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힌두교와 자이나교를 알 필요가 있다. 석가모니는 브라만교의 시대에 태어났고 브라만교는 민간 신앙이 합쳐지면서 이름이 힌두교로 바뀌었다. 자이나교는 불살생과 무소유를 극한으로 수행하는 종교로, 불교 탄생 약간 이전에 성립해서 불교와 세력 다툼을 하던 종교다.

 

 

 

힌두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의 석굴이 2km의 동선(動線)에 모여 있다는 엘로라 석굴군으로 향하면서 내가 가벼운 흥분감을 느낀 것은 당시에 경쟁 관계에 있던 이 세 종교의 석굴군들을 비교해 보면서 불교의 본질을, 혹은 종교의 본질을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엘로라의 34개 석굴 중에서 1~12번 굴이 불교 석굴로서 5~7세기에 만들어졌고, 13~29번 굴이 힌두교 석굴로서 7~8세기에 만들어졌으며, 30~34번 석굴은 자이나교 석굴로서 8~13세기에 만들어졌으니 엘로라 석굴군은 고대 인도 종교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인 셈이었다.

 

세 종교는 조금씩 달랐다. 힌두교는 발랄하고 생기가 넘쳤다. 현재 최고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시바 신의 상징이 에너지를 표현하는 남근상 링가라는 것이 흥미로왔다. 그것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를 뚫고 들어가 있는 조형물이 동굴사원에 모셔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힌두교의 신들은 그리스의 신들처럼 매우 인간적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내가 있었으며 때로 바람도 피웠다. “힌두교 석굴에서 여성은 유방이 크고 육감적으로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극단적인 ‘무소유’를 주창하는 자이나교는 ‘옷 하나라도 걸치면 안 된다’는 이념으로 ‘나체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성기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현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석굴 간의 차이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공통점이 더 많았다. 힌두교의 신들도 부처님하고 비슷하게 생겼으며, 불교의 석굴에 표현된 여성도 풍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한 불상 중에서도 성기가 꽤 크게 표현된 것이 있었다. 스님은 음마장상(陰馬藏相), 즉 “성기가 감추어져 있지만 말처럼 크다”라는 부처님 육체에 대한 설명은 자이나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처님은 남자 맞아?”라며 놀리는 자이나교에 대응하여 생긴 특징이라는 것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불교와 힌두교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다. 인도에는 인도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신이 있으며, 석가모니 또한 그 힌두교의 신 중 한 명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힌두교 신자인 우리 순례단의 가이드 ‘아카스’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라마의 화신이 비슈누이며 비슈누의 화신이 마스티아이고 그 다음을 쿠메라마 바라하 나르심바 와라문 브라수람 라마 발레람, 그리고 붓다가 잇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붓다 다음에 오는 화신은 ‘갈키’인데, 불교에서는 이를 ‘미륵’이라고 부른다”라고 덧붙였다.

 

아카스는 “원래 힌두교에서는 남근을 상징하는 ‘링가’를 신으로 모셨는데, 사람의 모습을 한 불상(佛像)이 나타나자 힌두교도 이를 받아들여 여러 신상(神像)을 만들었다”라고도 했다. 부처님이 주창한 ‘자비’를 힌두교가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불교가 힌두교에 공헌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세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인데, 한 시대에 공존했던 종교들이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카스의 설명을 듣다 보니 내게는 힌두교가 우리의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힌두 경전인 기타사르에는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있는데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니 거기에서 벗어나라”라는 말이라고 아카스는 설명했다. 힌두교도들은 “신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서낭당이나 당산나무, 그리고 성주나 조왕 등 가택신을 모시는 우리네 전통 종교와도 닮아 있다. 인도인들은 또한 “가장 중요한 신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라고 생각한다. 고대에 선진 문명을 이룬 인도의 이런 문화가 부모를 공경하는 유교 문화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힌두교도들은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절을 할 때 “은혜를 고맙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어른들의 발을 만지고, 부모는 축복의 말을 해준다. 아카스는 “부처님에게 절을 할 때, 두 손을 귀 위로 올리는 것은 이런 의미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부처님께 이 몸을 바칩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한국과는 다른 의미 풀이였는데, 그것이 내게는 그럴듯하게 들렸다. “당신은 힌두 신에게 무엇을 비는가”라는 질문에 아카스는 “인도인들은 대부분 시바신에게 ‘행복한 삶, 고통없는 죽음’을 기원한다.”라고 답했다. 

 

 

 

 

힌두교의 특징적인 사상은 “윤회(輪廻)와 업(業), 해탈(解脫)의 길, 도덕적 행위의 중시, 경건한 신앙”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불교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힌두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가 경계가 무너진 채로 혼합되어 내게 다가오는 순간 카일라스(Kailas) 사원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엘로라 석굴중에서 단연 압권이었다. 파괴의 신 시바(Shiva)를 모시는 이 사원은 가로 45m, 세로 85m, 높이 34m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아니, 거대한 산 하나를 위에서부터 정과 끌로 파고들어가 22만t이나 깎아 냈다고 하니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조각 작품이다. 자현 스님은 “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거대한 삼차원 입체영상을 형상화하고 그것을 실제로 이렇게 조각해 냈으니 그 기획자의 천재성이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이 사원은 신들이 사는 카일라스산을 지상에 재현하라는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왕 크리슈나 1세의 지시로 765년경에 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약 100년의 건축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카일라스산(Mt. Kailash)은 서부 티벳에 위치한 높이 6,714m의 성산(聖山)으로 그 모양이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근상 ‘링가’를 닮았다. ‘티벳의 영혼’ ‘신의 땅’ ‘영혼의 성소’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산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와 티벳 토착종교인 뵌교 등 4대 종교의 성지이며 인더스강, 갠지스강 등 아시아를 적시는 4대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자산이 이처럼 풍부하니 그 힌두교와 경쟁하는 불교가 꽤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다. 사실 붓다는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니 그 깨달음의 기원은 힌두교에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힌두교와 차별화하기, 불교의 특징을 잃지 않고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힌두교와 경쟁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독이 됐을 것이다. “힌두교의 신보다 석가모니가 더 위대하다”라는 생각은 “석가모니는 최고의 신이다”라는 생각으로 발전했을 것인데 이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다른 힌두교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의 ‘신화’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과학’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불교는 생활의 과학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석가모니의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정착하기에는 당시 시대가 너무 미개했다. ‘중도’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마하가섭이 불멸 이후 초대 지도자 위치에 오른 것도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자현 스님은 평가했다. 기록을 중요시하지 않은 채 구전으로 진리를 전하는 인도의 전통도 석가모니의 정밀한 논리를 전하기에 불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늘날 모두 변했다. 오늘날은 신화가 아닌 과학의 시대이고 디지털 문명과 인터넷으로 무제한의 기록이 복사되고 전송된다. 석가모니의 불교를 오늘날의 언어로 잘 정리하기만 하면 ‘미래의 종교’로 촉망받고 있는 불교가 대한민국에서 폭발하고,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복음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불교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을 잠재우고 지구 전체를 불국토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인가?

 

글 · 사진 = 김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