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6회

 

                              영원한 미소

 

 
 순례일행은 아쇼까 왕 석주와 아난다 스투파를 보기 전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던 스투파 유적지로 먼저 갔다. 부처가 열반했을 때 8등분한 사리 중에서 바이샬리국 몫으로 받은 것을 모셨던 스투파 터였다. 바이샬리 왕이 조성한 스투파 유적지 정면에는 제법 큰 카라우나 포카르(Kharauna Pokhar) 호수가 주변의 숲 그늘을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숲 그늘은 물결을 타고 은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넓어서 텅 빈 것 같지만 맑은 물이 한 가득 찬 호수는 볼수록 성수(聖水) 같았다. 굽타가 말했다.
 “저도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강가강 물이 지하 수맥을 타고 흘러와 포카르 호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화제 왕국으로서 투표로 선출된 바이샬리 왕들은 의식을 치를 때 이 호수의 물을 성수로 이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인도 국회에서는 옛 바이샬리의 공화제도 정신을 본받고자 이 호수의 물을 떠 날라서 의식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수 저편에 일본식 절의 흰 탑이 보였다. 인도의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확인한 바지만 중요 성지에는 반드시 일본 절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점하는 데 있어서 다른 불교국가들보다 재빠른 느낌이 들었다.
 “저기 일본 절 부근의 숲이 라즈기르 비파라산(毘婆羅山) 칠엽굴에서 1차 경전결집을 하고 난 뒤, 2차 경전결집을 한 장소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선융은 승합차 안에서 또 굽타에게 책을 빌려 보았다. 바이샬리에서 행해졌던 경전결집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이후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논란이 크게 생길 때마다, 몇 백 명 이상의 승려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합송한 뒤 그대로 낱낱이 기록했던 사건을 결정결집이라고 불렀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100년경이었다. 계율 문제로 바이샬리에 사는 젊은 수행자들과 서인도와 동인도에 사는 노수행자들 간에 갈등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2차 경전결집의 요인이 되었다. 어느 날, 아난의 제자이자 계율에 밝은 서인도 출신의 야사 장로가 상업도시 바이샬리에 왔는데 젊은 수행자들이 신자들로부터 금화와 은화를 시주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

 야사 장로는 즉시 바이샬리의 젊은 수행자들에게 금화와 은화를 시주받는 것은 계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젊은 수행자들이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바이샬리 수행자들은 탁발에만 의존하는 숲속생활에서 스스로 수행하는 사원생활로 수행환경이 바뀌어가고 있었으므로 돈이 필요했다. 신도들에게 금은보화를 시주를 받았던 것이다. 야사 장로는 바로 바이샬리를 떠나 동인도와 서인도의 수행자 대표를 4명씩 뽑아 돌아왔다. 노수행자 중에는 아난의 직계 제자인 법랍 120년의 사르바카마 장로를 비롯하여 700명의 장로가 참여했다.

 그래서 2차 결집을 칠백인결집(七百人結集), 혹은 칠백결집이라고도 불렀다. 야사가 주도하여 논의된 내용은 십사비법(十事非法), 즉 열 가지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 내용인즉 스님들이 음식에 맛을 내는 소금을 지니고 다니는 것도 비법(非法)이고, 공양 후 발효된 우유나 술과 같은 발효시킨 과즙을 먹는 것도 비법이고, 금화나 은화를 시주받는 것도 비법이라는 등등이었는데, 10가지나 됐다. 이러한 내용의 보시는 당시 바이샬리 사람들의 높은 생활수준에서는 부담스러울 것이 없었지만 장로들은 1차 결집 때 5백 명이 합송한 계율을 내세워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선융은 책 속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진공스님을 비롯한 선원장스님 등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바람이 스치는 것처럼 옆구리가 허전했다. 한 줄기 바람 같은 외로움은 마음을 허허롭게 했다. 진공스님은 선융에게 남다른 존재였다. 이 세상에 선융을 보내준 아버지보다 무게감이 더한 분이었다. 인생길의 선택은 전적으로 선융의 몫이었지만 진공스님이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주었고, 어떤 선택이든 늘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선융이 주혜를 만나 환속하려고 했을 때나, 네팔과 인도에 남겠다고 했을 때도 선융의 선택을 받아주었음이었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스투파 유적지를 씌운 것은 실망스럽게도 녹슨 양철지붕이었다. 거룩한 분의 사리가 있었던 장소치고는 허술했다. 1958년 발굴조사 때 부처님의 유회(遺灰) 사리가 발견되고 나서 스투파 기단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했다지만 아쉬웠다. 아쇼까 왕은 이곳의 사리 중 일부를 순례일행이 지금 가려고 하는 아쇼까 왕 석주 옆의 아난다스투파에 안치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굽타가 말했다. 

