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3회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쉬바라스티 숙소로 돌아온 선융은 짜이만 한 잔 마시고 저녁식사는 생략했다. 진원스님의 편지를 빈속에 마주하고 싶었다. 맑은 정신으로 읽는 것이 진원스님에 대한 예의 같아서였다. 뱃속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정신은 알게 모르게 산만해지는 법이었다. 선융은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봉투를 뜯었다. 그러나 편지는 침묵의 응집 그 자체였다. ‘그리운 선융당에게’로 시작하여 끝부분에 ‘좌선대에서, 진원 합장’이 전부였다. 편지 중간쯤에 한시 한 수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我今終生死
 誰得誰失道
 過去無來處
 山光自靑靑

 

 진원스님의 한시는 선융의 뇌리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각인돼 버렸다. 얼마나 순식간에 각인됐는지 눈앞에 보이던 한시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한시에는 진원스님의 처절한 목울음이 묻어 있었다. 선융은 방 밖으로 나와 베란다 난간을 붙들었다. 쉬바라스티 시가지의 상점들은 초저녁인데도 문을 닫고 있었다. 어둠이 차오르는 거리에는 숄을 머리에 붕대처럼 두른 사내들이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다. 네거리 모퉁이의 한두 상점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달은 밤안개에 가려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짐승이 오줌을 지린 듯 달빛은 노란 얼룩으로 번졌다. 선융은 한시를 우리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생사를 마치려 하네
 도는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지만
 과거는 온 데 간 데 없고
 산빛은 절로 푸르고 푸르구나.

 

 진원스님의 편지에 쓰인 시는 좌선대에서 절벽 아래로 목숨을 던지기 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가 분명했다. 좌선대는 서래사 선방 뒷산 절벽 위에 있는 너럭바위였고, 절벽 위에서 산 밑을 바라보면 소나무와 전나무 숲이 청청했던 것이다. 더구나 좌선대는 진원스님이 날마다 혼자서 포행을 할 때 반환점이 되는 곳이었다.
 선융은 방으로 들어가 점퍼를 걸쳤다. 쉬바라스티 거리의 공기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식히고 싶었다. 로렌과 시몬도 따라나섰다.
 “스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술 한 잔 마시려고 해요.”
 “슬픈 소식 때문에 그럽니까?”
 “내가 존경하는 한 스님이 죽었어요. 자살로.”
 “저희들이 스님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온 스님들이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군요.”
 세 사람은 쉬바라스티 시내로 나가 술가게를 찾았다. 그러나 몇 집의 술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 사내에게 물어 술가게를 겨우겨우 찾아갔지만 술을 팔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술가게는 한국의 전당포 같았다. 철창을 만들어 술이 보관된 창고를 보호하고 있었다. 주인이 철창 안에서 창을 연 뒤 술을 팔지 않는 날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라오. 그러니까 돌아가시오.”
 “우리는 외국인입니다. 힌두교 신자가 아닙니다.”
 “술을 팔다 적발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고약한 공무원을 만나면 허가를 취소당해요. 다시 허가받으려면 큰돈이 들죠.”
 로렌이 사정했지만 주인은 술가게 안의 전등불을 꺼버렸다. 문전박대를 당한 세 사람은  술가게를 나와 어이없어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오토릭샤와 릭샤가 달려와 호객했지만 탈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숙소까지 걸었다.  숙소의 로비 소파에 앉자마자 또 다시 종업원이 어제처럼 진한 홍차를 날라다주었다.
 “스님께서 존경하신 분이라고 하니 저희들도 알고 싶습니다.”
 “서래사 선방을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정진불(精進佛) 같은 분이었어요. 선방 후배스님들의 우상이었지요. 물론 나도 스님의 태도를 존경했고요.”
 “그런 분이 자살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벽을 무너뜨려야 무한한 허공 같은 자유를 누리는 법인데 벽 앞에서 주저앉아버린 셈이지요.”
 시몬이 물었다.
 “벽이 무엇입니까?”
 “자기 편견, 선입관, 고정관념 같은 것이지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거군요.”
 “극복하려는 열망이 절절했기 때문에 절망이 그만큼 컸겠지요.”
 선융의 말에 로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님은 무엇으로 극복하셨는지요?”
 “나는 화두라는 것으로 그것들을 태워버렸어요.”
 “진원스님도 선방에 있었으니까 화두를 들었겠네요.”
 “물론이죠. 나와는 들었던 화두가 달랐을 뿐이에요.”
 선융은 소파에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로렌과 시몬은 그들끼리 더 할 얘기가 있는 듯 남았다. 선융은 방으로 들어와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의자는 밤안개가 내려 차갑고 축축했다. 달은 여전히 초췌한 모습으로 쉬바라스티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융은 다시 진원스님의 한시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좀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첫 구절이었다.

