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신중단
신중단에 걸린 탱화도 목각탱입니다. 명화를 담은 액자가 작품을 받쳐주는 틀을 지녔듯 탱화의 틀은 연화좌를 장식하는 복련으로 둘러졌습니다. 탱화는 갑옷으로 무장해 위엄이 가득한 모습의 동진보살이 중앙에 서있고, 좌우에 불법을 옹호하는 38위의 신장들이 자리했는데, 목각탱에서 뻗쳐 나오는 기운이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거기에다 보는 위치가 바뀌면 동진보살의 봉황 깃털로 장식한 투구를 위시하여, 많은 신장들의 투구와 갑옷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금빛 광채가 신비로움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신장들 모두가 위엄 가득한 모습은 아니어서 몇몇은 부드러운 얼굴에 자비로움이, 또 미소를 띤 지혜로운 모습도 보이고, 한갓지게 턱수염을 쓸어내리는 순간도 담겼습니다.
상단의 후불탱화와 신중단 후불탱화는 한 분(물론 스님이 그리셨겠지요)이 그렸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탱화의 왼쪽 하단에 자리한 광목천왕 얼굴의 솟구친 눈썹, 진하게 생긴 미간주름, 깊게 파인 턱, 휘날리는 수염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영단
영단탱화는“모든 것은 덧없다. 게을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라는 말씀을 남기고 대열반하신 부처님을 그린 열반도입니다. 오른팔을 베고 오른쪽 옆으로 누워 양 무릎을 구부리고 양발을 겹친 모습인데, 누워계신 침상 옆은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위쪽 중앙에는 열반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영가를 천도할 아미타여래를 비롯한 과거칠불이, 그 오른쪽에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마야부인이 황급히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윗부분인 하늘은 빛을 잃어버린 검은 해와 어두워진 하늘이 슬픔을 더하고 있습니다.

 

 

 

누워계신 부처님 주변은 소식을 듣고 몰려온 제자와 보살, 신중, 대중들의 슬퍼하고 비통해하는 모습으로 가득 찼습니다. 놀라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에,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들에, 가슴을 치며, 머리를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르며 비탄에 잠긴, 사라수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땅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뒹구는,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이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나타냈습니다.
왼쪽에는 제자들이 다비를 하려고 불을 붙이려는 모습과 다비에 사용될 나무가 불에 타오르는 장면이 같이 그려져 있는데, 불을 붙이려 했지만 불이 붙지 않고 스스로 타올랐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비장 위에 물을 뿌리는 천신은 부처님의 유해가 모두 타버리자, 하늘이 알아서 비를 내려 다비를 끝내게 하였음을 나타냅니다. 
그 아래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폈던 여덟 나라의 국왕들이 사리병을 들고 있고, 사리를 나눠주기 위해 팔을 벌려 중재하는 모습의 스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탱화에서 재미난 부분은 모든 중생을 조복하시는 “조어장부(調御丈夫)”이시고, 천상세계와 인간세계 모두의 스승이신 “천인사(天人師)”를 잃은 큰 슬픔에 지진까지 일어났는데, 동물들이 모르고 있을 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래쪽에는 낙타, 호랑이, 곰, 소, 말, 소, 원숭이, 공작새 등이 슬퍼하는데 사람이 하늘을 우러르며 통곡하듯 슬퍼하는 코끼리의 모습은 참으로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이 열반도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의 광경이 잘 나타나있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그러니 마음을 부지런히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멋진 그림입니다.

 

장삼
남들 앞에 나서고자 할 때는 당연히 화려한 색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남에게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수수한 옷을 입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남 앞에 서고자 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화려한 복장을 즐겨 입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옷을 입으면 기분도 한층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새 옷을 입으면, 그렇게 복장을 갖추고 밖을 나가면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은 법복으로 장삼을 입습니다. 검지도 않고 흰색도 아닌 잿빛은 중도를 뜻한다고 합니다. 잿빛의 장삼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욕심을 피하게 하는 색으로도 잿빛 색깔만한 것은 없을 겁니다.

