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로 목욕하는 사람들, 새벽 어스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강 둔덕 한편에서 타오르는 시체… 갠지스 강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겁니다.” 불교신문의 하정은 기자는 인도 여행을 떠난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간 것은 새벽이 아니라 저녁이었다.

 

 

 

저녁 혹은 밤의 갠지스 강도 아름다웠다. 경전에 자주 나오는 ‘갠지스 강의 모래’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트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는 것도 재미있었고, 유등을 강에 흘려보내는 행사, 연등을 날리는 행사는 흥미로웠다. 사람 시체가 불에 타는 모습을 멀리서 보는 것도 다른 데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보트에 앉아 강변에서 열린 힌두교 행사를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갠지스 강은 ‘하늘에서 내려온 강’이라고 한다. 하늘의 물이 시바 신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려 대재앙을 막고 풍요로운 강이 됐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강이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그 물이 모든 것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갠지스 강의 ‘성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갠지스 강의 모래는 그냥 바닷가의 모래와 똑같았다.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사원들이 늘어서 있는 강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지만, 내게는 한강변의 모습보다 크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힌두교의 행사는, 분명 우리 아이돌들의 행사보다 지루해 보였다. 인도 청소년들도 대한민국 케이팝스타들에게 빠져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의 지류인 바라 강과 나시 강이 합쳐지는 지점에 있는 도시다. 그 옛날 석가모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도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바라나시는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바라나시에서 보는 갠지스 강의 아름다움도 옛 모습을 간직한 데서 오는 것이리라. ‘역사의 향기’를 빼고 나면 바라나시는 혼잡하고 먼지 많은 지저분한 도시에 불과하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서는 밤늦게까지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서 힌두교의 제식인지 공연인지 모를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인도인들 중 일부는 강변에 모여서 뒤풀이도 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기들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순례단 가이드 아카스는 “인도에는 무(無)교도가 없다”라며 “부모가 힌두교도면 자녀들도 힌두교도가 된다”고 했다. 통계를 보면 인도에서 무교도는 0.24%다.
이것은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근대 이전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은 ‘개인주의’의 세계다. 이 세계는 이전보다 결코 행복하지 못한 세계다. 막스 베버는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구원받기 힘든 고립의 상태에 이른다고 했다. 합리화, 탈주술화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인간 사회가 해체되고, 가치관과 지식의 모습이 분화하면서 인간은 혼돈의 상태에 내던져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종교, 전통과 관습, 문화, 지연과 혈연적 결합 등에 의해 자동적으로 사회 속에서 굳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과학과 합리적 사고에 의해 이런 것들이 ‘난센스’로 간주되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종교가 ‘개인이 믿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믿는 것’이었고 사회적으로 전승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살았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근대 이전에는 ‘사람이 무엇을 믿어야 하고 사물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신앙’ 안에 숨겨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앙에 의한 은폐가 사라지고 ‘개인’에게 모든 판단이 맡겨진 근대 이후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자유로부터 도망쳐 ‘절대적인 것’에 속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는 막스 베버의 분석이기도 하고, 강상중 도쿄대학교 교수의 분석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강교수는 그의 책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8)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어떤 해답이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 또한 영적인 것이나 종교를 모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강교수는 막스 베버 혹은 베버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문제의식으로 소설을 썼던 나쓰메 소세키를 존경한다고 썼다. “주어진 해답에 납득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막스 베버나 나쓰메 소세키가 그러했듯이 자기 지성만을 믿으면서 자기와 끝없이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방법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머리 위에 칼날이 드리워져 있어서 언제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쳐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부분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아’와 ‘무엇을 믿을까’라는 근대 이후의 어려운 문제에 혼자 힘으로 맞섰습니다. 막스 베버는 자기를 가리켜 ‘종교적인 음치’라고 자조하듯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이 없는 시대에 믿음을 지닌 신자처럼 자기 지성을 믿고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강교수는 ‘늙어서 최강이 되라’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노인들의 힘은 아이들처럼 사회를 교란하는 힘이라며 “제2의 인생에 도전하고, 사회를 교란시키는 뻔뻔함을 갖자”라고 제안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도 이를 권한다.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세계의 최빈국에서 문명의 최첨단을 걷는 나라로 짧은 시일 내에 변화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의 해체 또한 급속히 진행됐다. 남북분단과 고속성장, 민주화의 격변 등이 모두 세계사적 사건으로,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행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강 교수가 말한 ‘고민하는 힘’은 필요할 것이고 또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은 지탱되고 있다. ‘지적 반역자’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 건명원 원장을 맡으면서 “모호한 곳을 향해 가자”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교육을 하던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최근에 교수직을 내놓았다. 그는 “‘모호한 곳을 향해 가자’라면서 나 자신은 안정된 직장인 대학에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불교계도 개인의 자유를 통해 규정해야 하는 ‘모호한 곳’을 향해 가지 않으면, 아무 고민 없이 그저 전통에만 안주한다면, 관세음보살이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으며 의미도 모르는 주문만 외고 있다면, 개인의 행복감은 높아질지 모르나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미래 세대가 불행해짐을 의미한다.

 

베버가 말한 바, ‘무의미의 세계를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이 세계를 밝힐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무아’나 ‘법등명자등명’ 등의 용어가 시사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는 그 ‘의지’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자기부정’의 지혜를 첨가함으로써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자유의 삶을 살았지만 말이다. 

 

글 · 사진 = 김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