 

 나는 이제 생사를 마치려 하네.

 

 첫 구절은 삶과 죽음을 자기 의지로 마친다는 말이었다. 누구에겐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사를 반납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둘째, 셋째 구절은 허무했다. 화두를 들고 몸부림쳤으나 그 시간은 과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탄식이었다. 그나마 진원스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바라본 세상은 푸른 숲처럼 변함없음이었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진원스님의 의식이 깨어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의식이 깨어 있었다는 것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도 화두를 들고 있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진원스님은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동안 두려워하거나 슬프지 않았을 것이었다.
 비로소 선융은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어깨에 둘렀다. 그런 뒤 베란다 의자에 앉은 채 참선을 시작했다. 앉은 채 토막잠을 잤던 것도 같았다. 이슬람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가늘고 또렷한 자극적인 음악소리에 깨어나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룸비니의 안개가 모성적이라면 기원정사의 안개는 아버지처럼 위엄이 있고 고집스러웠다. 아마도 지형이 주는 느낌인지도 몰랐다. 룸비니는 평지와 다름없는 동산이었고 기원정사는 강과 주변의 들판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솟은 언덕이었다. 선융은 아난다 보리수 앞으로 가서 합장했다. 로렌과 시몬도 따라서 했다. 부처의 처소였던 간디쿠타 앞에서는 삼배를 올렸다. 손바닥과 이마에 차가운 새벽이슬이 묻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로렌과 시몬은 ‘오마이갓!’하면서 진저리쳤다. 뿐만 아니라 부처가 사용했던 우물물로 손을 씻을 때는 냉기가 뼛속을 파고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원정사 근처 사원에서 머무르는 인도 비구스님들이 하나 둘 촛불을 들고 나타났다. 안개 때문에 인도 비구스님들의 모습보다 촛불이 떠 또렷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촛불이 줄을 지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가 작고 통통한,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었던 인도 비구스님이 맨 앞에 서서 간다쿠티를 향해 오고 있었다. 선융 일행은 인도 비구스님들의 새벽예불에 동참했다. 이제는 로렌과 시몬도 적극적으로 예불에 참여했는데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어느 새 로렌과 시몬은 선융을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불교 신자가 돼버린 듯했다. 특히 로렌은 화두에 관심이 많았다. 크렘스로 돌아가서 꼭 화두를 들고 정진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처음에는 빈에서 명상 센터 같은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자 했으나 선융을 만나고 난 뒤부터는 한국불교의 전통이기도 한 참선에 더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이다. 시몬은 로렌에 비해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철학 정도로 이해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난 한참 뒤에야 한국에서 온 비구니스님들이 나타났다. 해가 뜨자 안개가 느릿느릿 사라나무숲 너머로 물러갔다. 비구니스님들이 선융에게 다가왔다. 묘유스님을 시봉하는 다명스님이 말했다.
 “잘 주무셨어요?”
 “네. 빨리 올라왔군요.”
 “선융스님을 여기서 뵐 줄 몰랐습니다. 룸비니불교대학으로 찾아가려고 했거든요.”
 “묘유스님께서 저기 오시네요.”
 선융이 묘유스님이 오고 있는 쪽으로 갔다. 아난이 머물렀던  간다쿠티 옆의 건물 터 뒤쪽으로 묘유스님이 가로질러서 천천히 오고 있었다. 묘유스님도 진원스님의 편지내용이 궁금했던지 물었다.
 “선융스님, 무슨 편지든가요? 진공스님이 반드시 전해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중요한 편지 같았어요.”
 “진공스님의 편지가 아니라 진원스님이 제게 보낸 것입니다.”
 “소문에는 진원스님이 입적하셨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스님께서는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 젊은 스님들한테 존경을 받았던 선승이셨는데.”
 “저도 마음속으로 참 좋아했던 스님입니다.”
 “그래서 진원스님이 선융스님에게 편지를 보냈군요.”
 “진원스님이 제게 유서를 보낸 것 같습니다.”
 묘유스님은 진원스님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선융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방금 새벽예불 때 진원스님의 극락왕생을 일념으로 기도했으니 더 이상 안타까운 감정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에 집착함은 멀고 먼 여행을 떠나는 진원스님의 발걸음을 붙드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스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선융스님이 저에게 진 빚이 있나요?”
 “있습니다.”
 “저는 기억이 없는데 무언가요?”
 묘유스님이 소리 없이 웃으며 물었다. 선융이 새삼스럽게 합장하며 말했다.
 “스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주례를 서 주셨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찌 잊겠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요? 미안해요. 물 한 그릇 떠놓고 주례 선 것 말이군요. 주례가 뭔지도 모른 채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한 것이에요.”
 “저희들이 도망치듯 안적사로 갔을 때 스님께서는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묘유스님의 얼굴이 붉어졌고, 갑작스런 상황이 난감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것도 모를 때였어요. 선물할 것이 없어서 두 사람에게 단주 하나씩 나눠준 기억이 날 뿐이에요.”
 “스님, 보십시오. 지금도 차고 있잖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지요. 저는 스님께서 주신 단주를 차고 있는 곳이 법당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맙네요.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은 저인 것 같아요.”
 “아닙니다. 저도 오늘 스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묘유스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융이 줄 선물을 기대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선융이 사라나무 밑에서 불경을 읽고 있는 인도 비구스님 앞을 지나서 말했다.
 “저는 작년 1년 동안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습니다. 이제는 불경을 산스크리트어로 읽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오늘 스님께 산스크리트어로 <반야심경>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의 육성이 들릴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선물입니다.”
 “감격스러워요. 인도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융의 수염과 머리카락에 묻은 이슬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묘유스님이 비구니스님들을 불러 모았다.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선융을 마주보고 줄을 지어 앉았다. 그러자 간다쿠티 주변에 삼삼오오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인도 비구스님들이 한국에서 온 비구니스님들 외호하듯 빙 둘러섰다. 로렌과 시몬은 가부좌를 튼 선융 좌우에서 협시했다. 묘유스님이 비구니스님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선융스님께서 <반야심경>을 산스크리트어로 독경해 주신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조용히 ‘귀 속의 귀’로 들어야 합니다.”
 다명스님이 로렌에게 다가가 인도 비구스님들도 침묵하면서 듣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로렌이 며칠 전부터 낯이 익은 인도 비구스님에게 전했다. 그제야 어수선하던 자리가 정돈되고 고요해졌다. 선융이 목탁을 친 순간부터는 분위기가 숙연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비구니스님들과 인도 비구스님들이 합장한 채 선융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선융은 호흡을 들이쉬면서 언뜻언뜻 진원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안락하고 태평하기를 축원했다.
 선융의 독경소리는 사라나무숲을 어루만지는 햇살처럼 따뜻했다. 기원정사 아래로 흐르는 강물처럼 리드미컬하게 스며들었다. 쉬바라스티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의 원액처럼 달콤했고 간다쿠티 앞의 우물물처럼 차가웠다.
 비구니스님들 중에서 누군가가 흐느꼈다. 잠시 후에는 흐느낌이 목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마지막 <반야심경> 구절에서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흐느꼈다가 미소를 지은 사람은 바로 묘유스님이었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