 

 

 

만기사 대웅전에는 존자상이 여럿 놓여 있는데, 입고 있는 장삼의 색깔이 형형색색입니다. 만약 존자들이 입고 있는 장삼을 스님들께서 입는다면 아마도 종단에서 퇴출하지 않을까 할 정도입니다. 존자들의 장삼색깔이 모두 다르고, 곱고 곱습니다. 고울 뿐만 아니라 장삼에 그려진 매화, 붓꽃, 수선화가 패션쇼에 나온 모델들이 입는 옷에나 어울릴 듯한 디자인입니다.
우리 곁에서 살았고, 일상에서 많은 지혜를 깨닫게 해 준 존자들이기에, 불자들에게 위엄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뜻이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존자들의 장삼만 그런 것은 아니고 명부전에 모신 지장보살님의 가사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포대화상 그리고 삼성각에 모신 분들의 복장에도 꽃과 무늬가 화려합니다. 우리 곁으로 친밀하게 다가오시고, 우리들 또한 친밀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재미있고 깊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대웅전 벽화
대웅전 바깥벽에는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부모님의 큰 은혜 10가지를 차례차례 그려놓았습니다. 잉태하고서 지켜주신 은혜, 해산할 때 고통을 받으신 은혜, 자식을 낳고서 근심을 잊으신 은혜, 쓴 것을 삼키시고 단것을 뱉어 먹여주신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 뉘여 주신 은혜, 젖을 먹여 주시고 키워주신 은혜, 깨끗하지 않은 것을 씻어주신 은혜, 멀리 길을 떠난 자식을 걱정해주시는 은혜, 자식을 위해서 모진 일도 서슴지 않으신 은혜, 최후까지 자식을 연민히 여기시는 은혜를 주신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잊었던 부모님의 은혜에 새삼 감사드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웅전 정면 출입문 위에 난 교창에는 투각된 봉황이 장식되어 있는데, 만기사가 세워진 이곳이 봉황이 춤추는 무봉산 자락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원통전
원통전에는 자비와 분노, 웃는 표정의 천수천안십일면관음보살님을 모셨습니다. 여러 가지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우리 중생들을 보살피고, 구원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관음보살은 석장과 창, 해와 달, 구름, 감로수가 담긴 정병, 만(卍), 법륜, 불자, 푸른 연꽃과 붉은 연꽃, 금강령, 화살과 도끼, 악기, 탑 등과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지물을 들고 계신데, 많은 얼굴만큼이나 중생을 위한 서원과 방편이 많음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삼성각
삼성각은 팔각형의 모임지붕으로 지었고, 다듬지 않은 도량주 여덟 개를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나무를 켜고 대패질을 하면 건축하기도 훨씬 쉬웠을 터인데, 구부러진 형태와 드러난 옹이가 자연스럽습니다. 칠성과 산신 그리고 독성을 모시는 집인데, 모셔지는 분들과 잘 어울리게 하려는 배려라 생각됩니다.
삼성각 출입문은 한 면에 두 짝씩 달았는데, 아름답고 다양한 한옥 창호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교창은 빗살로 하였고, 출입문은 4단으로 분리하여 맨 윗부분은 빗살로, 그 아랫부분에는 팔각형의 틀을 넣었고, 팔각형이 들어가고 남은 귀퉁이에는 만(卍)자를 넣었고, 아래 부분은 세살로 채웠고, 맨 아래 궁창에는 안상을 그려 넣었습니다.

 

 

 

천장에는 추녀와 부채살처럼 퍼져난 서까래(선자연)가 팔방으로 뻗쳤고, 그 아래 중앙에는 우물천장을 만들어 연꽃을 화려하고 곱게 그려놓았습니다.
8면 중에 3면에 닫집을 지었고, 닫집 위에는 해와 달, 청룡과 황룡이 구름위에서 나는 기운찬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닫집 아래 가운데에는 칠성탱을, 칠성탱 좌우에는 산신과 독성탱을 걸었습니다.

 

돌다리
대웅전 아래 마당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았습니다. 그 옆에는 무봉선원(舞鳳禪院)을 지어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주렴에는 연못을 조성한 뜻을 담았습니다.
“작여월만루 창외노화추 불조상신명 유수과교래
  昨夜月滿樓 窓外蘆花秋 佛祖喪身命 流水過橋來”
어젯밤에는 마루에 달빛이 가득 차 있었는데
창밖에 갈대꽃 만발하였으니 가을이 깊어졌구나.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그때처럼 지금도 다리를 지나가는구나.

 

단청과 벽화가 퇴색하지 않은 모습에서 만기사의 불사가 이루어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보였습니다. 근래에 많은 사찰이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있음을 알기에 허례 없는 만기사의 검소함에 마음이 끌렸고, 담겨진 내용에서 많은 공부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도 만기사를 찾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더 마음에 새겼으면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