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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 학생의 『Namaste, 네팔 탐방기』 2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18-04-05 (목) 17:33

 1월 19일 금요일 : 포카라 도착 및 비레탄티 스쿨 방문
 
 다음 날은 비레탄티 스쿨이 있는 포카라로 가기 위해 조식을 먹고 공항으로 가 국내선 예티항공을 이용했다. 카트만두 공항은 활주로가 한 곳 뿐이어서, 국내선과 국제선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륙과 착륙을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하늘에서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돌게 된다. 그리고 안개가 자주 생기는 카트만두의 날씨 상황으로 인해 국내선이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경우가 드문가보다. 우리도 공항 내에서 버스타고 경비행기 앞까지 이동했으나, 기상 상황 때문에 날지 못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갔다.
 
 잠시 가이드님에게 전해 들은 예티항공사 사장님 얘기를 해보면, 예티 항공 사장님에게 부인이 있었는데,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후 예티 항공 사장님이 항공사를 시작했고, 성공해서 재혼까지 했다고 한다. 재혼했다는 말에서 가이드님이 웃으셨는데, 가만 보면 돈 벌고 성공하고 싶은 남자들의 롤 모델이 예티 항공 사장님인 것 같다. 가이드님도 부인에게 예티항공 사장님 얘기를 하면 가이드님의 부인이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고 농담한다고 하던데, 과연 농담일까?^^
 
 공항에서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면서 둘러보니 한국 사람이 유달리 많았다. 그냥 한국 사람이 아니고, 교회에서 단체로 온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 먹고 나서도 교회에서 단체로 선교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마치 네팔에 교회를 짓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국교가 힌두교인 나라까지 와서 그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것이 네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간혹 교회 나오면 부자 된다는 말에 교회를 다니는 네팔사람들이 생기면서 4%정도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네팔 국민은 그런 선교 활동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있으며 네팔 정부에서도 비상식적인 선교 활동에 대한 제제를 가할 입장이라고 들었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창피하고 미안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포카라의 첫 인상
 

 지연되는 비행기를 기다린 끝에 포카라로 향할 수 있었는데, 경비행기를 타고 바라본 안나푸르나 설산은 정말 끝내줬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 그리고 옆 자리에 앉은 가이드님이 안나푸르나 1봉에 박영석 대장님이 잠들어 계시다는 말씀도 해주시고, 마차푸차레의 모양이나 여러 이야기를 해주셔서 비행시간은 25분으로 짧았지만 상당히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포카라 공항에 도착하니, 비레탄티 스쿨 학생들과 선생님 몇 분이 환영식을 준비해 서계셨다.
힌두교의 상징 금잔화 목걸이와 불교의 상징인 스카프를 목에 걸치고, 미간에 찍는 빨간 점인 빈디도 찍고 나니 정말 네팔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전 날 포카라의 호텔에서 직접 그린 현수막이 있어 더욱 정겨운 환영식이었다. 다만 VIP 게이트에서 황송한 대접을 받으려니 부끄러웠고 고생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또 포카라 지역 신문사 기자가 와서 인터뷰도 했는데 주로 한국 사람들이 네팔에 와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지원을 하는 경우 기사를 전문적으로 쓰는 분인 것 같았다.

일행을 맞아 준 비레탄티 스쿨 학생들과 선생님
 

 공항에서 바로 비레탄티 스쿨로 출발했다. 험난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산을 향해 3시간 정도를 가니 비레탄티 스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포장 도로 옆을 달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인부들이 돌가루를 하얗게 뒤집어 쓴 채 산에서 돌을 직접 채취해 손으로 다듬어 축대를 세우고 있었다. 우리는 요즘 여러 분야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편리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수작업을 하면서 조금 힘들 순 있어도 여러 사람이 고용되고 일 할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또 포장도로에 익숙한 사람들은 여기도 좀 포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오히려 비포장도로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가 다 똑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비포장도로가 남아있어 흔들리고 여기 저기 부딪히면서 웃는 것 자체가 나에겐 불편함이 아니라 낭만처럼 생각되니까.