 

 가자
 가자
 더 높이 가자
 우리 다 함께 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선융은 <반야심경>을 독경한 뒤 비구니스님들과 인도 비구스님들에게 절을 했다. 로렌이 왜 절을 하느냐고 묻자 자신의 독경소리를 들었던 모든 스님들이 소우주이자 빛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내면의 빛이란 광명이고 깨달음이고 완벽한 지혜이고 영원한 진리였다. 묘유스님이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선융스님, 저도 모르게 울었어요. 제 안에 있던 모든 업장이 다 녹아내렸어요. 이제 어린 시절의 일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묘유스님께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습니다.”
 “방금 들었던 선융스님의 독경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듣지 못할 것 같아요.”
 “이제 저는 룸비니로 가야 합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3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룸비니로 곧 갈 거예요. 또 만나요.”
 선융과 묘유스님은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던 인도 비구스님에게 갔던 로렌과 시몬이 돌아왔다. 로렌이 말했다.
 “새 양말을 선물했더니 아이처럼 아주 좋아해요.”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녔지만  기도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답니다.”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선융은 로렌과 시몬을 앞세우고 기원정사를 떠났다. 출입문 쪽에 지금까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라훌라가 머물렀던 건물 터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였다. 라훌라는 부처의 외아들이었다. ‘장애’라는 뜻의 이름인 라훌라는 출가한 뒤 기원정사에서 아들이 아닌 부처의 제자로 함께 살았던 것이다. 라훌라는 수행을 잘한다면 장애가 행운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부처의 아들이자 제자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