 아쇼까 왕 석주와 아난다 스투파 입구의 마을에서 승합차가 멈추었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농부들이 타작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해서였다. 선융은 승합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텅 빈 승합차에 혼자 앉아 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허허로움을 견디었다. 농부들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타작하고 있었다. 바이샬리 마을이 인도의 농촌 중에서도 가장 궁벽한 곳인 듯했다. 천인(天人)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면 의식주가 풍요로웠던 릿차비족 사람들을 보라고 한 부처의 말씀이 무색했다. 부처에게 망고동산을 기증한 유녀(遊女) 암바팔리가 살았던 마을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화려한 마차들이 부딪칠 정도로 번화했던 곳이 2천5백년이 지난 지금은 소와 염소가 어슬렁거리는 쓸쓸한 거리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일행은 아쇼까 왕 석주를 보고는 좀 전의 가난한 농가 풍경을 잊어버린 채 너도나도 감탄했다. 허공으로 치솟은 아쇼까 왕 석주는 현재문명의 시간을 비웃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온전하고 잘생긴 석주였다. 석주 상단의 늠름하고 당당한 사자상도 완벽했다. 사자상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처가 열반한 쿠시나가라 땅을 곧 달려갈 것처럼 응시하고 있었다. 석주와 사자상은 부처가 바이샬리에서 열반을 선언하고 마지막 설법한 것을 기리고 있었다. 원숭이 연못 저편에는 바이샬리 왕이 지어 기증한 대림정사 중각강당 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벽돌무더기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고색창연했다. 바이샬리 왕이 대림정사를 기증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당시 바이샬리는 오랜 가뭄으로 사람들은 기근과 질병에 시달렸는데, 바라문이나 육사외도들이 해결하지 못하자 바이샬리 왕은 부처에게 사신을 보내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다.

 그리하여 부처는 바이샬리 땅을 밟게 되었고, 아난에게 〈보경 (寶經, Ratna Sutra)〉을 외우게 하면서 자신의 기도로 마침내 가뭄과 질병을 물리쳤던바, 바이샬리 왕은 부처에게 대림정사를 지어 기증했고 부처는 2개월 동안 머물렀던 것이다.

 대림정사 터에는 강당의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죽림정사나 기원정사 못지않게 큰 사원이던 대림정사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림자만 어른거렸다.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 벽돌 무더기를 타고 놀았다. 그러나 당시 대림정사는 부처가 머물면서 〈화엄경〉 입법계품을 설했고, 양모 마하파자파티가 카필라성 여인 5백 명을 이끌고 와 세 번을 간청하자 출가를 허락했던 곳이었다. 물론 여인들의 출가는 아난의 하소연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여성도 세존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한다면 남성과 똑같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지 않습니까?”

 “아난이여, 수행을 완성한다면 누구든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느니라.”

 “그렇다면 왜 마하빠자빠띠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까? 마하빠자빠띠님은 마야부인께서 돌아가시자 세존께 당신의 젖을 먹이신 분입니다. 세존을 친아들처럼 정성을 다해 키운 분입니다. 어찌 은혜를 잊으시려고 합니까?”

 결국 부처는 아난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부처가 여성의 출가를 주저했던 까닭은 남존여비가 심했던 바라문 사회 분위기와 산적이나 무뢰한들의 폭력을 걱정하여 그랬던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느새 파트나에서 보았던 중천의 해가 석양이 되어 기울었다. 순례일행도 깃을 접는 산새처럼 숙소를 걱정해야 하는 시각이었다. 일행은 서둘러 부처가 열반한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승합차는 지치지 않고 속도를 올렸다. 선융은 흔들리는 승합차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상념에 잠겼다.

 ‘부처님은 왜 말라족이 사는 쿠시나가라를 열반지(涅槃地)로 정했을까? 부처님 인과법이란 한마디로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따른다는 진리이리라.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선택하셨던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연적인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인과법이 아니다. 부처님이 바이샬리에서 머무시다가 우연히 쿠시나가라로 가시게 되어 그곳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불법은 인과이고 필연이지 않는가. 이성적인 확신으로 수긍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선융은 불교란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온갖 의심과 의혹을 거쳐서 느낌표를 찍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선융은 부처와 아난의 대화 속에서 부처가 왜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정했는지 힌트를 얻었다. 〈열반경〉에서 쿠시나가라가 부처에게 전생의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난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왜 이렇게 작고 외진 마을의 변두리에서 열반에 드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디 그만두시옵소서. 이런 작은 꾸시나라(현 쿠시나가라) 마을이 아니라도 찬빠나, 라자그리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 같은 큰 마을이나 도시가 있지 않사옵니까? 세존이시여, 도시나 큰 마을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시나 큰 마을에는 왕족의 큰 집회장과 브라만의 큰 집회장, 부자의 큰 집회장이 있으며, 세존께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이도 많이 있으므로 세존께서 보여 주실 사리도 정성을 다해 수습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는 아난을 자애롭게 달랬다.

