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바탕에서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만물이 만들어지는 모습. 이는 모든 존재들이 창조되는 공통적인 과정이다. 먼저, 대상과 의식이 물아일체物我一切인 공空의 바탕이 있고, 거기에서 소용돌이치는 나선형의 동심원의 에너지가 돌아가다가, 거기에서 만물이 생성하는 순서로 전개된다. 불교조형미술의 대부분이 이러한 핵심적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소용돌이 속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과정이 묘사됨.  

 

 

 

다르마 차크라(법륜)는 불성佛性이 온 누리에 퍼져있다는 진리를 묘사한 것이다.
 

  우주의 근원자리에서 신성한 에너지가 돌아가는 모습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 ‘卍(만)’이다. 卍(만) 자는 차크라의 중심에서 찬란한 빛의 기운이 회전하는 모습이다. 법륜이나 만자는 양자 모두, ‘삼라만상의 근원적 생성’의 모습이기에 여타 종교에서도 이것을 대표 상징물로 공유하고 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풀면 ‘법신-보신-응신’의 현현顯顯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법신에서 보신이 일어나는 모습을 한꺼번에 동시에 표현한 것이 바로 ‘연꽃’이다. ‘코즈믹 로터스Cosmic Lotus’라 불리는 우주의 연꽃, 창조의 연꽃이 불교의 또 다른 중요한 상징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꽃은 만물의 근원과 이것의 작용인 ‘체體’와 ‘용用’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창조의 연꽃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불교미술은 매우 다채로워서 자칫 복잡해보이지만, 이와 같은 간단한 법칙을 상기하면, 모든 조형물들이 아주 간단한 원리 하에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즉, 불교미술은 ‘법신’이라는 ‘만물의 바탕’까지 넣어서 보면 그 원리에 바로 통달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사물 안에는 법성이라는 근원(법신)과 그것의 작용하는 에너지(보신)과 육안으로 보이게 나타나는 결과(응신)이 바로 지금 같이 현존現存하고 있음을 역력히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자는 사자가 아니고 코끼리는 코끼리가 아니고 낙타는 낙타가 아니고 ‘나’는 ‘나’가 아님을 통찰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공空에서 연기緣起-연생緣生-연멸緣滅을 찰나적으로 무상하게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미술은 이러한 진리를 끊임없이 우리 중생들에게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인도 전역에 8만 4천 탑을 세우고 불교를 세상에 대대적으로 전파한 최초의 후원자인 아쇼카왕. 그는 매우 못생기고 난폭하여 ‘잔인한 아쇼카’로 불렸다. [각주: 아쇼카왕은 99명의 왕자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쇼카는 맏아들이 아니라서 상속권이 없었고 또 아버지 빈두사라왕이 아주 싫어한 아들이었다. 추한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맏아들 수시마를 당연히 후계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어쩔 수 없었던 탁실라 지역의 반란을 단번에 진압했지만 아버지는 마땅치 않게 여겼다. 아쇼카는 왕위 쟁탈전에 99명의 이복형제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통치권을 장악한다. 이 소식은 들은 병중의 아버지는 피를 토하며 분노하며 죽었다고 한다. 『전륜성왕 아쇼까』 (이거룡) p.85-90 요약] 하지만 불교에 귀의한 후, 그는 파야다시왕 ‘만물을 자비로 대하는 왕’으로 불렸다. 석가모니 입멸 200년 후, 아쇼카왕이 없었더라면 과연 불교의 전파가 가능했을까. 또 아쇼카왕이 사리탑을 세워 장엄하지 않았다면, 불교미술은 과연 가능했을까. 불교의 최초이자 최고 후원자인 아쇼카. [각주: 아쇼카는 번역하면 무우無憂가 된다. 또 불교로 전향 이후에는 전륜성왕(cakravarti-rāja: 정법正法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이상적인 제왕)으로 불렸다. 아쇼카왕, 무우왕, 피야다시왕(친애희견왕), 전륜성왕 등 모두 같은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쇼카왕은 전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에 아직도 불교미술 속에 살아 계시다. 

