곳이라면 별 수 없지.”

 

김훈이 입맛을 다시며 떨떠름해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싶지는 않은지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부자지간의 천륜마저 부정할 수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천륜을 어찌 부정하겠습니까? 다만 지금의 제 처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잘 계십니까?”

 

“할아버님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아직도 유배지에서 세상을 한탄하고 있겠지.”

 

김훈이 자라처럼 큰 손을 불끈 쥐었다. 늙은 아버지 김종경(金宗敬)이 신소하여 전라도 유배지를 떠나 고향인 영동에만 살게 해주었는데, 얼마 뒤에는 서울 이외의 지역은 어디서라도 살 수 있도록 사면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군에 가담한 공이 있기 때문이었다. 활을 쏘아 사나운 맹수를 잡는 등 무예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김훈이 처남 이적(李迹)을 통해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군에 종군을 자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훈이 불효, 불충의 죄인이었던 까닭에 이종무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세종 1년에 군권을 쥐고 있던 상왕(태종)에게 보고한 뒤 허락을 받아 참모로 기용했던 것이다.

“아버님, 절에 왔으니 사리전에 들어 사십이수관세음보살님을 참예하십시오. 절은 절하는 곳입니다.”

 

김훈은 신미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든 거침없었던 예전과 달리 기가 좀 꺾여 있었다. 수원 관기 벽단단을 데리고 태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종이 사는 인덕궁을 드나들던 때의 호기는 보이지 않았다. 정종의 궁인 소매향(小梅香)은 벽단단의 숙모였으므로 필요할 때마다 궁궐의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사십이수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아버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도하시면 다 들어주시는 부처님이십니다.”

 

김훈은 신미가 권유하지 않았는데도 큰절을 했다.

 

“아버님도 절하시면서 기도를 하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조상님께 불효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나야말로 아무렇게나 산 불효자식이 아니더냐.”

 

“맑은 심신으로 기도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나같이 함부로 살았던 사람이 맑아질 수 있겠나.”

 

“늦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사십이수관세음보살님께 절하십시오. 절하는 횟수만큼 아버님의 업이 반드시 씻기어질 것입니다.”

 

“사십이수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인가?”
“아닙니다. 영동의 영국사 관세음보살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님을 힘들게 하셨으니 이제는 어머님을 위해서도 기도하셔야 합니다.”

 

김훈은 여색을 좋아하여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첩 벽단단 말고도 지방 수령으로 가 있으면서 소실을 두어 자식이 생기면 영동 본가의 아내에게 보냈는데, 심성이 바른 김여달(金如達)도 그런 자식 중에 한 명이었다.

 

김훈은 신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버님, 영동으로 내려가시거든 술과 고기를 끊으십시오. 술을 끊으시면 정신이 맑아질 것이요, 고기를 끊으시면 몸이 맑아질 것입니다. 술과 고기를 끊고 기도하시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김훈은 신미가 원하는 대로 사십이수관세음보살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신미는 김훈의 그런 모습을 보고 가만히 사리전을 나왔다. 김훈은 늙은 나이였지만 무술로 단련한 몸이었으므로 절을 절도 있게 했다. 두어 식경이 지났지만 조금도 절하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삼경 무렵이 되어서야 김훈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땀이 마룻바닥을 적셨다. 김훈의 호흡도 거칠어져 있었다. 그러나 강골인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합장한 채 서 있는 신미를 보고 나서는 굵은 눈물을 흘리더니 마룻바닥에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버님.”

 

신미를 바라보는 김훈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아버님이야말로 바로 부처가 되실 분입니다.”

 

신미가 김훈을 향해 절을 했다. 그러자 김훈이 신미의 팔을 잡아끌며 만류했다.

 

“지금부터는 아들이 아닙니다. 저를 제도할 스님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님, 사십이수관세음보살님을 보십시오. 아버님의 참회를 다 받아주시고 용서하시는 모습입니다.”

 

“스님, 관세음보살님을 보니 저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날 밤, 김훈은 신미의 방에서 잤다. 신미는 잠을 자지 않고 김훈의 얼굴을 보았다. 창호를 넘어온 달빛이 김훈의 얼굴에 어려 있었다. 문득 또렷한 인중과 굵은 입술이 사십이수관세음보살과 흡사하게 보였다. 달빛 한 자락이 떠나지 않는 김훈의 얼굴에는 부처의 온화한 기색이 서성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