 “아난이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이 꾸시나라를 작고 외진 마을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의 꾸시나라 마을은 작고 외지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느니라. 아난이여, 옛날에 마하수닷사나(大善見)왕이 있었느니라. 그는 전륜성왕으로서 혈통이 바르고 법에 맞는 왕이었느니라. 전생에 여래는 이 꾸사와띠성(꾸시나라국 수도)에서 태어나 왕이 된 일도 있었느니라. 그러나 여래는 ‘부귀영화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것이요, 몸도 무상한 것인바, 오직 법만이 진실할 뿐이다. 그러니 법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네.’ 하고 왕위를 버린 채 오로지 수행만 하였느니라. 꾸사와띠는 이처럼 여래에게 숙연(宿緣)이 있는 곳이니라. 이곳에서 열반에 드는 것은 이 땅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자 함이니라.”

 전생인연이 있는 곳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자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선택하였다는 부처의 마지막 말에 선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쇼까 왕이 쿠시나가라에 순례 와서 조성한 스투파는 두 개였다. 현장법사의〈대당서역기〉도 쿠시나가라 성안 동북쪽의 춘다의 옛 집에 하나를, 또 다른 하나는 부처가 열반에 든 장소에 조성했다고 기록하고 있음이었다. 

 독이 든 버섯요리를 공양하여 부처의 열반을 재촉한 춘다 공양은 너무나 많이 알려진 얘기로서 선융도 잘 알고 있었다. 선융은 춘다에게 공양 받기 전에 부처가 설했던 보시의 공덕을 새삼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음식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며

 의복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사람이며

 탈것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며

 등불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밝은 눈을 주는 사람이며

 집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람이며

 여래의 가르침을 준 이는 남에게 윤회를 끊어주는 사람이다.

 보시, 즉 나누며 살라고 춘다에게 설했던 부처의 절절한 가르침이었다. 아쇼까 왕은 이와 같은 부처의 설법에 감동하여 춘다의 옛 집터에 스투파를 조성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독이 든 버섯요리를 공양한 춘다가 받게 될 비난을 걱정하는 부처의 자애로운 모습도 잊히지 않았다.

 부처가 피 섞인 설사를 계속하자 아난이 “춘다의 공양으로 지난번처럼 병을 얻는다면 큰일입니다”라고 허둥대며 걱정하자, 부처는 오히려 “여래의 열반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 여래의 병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리며 춘다에 대한 비난을 변호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춘다를 위로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순례일행은 쿠시나가라에 도착해 일정을 접었다. 쿠시나가라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숙소는 미리 예약한 조그만 모텔 수준이었다. 식사를 먼저 하고 짐을 풀기로 했다. 일행 모두가 조금씩 지친 듯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 선수처럼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았다. 파트나를 출발하여 바이샬리를 반환점 삼아 쿠시나가라까지 숨 가쁘게 이동해온 것이었다. 그래도 식사를 마친 일행은 진공스님 방으로 모였다. 진공스님 방에는 과일과 과자,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행사 직원과 굽타가 진공스님의 부탁으로 선융을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진공스님이 일행을 둘러본 뒤 말했다.
 “내일 우리는 다른 차로 델리로 가고, 선융당은 룸비니로 갈 것이오. 헤어지지만 기뻐할 일이오. 선융당이 여기 남아 룸비니불교대학에서 부처님 당시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기로 했다고 그러오. 박수로 선융당에게 격려를 해주는 것이 어떠하겠소?”
 “선융당, 잘 생각했어요. 나도 나이만 젊다면 도전해 보겠소.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자신이 없어요.”
 선원장스님이 격려하면서도 헤어지는 것을 섭섭해 했다. M승가대학을 졸업한 상좌스님은 선융을 부러워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해 당시 언어로 된 불경을 읽고 부처님의 생생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선융당은 화두를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했으니 무슨 공부든 걸림 없이 잘 회통할 것이오.”
 “스님, 감사합니다. 저는 수행자로 돌아가 공부하겠습니다. 서래사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선융당,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 언젠가 그 말을 할 줄 알았어. 상좌는 절을 떠나기 전에 내가 말한 대로 선융당의 가사 장삼을 가져왔겠지?”
 “네, 스님. 제 여행가방 속에 있습니다.”
 상좌스님이 방을 나가더니 선융당의 가사와 장삼을 가져왔다. 선융이 서래사를 떠날 때 진공스님에게 반납했던 바로 그 승복이었다. 선융은 자신이 입었던 승복을 진공스님에게 다시 받는 순간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융은 거듭 태어난 것처럼 눈앞이 밝아졌다.
 선융은 기다렸던 사람처럼 승복을 덧입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듯 창문 쪽으로 물러섰다가 다가오곤 했다. 일행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진공스님이 말했다.
 “날개를 달았군. 마치 원효스님이 환생해 춤을 추는 것 같아. 하하하.”
 “스님, 이게 제 옷인 것 같습니다.”
 “다시는 벗지 말게. 선융당은 장삼이 어울려.”
 “스님의 혜안에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로렌과 시몬에게 불법을 제대로 전해주어 윤회를 끊어주게. 선융당을 만난 로렌과 시몬은 복이 많은 학생이지.”
 잠자코 있던 로렌과 시몬도 휘파람을 불며 손뼉을 쳤다. 선융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날아갈 듯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통사람에서 재가 승려로 홀연히 변신해버린 듯했다.

