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2회>

 

 

신미는 복천암에서 1년 6개월을 보냈다. 마침내 승복을 입을 수 있는 사미승이 되었고, 주지스님은 불경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함허가 주석하고 있는 가평 현등사로 떠나라고 일렀다. 주지스님 머릿속에는 암자의 양식이 떨어져 입을 하나 덜자는 속셈도 있었다. 신미는 주지스님의 속내를 잘 알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속리산 복천암을 떠났다. 사미승이 되고 나서도 공양주보살 옆에서 반찬거리를 장만하는 채공(菜供)이 되어 누구보다도 곤궁한 공양간 살림을 훤히 아는 신미였던 것이다.

 

승려들이 매우(梅雨)라고 부르는 장마가 물러난 초여름이었다. 문장대에서 한 방울의 물로 발원한 복천암 계곡물이 콸콸 소리치며 흘렀다. 신미는 화두를 들 듯 오로지 함허만을 머릿속에 붙잡고 걸었다. 초여름의 햇살은 목덜미를 따갑게 파고들었다. 그래도 산등성이 너머에서 마파람이 간간이 불어와 땀이 쉬이 마르곤 했다. 신미는 풀을 먹인 승복을 펄럭거리며 산길을 탔다. 탁발을 잘하여 배가 부르면 두 팔을 휘휘 저으며 걷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산야의 일교차는 심했다. 산짐승 소리가 나는 밤이 되면 으슬으슬 추웠다.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를 대비해서 동굴이나 큰 바위 밑을 찾아 웅크리고 잤다. 길을 나서기 전, 복천암 주지스님이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었는데 쓸모가 많았다.

 

“여름철에 노숙할 때는 물가를 피해야 한다. 잠자리는 동굴이나 바위 밑이 좋다. 여름철에는 소나기가 자주 내리기 때문이다. 이 새끼줄을 꼭 걸망에 넣고 다녀라. 맹수가 출몰하는 산에서는 나무 위로 올라가 이 새끼줄로 네 몸을 꽁꽁 동여매고 자거라. 목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방법은 절을 찾아가 하룻밤 신세지는 것이었다. 절에 들면 탁발할 필요도 없고 잠자리 걱정도 사라졌다. 그러나 신미는 지름길을 벗어나버린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을 찾지 않았다. 탁발한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현등사로 향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현등사로 가는 지름길을 묻고 또 물을 뿐이었다. 마을을 발견하지 못해 탁발하지 못한 날은 개울물로 배를 채우며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함허를 만나기 위해 금싸라기처럼 촌음을 아꼈다. 자나 깨나 귓가에는 복천암 주지스님의 말이 맴돌았다.

 

“우리 조선에서 함허스님만큼 <금강경>의 대의를 꿰뚫은 선승이 없다. 함허스님은 한자는 물론 천축의 지공대사가 가지고 들어온 범자(梵字)로 된 <밀교대장경>까지 줄줄 외우는 분이다. 그러니 <금강경> 하면 중국에서는 덕산스님이 으뜸이었고, 조선에서는 함허스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스님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금강경>에 관한 한 중국의 덕산보다 함허가 더 수승하다고 봐야 옳았다. 함허는 부처님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는 범자로 된 <금강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범자 <금강경>을 아무리 잘 한역하였다 해도 그것은 원본의 근사치일 뿐이고, 덕산이 본 <금강경>은 어디까지나 한역인 까닭이었다.

 

한편, 천축의 글인 범자는 고려말에 입국한 천축승 지공이 나옹에게, 나옹이 무학에게, 무학이 함허에게 가르쳐주었을 터이다. 지공이 천축에서 가지고 들어온 <밀교대장경>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필수적으로 범자를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훗날 신미가 스승인 함허에게 범자 <밀교대장경>을 공부하여 달통하였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신미는 과천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런 뒤 다시 장삿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장돌뱅이들이 장삿배를 양근나루터에 묶자, 거기서부터는 북한강 샛길을 이용해 또 다시 걸었다.

 

이윽고 신미는 강가 절벽 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북한강에 홍시빛깔 같은 노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잠자리를 정해야 했다. 절벽 아래로는 손금 같은 오솔길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은 절벽은 성벽처럼 몹시 높았다. 바위들이 층층이 포개져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신미는 절벽 하단쯤 움푹 들어간 곳으로 갔다. 동굴이라기보다는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듯싶었다. 앉아보니 붉은 놀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무리의 새들도 잠자리를 찾는지 마지막 날빛으로 밝은 허공에 점을 찍으며 바삐 날고 있었다.

 

신미는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으므로 허기가 졌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견딜 만했다. 현등사를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눈을 붙였다가 동이 틀 무렵에는 걸음을 재촉할 심산이었다. 현등사가 있는 가평 운악산까지는 넉넉잡아 한 나절 한 식경의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신미는 보득솔 밑에서 마른 솔가리를 두 손으로 모았다. 보득솔 생가지는 하나도 꺾지 않았다. 한 아름 구해온 솔가리를 펼쳐서 부들방석처럼 자리를 깔았다.

 

사위는 금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강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낮과 달리 차가워졌다. 그때였다. 길을 가던 처녀가 신미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님, 강바람이 차갑습니다. 왜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하려고 합니까?”

 

“내 걱정 말고 처자는 어서 집으로 가시오.”

 

“저희 집은 절벽 뒤 산자락에 있습니다. 스님을 뵙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처녀가 완강하게 말했지만 신미는 그녀를 따라 나설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자 처녀가 신미를 안심시켰다.

 

“저희 아버지도 스님입니다.”

 

“처자, 아버지가 스님이라고 말했소?”

