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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작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출간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8-04-20 (금) 13:48


법정스님   ⓒ 유동영
 
 
 사람들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남겨진 법정스님의 모습은 무었일까? 불교신자가 아닌 몇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동일했다.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스님의 장례식 모습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부분의 고승들이 꽃으로 장식한 운구차에 실려 갔지만 스님은 당신의 유언에 따라 그러지 않았다. 누운 스님을 가사 한 장으로 덮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스님의 그 모습은 송광사를 찾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 나는 뒷모습이 참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송광사 다비장을 오르는데 백양사에서 서옹스님이 하신 말씀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참사람은 죽음도 없어. 죽어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어.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지.”
 중국의 조주스님도 어느 장례행렬을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이 살아서 가는데, 만 사람이 죽어서 따라간다”
 나는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찌 나뿐일까? 스님의 마지막 길을 보려고 온 사람들 모두 그러지 않았을까? (본문 52, 54 쪽)
 
『법정스님의 뒷모습』은 2010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숨겨진 일화들이 남긴 마지막 가르침을 담은 ‘법정스님의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산문집이다. 『산은 산 물은 물』, 『암자로 가는 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정찬주가, 과거에 법정스님 저서의 담당 편집자로서, 아울러 각별한 재가제자로서 스님과 맺어온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스님의 평소 법문과 일치했던 실제 삶이야말로 우리가 간직해야 할 법정스님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입적하신 스님이 그리울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한번은 스님께서 국수를 끓이시고 내가 설거지 당번을 맡았을 때다. 스님께서 삶은 국수를 불일암 우물가로 가져가 찬물에 헹구어 식히는 와중에, 꼬들꼬들해진 국수 몇 가닥이 우물 밖으로 넘쳐흐르는 물에 떨어졌다. 순간 스님께서 망설임 없이 국숫발을 주워 드시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신도가 수행 잘하라고 보내준 정재(淨財)인데.”
 진정한 수행자란 상담이나 하는 카운슬러가 아니라 설명 없이 행동으로 가르침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21, 23쪽)
 
 
『법정스님의 뒷모습』 <1부>에는 법정스님이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거절할 정도로 권력자를 멀리한 이야기, 작가가 불일암에서 스님에게서 법명과 계첩을 받고 제자가 된 이야기, 스님에게서 낙관 없는 현판 글씨를 받은 이야기, 스님이 대원각 땅을 시주받아 길상사를 창건한 이야기, 작가가 과거 편집자로서 스님의 저서를 만들던 이야기, 스님이 입적하신 뒤 누에고치처럼 자신을 가두어 『소설 무소유』를 완성한 이야기 등이 나오고, <2부>에는 인생은 살얼음판위에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잡초들이 약초가 된다는 것을 알고 봄 마당이 노란 민들레꽃밭으로 변한 이야기, 충청사투리를 쓰는 이순신 장군도 명장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자애롭고 속 깊은 아버지 였다는 이야기 등 스님의 가풍을 이어 받아 작가가 하루하루 일궈가는 산중생활의 사계절 풍경들이 소개된다. <3부>에는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글이 『법정스님의 뒷모습』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스님은 수행자이지 수필가가 아니었다.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예불하고, 채마밭을 가꾸고, 좌선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만행하는 등 보통 스님의 일상을 조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스님은, 죽음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극한상황에서도 병상에서 홀로 조석예불을 거르지 않았다. 한 수행자의 한평생 살림살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스님의 마지막 뒷모습은 오늘날 우리 곁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법정스님의 뒷모습』은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킨 무소유의 삶이 진정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득 후회되는 일 하나가 가슴에 사무친다. 병이 깊어져 무척 수척해진 스님께서 불일암 달을 보고 내려가라 하셨는데도 내가 밤눈이 어두운 탓에 해 떨어지기 전에 산방으로 돌아오고 만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밤눈뿐만 아니라 마음눈도 어두운 나다. 그날이 불일암에서 스님을 마지막으로 뵙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본문 288쪽)
 
 ‘아무 조건 없이 제가 대원각을 내놓겠으니 스님께서 받아주십시오. 다만 절이 잘 운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감사 한 사람을 둘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감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감사 후보자임이 분명했다. 그때 스님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우리나라에는 고승이 많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보신 뒤에 믿음이 가는 분에게 시주하십시오.”
 스님은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바로 나가버리셨다. 그때부터 여사는 2년 동안, 사람들이 고승이라고 존경하는 스님들을 찾아가 두루 만나보았다고 한다. 여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에다 여사가 좋아할 만한 조건을 더 붙여 맡겠다는 스님들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사는 결국 다시 법정스님을 찾아와 “감사를 두겠다는 조건을 거두겠으니 받아주십시오”라고 하소연하며 당시 1천억 원대의 대원각을 시주했다.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스님이지만 자신의 재산에 정작 무관심했던 스님이기 때문이었다. 여사가 생각하는 고승의 조건이란 그것이 전부였다. 자신의 재산을 받아줄 스님을 기어코 찾아낸 여사의 내공도 녹록지 않은 것 같다. (본문 98, 99쪽)
 
 법정스님은 오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입(寺入)’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전에 없는 단어인 사입은 광신적으로 절에 다니는 것을 뜻한다. 제정신으로 살자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인데, 가정생활을 다 팽개치고 절에 미쳐 다닌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스님은 절집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행태도 결코 방관하지 않으셨다. 특히 절 안에서 버젓이 벌이고 있는 상행위를 못마땅해하셨다. (...)
 안내소나 종무소 앞에는 불단에 올릴 쌀은 얼마, 초는 얼마, 아직 짓지도 않은 전각의 대들보는 얼마, 기둥은 얼마, 서까래는 얼마, 기왓장은 얼마 하고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법정스님이 보았다면 어찌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셨을 것이다. (본문 90, 92쪽)
 
『법정스님의 뒷모습』은 스님께서 남기신 가르침과 일화들을 되새기는 가운데 위대한 수행자 한 분이 어떻게 우리 곁에 살다 갔는지를 이야기하는 산문집이다. 정윤경 작가의 그림과 유동영 작가의 사진 40여 컷 또한 이 책의 주옥같은 일화들을 더 빛내주고 있다.
 
 
저자 정찬주
 자기다운 삶으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월간 《불교사상》에서 편집자의 삶을 시작했으며,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마음에 품고,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2002년부터 그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에 둘러싸여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소설과 산문집들을 펴냈다.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니르바나의 미소』, 『천불탑의 비밀』, 『다불』, 『만행』, 『대백제왕』(전 2권), 『가야산 정진불』(전 2권),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전 2권) 등, 산문집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다인기행』 등,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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