 

 

 

  흙을 보시한 아이, 우리나라 팔상탱 <녹원전법상> 

 

  조선시대를 관통하여 우리나라 사찰에 걸렸던 유명한 불화 장르 중에 하나가 ‘팔상탱八相幀’이다. 석가모니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것인데, 이중에 제7번째 화폭인 <녹원전법상>에는 부처님께서 득도得道하신 후 전법傳法하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먼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 법을 전하시는 모습이 있고, 전하신 법의 내용은 부처님께서 노사나불로 화신한 모습으로 장엄된다. 또 금강계단의 묘사되는 깨달음과 그것을 향한 계율의 단壇이 우뚝 서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법상에 빠지지 않고 고정으로 묘사되는 두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는 ‘포금치지布金置地’이고 또 하나는 ‘소아시토小兒施土’이다. 포금치지는 수달장자가 금을 사서 절터에 깔아 기원정사를 마련해 준 이야기이고, 소아시토는 흙을 보시한 아이 이야기이다. 이 흙은 보시한 아이가 바로 아쇼카왕이다. 아쇼카왕과 수달장자는 불교의 전법에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인물로서, 이렇게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녹원전법상> 속에 살아서 숨 쉬고 계시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성 안에 들어가 걸식하실 때였다. 아이들이 흙으로 집과 창고를 만들어 쌀이라고 하며 흙 놀이를 하였다. 그 중에 두 아이가 부처님이 마침 지나가는 것을 보고, 흙을 쌀이라고 하며 공양을 했다.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고 그것을 받아 아난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흙을 가지고 정사에 내가 거처하는 방에 바르라. 이 아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흙을 보시한 공덕으로 내가 열반 든 후 백년 뒤에 국왕이 될 것이다. 이름은 아쇼카이다. 한 가지로 삼보를 받들어 불법을 크게 일으킬 것이며 사리를 널리 펴고 나를 위해 8만 4천탑을 건립하리라.”                           
                                                       -『현우인연경賢愚因緣經』
 

 

 

  또 다른 기록을 요약 해보면 다음과 같다. 「덕승德勝과 무승無勝이라는 아이가 흙을 가지고 노는데, 흙으로 성을 만들고 그 안에 집과 창고를 만들어 흙으로 보릿가루라 하며 쌓아 넣었다. 부처님이 지나가시자, 매우 기뻐하며, 덕승이 두 손으로 창고 속 흙을 움켜쥐고 보릿가루라 하며 세존께 받들어 올렸다. 그리고 “장차 저로 하여금 천지를 덮어 다시 공양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빌었다. 이에 부처님이 아난 존자에게 “내가 죽은 뒤 백 년 후 이 아이는 전륜왕이 될 것이니 성은 공작(마우리야)이고, 이름은 아육(아쇼카)으로서 정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할 것이다. 또 내 사리를 널리 전파하여 8만 4천 탑을 조성하여 무수한 중생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아육왕경』,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등) 라고 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의 아쇼카왕에게 수기를 주는 내용일 확인할 수 있다. 전법과 교화로 세상을 구하는 대왕으로서의 그의 역할이 이미 나와 있다. 

 

 

 

  부처님 성지를 참배하는 아쇼카왕의 모습

 

