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속담에 ‘a man is known by his friends’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지만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람은 그의 친구들로 알려진다는 뜻이다.

그의 친구 내지 주변사람들을 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인드라망이자 공업중생(共業衆生)이다. 이는 중생들뿐만 아니라 부처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그들은 붓다가 이 땅에서 펼친 법의 일부이자 부처님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붓다가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들을 아주 소중히 전달하고 있다. 붓다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붓다의 이야기이자, 붓다를 따르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크게보기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붓다의 주변 사람들은 누구일까. 최근 작은손길 김광하 대표가 펴낸 신간 『붓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에는 붓다의 친척, 제자, 신도 등 붓다가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붓다의 주변인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주인공은 부처님이고, 주변인들은 어디까지나 손님이자 엑스트라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었다. 부처님이 조연, 그를 만난 사람들이 주연격이다.

김광하 대표는 왜 붓다를 조연으로 삼았을까. 그의 의도는 책의 맨 마지막 장인 ‘붓다의 후계자’ 편에서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부처님의 제자, 즉 불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과연 부처님의 문제의식을 우리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불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로서 살아가는, 붓다가 입적한 지 2500년 뒤에 그의 제자가 된 이들에게 필자는 우리 개개인이 붓다의 후계자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 우리가 불자이기 때문에 붓다의 후예라는 단순 논리가 아니다.

김 대표는 부처님 당시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으면 하늘에서 태어난다고 믿는 전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2차대전 가미카제를 부추겼던 일본 불교계를 이야기한다. 당시 일본 불교계는 검선일여(劍禪一如),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선불교의 정신을 전쟁논리로 미화시켰다.

또한 ��따(질다라) 장자의 일화를 통해 재가불자의 도리와 자세를 이야기한다. 붓다가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아낀 ��따 장자는 재가불자이면서 승단을 보호하고, 보시와 수행에 힘쓴 인물이다. 그의 삶은 2500여년간 수많은 이들에게 바른 재가불자의 표상이 되었다.

이처럼 김 대표는 붓다의 주변인물들이 바로 ‘나의 거울’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줄곧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책은 붓다의 수승한 제자들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꼬삼비 비구들의 일화나 데바닷타의 독립에서는 교단을 분열로 이끈 붓다의 제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책의 묘미는 그 분열상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 재가불자들의 역할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꼬삼비 지역에서 비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자 붓다는 이 지방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자 이 지역 신도들이 “꼬삼비 비구들 때문에 세존께서 번잡스러워 이곳을 떠났다”고 원망하면서 “꼬삼비 비구들에게 절하지 말고, 보고도 일서지 말고, 합장의 예를 갖추지 말고, 존중하지 말고, 공경하지 말고, 봉사하지 말고, 공양하지 말고, 온다고 해도 얻은 음식을 주지 말자. 그들이 우리로부터 존경과 봉사, 공양을 받지 못한다면 환속하거나 세존과 화해할 것이다”라고 결의한다.

결과는 당연히 신도들의 승리. 비구들이 붓다를 찾아가 율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불교 역사상 최고의 악한으로 등장하는 데바닷타. 그의 일화에서는 깨달음으로 인한 명성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아난이 붓다에게 “번뇌를 소멸한 어떤 수행승에게도 이득과 환대와 명성이 장애입니까”라고 묻자 붓다는 최고의 수행경지인 아라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답한다.

김 대표는 이 대목에서 “오랫동안 청정한 수행을 한 사람이 명예와 이익, 환대의 유혹에 넘어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볼 때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은 아난 존자에게도 놀라운 가르침이거니와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경책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붓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쉽지만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책이다.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비(非)불자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붓다를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을까. 혹시 데바닷타나 하늘나라 전사들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 등골이 서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