 다음날.
 순례일행은 아침 일찍 부처님이 열반에 든 장소로 올라갔다. 짙은 안개는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완고했다. 안개 속에서 그림자처럼 드러난 사라나무 숲 저편에 둥근 열반당이 흐릿하게 보였다. 일행보다 먼저 온 순례자들도 있었다. 열반당 앞에 관리인 몇 명이 순례자들이 벗어놓은 신발을 지키면서 서성거렸다.  원일스님이 부처의 열반상을 덮을 가사를 빌려왔다. 물론 장사꾼들의 상술이 개입된 것이지만 열반상에 일행의 소원을 담아 가사를 씌워드리는 일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일행은 빌린 가사 끝을 잡고 열반당을 한 바퀴 돌았다. 안개가 조금 걷히자 열반당 앞에 선 사라나무들이 조금씩 또렷하게 드러났다. 흰색 표피와 잎 모양으로 보아 상수리나무와 비슷했다. 문득 부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자, 아난이여, 이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되도록 자리를 준비하여라. 여래는 피곤하므로 누워서 쉬고 싶구나.”

아난이 자리를 펴자 부처는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자리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옆으로 누웠다. 사자가 누운 모습과 흡사했다. 사라나무는 제 철보다 빠르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난이여, 지금 이렇게 두 그루의 사라나무는 제 철도 아닌데 꽃을 피워 여래에게 공양하고 있구나. 허공에서는 만다라와 꽃이 내려오고 전단분향이 퍼져 오는구나. 그러나 아난이여, 이러한 일만이 여래를 존경하며 공양하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와 비구니, 남녀 재가신자들이 진리로 인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며, 진리를 믿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깊이 여래를 존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부처가 열반을 앞두고 이적에 현혹되지 말라고 간곡하게 설했다. 진리로 인하여 올바르게 행동하고 진리를 믿고 행동하는 자체가 부처에게 올리는 참다운 공양이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는 행동이 참다운 공양이라는 벼락같은 당부였다.

일행은 열반당 안에 들어 다시 부처의 열반상을 한 바퀴 돌며 참배한 뒤 들고 온 가사를 씌워드렸다. 가사 밖으로 드러난 포개진 부처의 맨발에는 수레바퀴 모양의 법륜(法輪)이 새겨져 있었다. 맨발로 걸으며 진리를 설했다는 문양이자 증표일 터였다. 부처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가득 했다. 유한한 생(生)을 초월해버리는 영원한 미소였다.

 아쇼까 왕 스투파는 열반당 바로 뒤에 있었다. 7세기 중반에 현장이 보았던 그 자리였다. 흙과 벽돌로 조성한 돔형의 스투파였다. 아쇼까 왕이 조성한 스투파를 후대에 변형한 것이 분명했다. 굽타가 다른 순례자들을 의식한 듯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열반한 부처님은 이곳에서 7일 동안 머문 뒤 말라족들에 의해 다비장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여기 옆에 있는 현재 라마브하르(Ramabhar) 스투파 자리입니다. 원래는 말라족들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르는 사당, 즉 보관사(寶冠寺 혹은 天冠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당나라 현장법사가 갔을 때 땅바닥이 황흑색이었으며 회탄(灰炭)이 섞여 있었다고 하니 부처님 열반 이후에도 중요인사들을 화장한 장소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투파는 부처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었다.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인데도 순례자들이 찾아와  참배를 했다. 스투파 옆에는 공작 야자수들이 시봉하듯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마치 부처를 따르던 제자들이 부활한 듯한 모습이었다. 생과 사를 초월하는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인연 같았다. 선융은 진리의 세계에서는 생사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