  그 외, 아육왕을 최초로 조상한 작품들로 산치대탑의 장엄 문門 패널 부조상浮彫像를 들 수 있다. 아육왕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백방으로 단독 초상을 찾아보았지만, 그의 아버지 빈두사라왕까지는 단독 조각상이 확인되지만, 이상하게도 아육왕의 단독상은 없었다. 피부가 거칠고 못생긴 추남이었기에 없는 것일까. 그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는지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산치대탑의 부조로나마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들 부조는 아육왕의 전법 활동을 중심으로 대서사시적인 풍으로 조각되었다. 산치대탑 제1탑 동쪽 문에서는 부처님의 성도지 보드가야를 참배하는 아쇼카왕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쇼카왕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로 화려한 행차를 했는지, 이 부조 패널을 보면 당시 광경을 십분 상상할 수 있다. 무수한 신하들이 횡렬 종대로 공양물과 풍악을 울리면서 행진한다. 패널 한 가운데에는 금강대좌 위에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있다. 아시다시피, 초기불교미술 무불상시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사람 형상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신 ‘정각正覺의 상징물’들로 표현했다. 보리수나무는 정각에 든 장소이기에 큰 깨달음에 궁극으로 계합한 부처님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보리수나무(정면에서 보아) 오른쪽을 보면, 커다란 코끼리에서 내리는 야쇼카왕과 그 부인의 모습이 확인된다. 아쇼카왕 뒤에는 하인이 천개天蓋를 받쳐들고 있다. 왕과 왕비는 바로 이동하여 보리수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합장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리고 보리수나무 왼쪽으로는 두 분이 둥근 공양 단지를 들고 이것을 올리는 장면이 포착된다. 왕과 왕비 옆에 있는 작은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들로 왕가 일족이 모두 행차하였다. 그 주변으로는 신하들의 꽃 공양, 향 공향 등이 뒤따른다.

 

 

 

 

  산치대탑 제1탑의 남문의 기둥 패널에서는 사리탑을 참배하는 아쇼카왕의 모습을 발결할 수 있다. 기다란 난간의 한 가운데에는 부처님의 사리탑이 궁글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왼쪽에는 ‘나가라자(용왕)과 나기(용 왕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아쇼카왕이 보인다. 아쇼카왕은 (패널 우측 끝부분을 보면) 왕비와 함께 코끼리를 타고 나타난다. 주변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여 왕족 일가가 함께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리탑 가까에 와서 아쇼카왕은 전차로 갈아타고 있다. 즉,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왼쪽의 나가라자(Nāga-Raja)에게 있다. 나가라자와의 전설 중에는 ‘아쇼카왕이 전법을 위해 불처님 사리탑 8기 중에 7개의 탑은 열어 분파하였지만, 마지막 라마그라마 탑은 나가라자가 굳건히 지키고 있어 열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아쇼카왕과 나가라자 용왕은 서로 부처님 사리탑에 대한 보호권 또는 종주권을 행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왼쪽의 나가라자와 나기는 머리 뒤에 7 마리의 뱀을 광배로 삼고 있다. 즉 무수한 뱀의 에너지의 대왕인 것이다. 뱀은 습기가 많은 곳, 즉 ‘물’을 상징한다. ‘나가’는 산스크리트로 뱀 또는 코브라를 뜻한다. ‘나가라자’는 ‘뱀들의 제왕’이라는 뜻으로 ‘용왕龍王’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뱀이 아니라, 강 · 호수 · 바다 등 물을 지배하는 정령 또는 신이다. 나가는 몸은 뱀의 형상이고 머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또는 머리 부분에 7마리 또는 9 마리의 무수한 뱀 머리가 합해져 마치 코브라처럼 묘사된다. 나가는 남성, 나기 또는 나기니는 여성으로 표현되며 그 모습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다. 또 산치대탑 남문에는 보리수나무를 시기한 여왕 이야기가 있다. 야쇼카왕이 보리수나무를 너무 아끼는 것을 시기한 나머지, 나무를 저주하여 시들게 한 것을 보고 아쇼카왕이 충격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지면상) 후일을 기약한다. 

 

   
  아쇼카왕은 룸비니, 사르나트, 보드가야 등 부처님의 성지를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 석주 및 사원을 건립하고 부처님의 뜻을 기렸다. 이로 인해 불교는 급격히 퍼져나갔고, 승가는 보호되었으며, 민중들도 이곳 장소들을 성지聖地로 인식하게 된다. 또 이렇게 석주를 세우고 표시를 해준 아쇼카의 공덕으로, 현재의 우리들도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이적을 일으키신 곳임을 알고, 성지 순례가 가능한 것이다.  

 

글ㆍ사진: 강소연(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