 

신미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제야 처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댕기머리를 하고 있지만 처녀는 시집갈 나이가 다 돼 보였다. 발그레한 볼이 둥근 박처럼 토실했다. 변성기를 맞이하고 있는지 목소리만 들어서는 선머슴 같았다.

 

“어머니는 절 일을 보고 있습니다.”

 

“처자가 나를 걱정하는 까닭을 이해하겠소. 허나 처자는 수행자인 내 입장을 생각해서 어서 돌아가시오.”

 

“스님, 여기서 주무시다가 병이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그러니 오늘밤은 저희 집에서 묵고 가셔야 합니다.”

 

“정말로 그러시다면 아버지가 계시는 절이 어디요? 그곳으로 가겠소.”

 

“관음사입니다. 여기서 관음사를 가려면 나룻배 타고 강을 건너야 하고 밤길을 한참 걸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나룻배가 끊어졌습니다.”

 

결국 신미는 선머슴 같은 처녀를 따라나섰다. 처녀가 사는 오두막은 절벽을 돌아서 자드락길을 오르자 바로 나타났다. 오두막은 다랑이 밭뙈기들 한쪽에 산자락을 등지고 있었다. 신미의 눈에는 처녀가 혼자 외딴 집에서 산다는 게 기이하게 보였다.

 

“스님, 공양은 하셨습니까?”

 

“오늘은 한 끼도 못했소.”

 

“방은 캄캄하니 마루에서 찬밥이라도 먼저 드셔야겠습니다.”

 

신미는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엌으로 들어간 처녀가 금세 개다리소반에 잡곡밥과 반찬을 올려 내왔다. 신미는 밥을 물에 말아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러자 처녀가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그릇에 찬밥을 한가득 들고 나왔다. 신미는 두 그릇째 밥은 더덕무침과 씁쓰름한 머윗잎 산채반찬을 곁들여 먹었다. 신미는 앉은 채 예를 갖추어 합장하며 한 마디 했다.

 

“깨달음을 주어서 고맙소.” “스님, 제가 깨달음을 드렸다니 말도 안 됩니다.”

 

“밥을 주었으니 하는 말이오.”

 

“밥이 어떻게 깨달음을 준단 말입니까?”

 

“주린 자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야말로 관세음보살님이 아니겠소? 밥을 준 처자가 내게 준 깨달음이오.”

 

초승달이 산등성이 너머로 떠올라 달빛을 뿌렸다. 처녀가 방으로 먼저 들어가 관솔불을 켰다. 죽석을 깐 방안은 관솔불의 그슬림으로 온통 검은 칠을 한 것 같았다. 드러난 서까래와 기둥들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처자, 어찌 이런 곳에서 살고 있소?”

 

“우리 가족 모두가 관노로 살고 있을 때보다는 더 없이 안락합니다.”

 

신미는 움찔했다. 신미의 가족도 하마터면 관노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을 뻔했던 것이다. 사간원 벼슬아치들이 아버지가 불효 불충의 죄를 저질렀으므로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청했고, 만약 태종이 받아들였다면 아버지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이고 가족들은 관노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극형이 아닌 유배형을 받았고 가족들은 그나마 무사했던 것이다.

 

“면천(免賤)이 됐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불경을 읽고 불당을 다니셨던 가평 현감이셨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가평향교 교생들이 배불(排佛)하는 임금님께 상소를 올려 가족 모두가 관노가 된 것입니다.”

 

성리학을 추종하는 유생들의 상소대로 배불정책을 적극적으로 폈던 임금은 태종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태종이 병권을 쥔 채 상왕으로 군림하는 동안에는 눈치를 보았지만 그가 죽은 즉위 4년 이후부터는 재위기간 내내 아들들인 수양과 안평 등 대군들과 함께 불교를 옹호했다.

 

“새 임금님께서 면천의 성은(聖恩)을 주시어 신분이 양인(良人)으로 바뀐 아버지는 스님이 되시고 어머니는 공양주를 하고 계십니다.”

 

“면천이 됐으면 다시 관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오.”

 

“아버지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불도(佛道)를 닦겠다고 합니다.”

 

신미는 자신의 법명을 밝혔다.

 

“소승의 법명은 신미라 하오.”

 

“소녀는 희우(喜雨)라 합니다.”

 

“기쁜 비라고 하니 덩달아 나도 흐뭇해지오.”

 

“아버지께서 횡성 현감으로 계실 때 불사(佛舍)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비온 뒤 저를 낳았다 하여 소녀의 이름을 희우라고 지었답니다.”

 

처녀는 신미가 하품을 하자, 곧 부엌에 딸린 골방으로 물러갔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만큼 하루 종일 걸은 데다 식곤증이 몰려와 하품을 해댔던 것이다. 신미는 드러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다음날 새벽.

 

신미는 처녀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살그머니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아침공양까지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처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는 사실이 문득 부끄러워서였다.

 

‘인연이 있다면 희우보살을 또 만나겠지.’

 

신미는 한걸음에 북한강을 벗어났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조종천을 따라 올라갔다. 서북쪽에 솟은 운악산과 명지산에서 발원한 개울물이 합수하여 흐르는 천이 조종천이었다. 복천암을 떠날 때 주지스님에게 가평의 지형을 자세하게 들은 바 있으므로 낯익은 길처럼 들어섰다.

 

그런데 정오 무렵 십여 호의 산간마을로 들어서 탁발하던 중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고샅길에 누렁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가 구부러진 한 명의 상노인과 서너 명의 노파들이 논에 들어가 피를 뽑고 있을 뿐이었다. 마을의 젊은 사내들은 가평 현창(縣倉)의 사역에 며칠째 동원되어 나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신미는 점심공양을 받은 대가로 갈 길을 접은 채 늙은이들과 함께 김매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