비레탄티 가는 길  비포장 도로
 

가는 차 안에서 드림팀 회장 비샬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갔는데, 순수하고 귀여운 꼬마 비샬의 꿈은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아티스트나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과 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티스트도 되고 싶다고 얘기하며 웃는 비샬의 얼굴에서 내가 어릴 적에 되고 싶던 것들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아직도 꿈이 많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여건이 안 될 경우 모두들 꿈을 하나씩 정리해서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곤 하지만 글쎄다. 물론 사회적으로 나이 제한이 있는 일들, 가령 국가대표 같은 일들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타협은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아직 난 여러 가지 꿈을 꾼다. 비샬의 이야기가 좋았던 이유는 아직 꿈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쫓고 있는 모습이 점토 인형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한 것 같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비레탄티 스쿨 표지판과 드림팀학생들의 그림
 

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해 교복 사이즈별로 아이들이 줄을 설 동안 드림팀 학생들이 그린 작품을 구경했다. 서울과 평택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서울을 방문한 후 그린 그림에서는 바다를 보고 싶었던 소망이 이루어 진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방문하며 느낀 설렘과 신기함이 그대로 그림에 전해졌다.
 
아이들의 그림을 감상한 후  점심을 먹었는데, 네팔의 여러 민족 중 음식을 깔끔하게 잘 만들기로 유명한 터까리족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터까리 족이 운영하는 식당이 요즘 네팔에서 인기라고 하는데, 음식 종류는 첫 날 먹은 것과 비슷했지만 확실히 더 정갈하고 맛있었다.

아이들의 그림과 터까리족 식당 점심 
 

 식사를 마칠 무렵 교복 나눔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챙겨온 선물을 들고 학생들이 서있는 곳으로 갔다. 220명의 아이들을 한 번에 보니 그 숫자에 압도되기도 하고, 이목이 집중되어 부끄럽기도 했다. 교복과 함께 정성스레 포장해간 선물꾸러미 1개와 볼펜 1자루를 나눠주고 떡볶이를 만들러 부엌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체육복에 행복해 하는 모습들, 그리고 처음 먹는 떡볶이도 맛있게 먹고 더 달라고 하던 모습들에 괜히 더 부끄러웠다. 준비한 것이 약소하다면 약소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역시 나눌수록 행복은 커지는 것 같다. 하지만 비레탄티 스쿨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너무 거칠게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찝찝했다. 마치 부모님 세대의 선생님들 같았다. 심지어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르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가르치면 빛을 볼 보석 같은 아이들이 불쌍했다. 학교에 오려고 1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걸어서 오는데 어떻게 선생님들이 저렇게 의지가 없을까. 그래놓고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화가 났다.  

교복 나눔

 
처음 먹는 떡볶이도 맛있게 먹고
 

장학금 전달 식 및 단체사진 촬영 후 드림팀 학생들이 춤을 준비해 공연을 해주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쉬는 시간 마다 틈틈이 모여 연습한 춤이라고 하는데, 서울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다들 프로 같은 맵시를 가졌다. 사춘기 무렵이라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춤을 추려면 떨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할 텐데 그런 것 다 극복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멋있었다.

드림팀 학생들이 준비한 춤 공연
 
 
학교에서의 행사를 마친 후, 우리는 드림팀 학생 9명이 모여 사는 학교 윗 마을을 방문했다. 비샬, 나빈, 프라딥을 비롯한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도 계셨고, 동네 주민분들도 나오셔서 손수 만든 환영의 꽃 목걸이를 걸어주셨다. 별 것 아니지만 준비해간 선물을 드리고, 작년에 기부한 염소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보았다. 염소는 환경이 깨끗해야만 살 수 있는 동물로, 키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가이드님의 설명이었다. 염소들이 도중에 죽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을 보니 든든했다. 그래 건강하게 자라서 우리 애들 대학 가는데 큰 보탬이 되어주렴 염소들아.

학교 윗 마을 방문

 
학교 윗 마을 방문
 
 
비레탄티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포카라 시내로 돌아와 호텔로 가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낮술 이라는 한식당에서 먹고, 레이크 사이드를 걸으며 구경을 하면서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팔은 차를 기르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품질 좋은 차를 많이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을 하며, 현지에서 사면가격도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팔사람은 우리가 먹는 것처럼 물에 우려서 차를 마시지 않고, 주로 밀크티로 즐긴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혜린/동국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불교학생회 2018대학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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