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회

                          부처, 처음으로 법을 설하다

 

 룸비니불교대학 교수이자 가이드인 굽타는 항상 저녁식사 시간에 내일의 일정을 공지했다. 일행은 모두 굽타의 말을 들으면서 식사를 한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굽타는 간단하게 시간과 장소만 공지해왔는데 스님들과 친근해지면서부터는 길게 말했다.
 “내일은 여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세 시간이면 라즈기르에 도착하니까요. 옛날에는 라자그리하라고 불렀습니다. 마가다국의 수도였고 한국 사람들은 왕사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곳 사르나트에서 보드가야로 돌아가 많은 수행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던 지도자 깟샤빠 삼형제의 귀의를 받으신 뒤 1천 명이나 늘어난 수행자를 거느리고 라즈기르로 갑니다. 비로소 승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라즈기르로 가신 이유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뒤 마다가국으로 가겠다고 빔비사라 왕에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라즈기르에는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가 있고, <법화경>을 설했던 영취산 향실이 있습니다. 죽림정사는 대나무 숲이 특징입니다. 인도 대나무는 마디마다 가시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매끈한 한국 대나무와 다릅니다. 예전에 영취산 올라갈 때는 경찰이 동행했습니다. 강도가 많았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라즈기르에도 이곳 사르나트 못지않게 제법 크고 깨끗한 숙소가 있습니다. 기념품 상점도 즐비하니 쇼핑하는 시간을 따로 드리겠습니다.”
 스님들은 듣는 둥 마는 둥했다. 시장했는지 대부분 식사하는데 집중했고,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낮에 촬영했던 풍경들을 다시 보는 스님도 있었다. 가장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진공스님이었다. 선융이 볼 때는 굽타가 진공스님 한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선융은 식사를 마친 진공스님에게 다가갔다.
 “스님, 저는 식사를 마치고 다메크 탑으로 가서 참선하고 싶습니다.”
 “선융당 생각도 그런가? 나도 그러려고 했네. 일행이 가지 않는다면 나하고 선융당하고만 갔다가 오지.”
 “다들 찬성할 겁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십시오. 유학생들에게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밤인데 매표소에서 입장을 시켜줄까?”
 “굽타에게 부탁해야지요. 자기들끼리는 서로 통하니까 허락해 줄 것입니다.”
 선융의 예상대로 일행 모두가 찬성했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 양치질을 한 다음 스님들은 점퍼를 입고, 굽타와 여행사 직원은 두터운 긴 팔의 옷으로 바꿔 입고 나왔다. 저녁이 되면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출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굽타가 먼저 녹야원으로 올라갔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여행사 직원이 앞장을 섰다. 녹야원 가는 길은 번잡했던 낮과 달리 한적하고 괴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게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순례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숄을 머리에 두른 남녀들이 힌두사원을 느릿느릿 오가고 있을 뿐이었다. 개 두어 마리가 일행을 녹야원 입구까지 따라왔다가 사라졌다.
 순례일행은 다메크 스투파 정면의 풀밭에 앉았다. 녹야원은 북적대던 낮과 달리 한적하고 고요했다.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늘과 숲, 풀밭의 기운이 차갑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건너편 사슴 우리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융은 미소를 지었다. 사슴에게 줄 사과와 당근을 숙소 식당에서 배낭에 담아왔기 때문이었다. 어둠은 망사처럼 다메크 스투파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굽타와 여행사 직원은 철망이 쳐진 사슴 우리 쪽으로 가버렸다. 선융은 스님들 뒤편에, 로렌과 시몬은 선융의 좌우에 앉았다. 진공스님이 입정에 들기 전에 짧게 말했다.
 “저 탑을 부처님으로 생각하시오. 우리가 선정에 든다면 저 탑의 소리를 분명 들을 것이오.”
 선승다운 당부를 한 진공스님이 죽비대신 손뼉을 세 번 쳤다. 입정에 들라는 신호였다. 일행은 눈은 반개한 채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부좌를 틀었다. 로렌과 시몬은 아직 가부좌가 서툴러서 반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검푸른 숲 위로 달이 떠올랐다. 부처가 좋아했던 망고처럼 둥근 달이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한 시각도 어둠이 녹야원을 자애롭게 감싸고 있을 때였다. 달빛과 별빛이 녹야원에 쏟아지기 시작하여 밤의 정령들이 막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는 초저녁부터 들었던 선정에서 막 깨어났다. 부처 앞에는 다섯 명의 수행자가 청법(請法)의 예를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부처가 그들을 위해 설법을 시작했다. 이른바 초전법륜(初轉法輪)이었다. 부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 기울어도 안 된다. 두 개의 극단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본능이 하자는 대로 욕망의 쾌락에 빠지는 일이다. 이는 천박하고 저속하며 어리석고 무익하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데 빠지는 일이다. 이는 고통스럽고 천박하고 무익하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양 극단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이 중도에 의해서 통찰과 새로운 인식을 얻었고,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극복한 니르바나에 이르렀다.”
 중도란 가운데의 길이 아니라, 두 극단을 포용하면서도 초월하는 길이었다. 다섯 명의 수행자 눈에 달빛과 별빛이 들었다. 그들의 눈이 또록또록 빛나기 시작했다. 부처의 목소리는 분명하면서도 도도했고, 수행자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강가강 모래밭이 강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였다.
 “수행자들이여, 중도란 이런 것이다.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결의(正思),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위(正業), 올바른 생활(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생각(正念), 올바른 명상(正定)이다.”
 중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내용으로는 이른바 팔정도(八正道)였다. 그러므로 중도와 정도(正道)는 같은 뜻이었다. 이어서 부처는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 이른바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였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는 이와 같다.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며, 질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미운 자와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것도 괴로움이다. 인간이 갈구하는 모든 물질과 정신의 요소는 다 괴로움이다.”
 부처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도 설법했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란 이와 같다.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고, 기쁨과 탐욕을 따르며,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찾는 욕망을 말한다. 감각이 이끄는 욕망과 생존하려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욕망이다.”
 세 가지의 욕망이 있는데, 그 첫째는 감각적인 욕망이 있고, 두 번째는 살려고 하는 생존의 욕망이 있으며, 세 번째는 생존에서 도피하려는 죽음의 욕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의 욕망 때문에 인간은 고통을 끝없이 반복하는 윤회를 하고, 윤회란 전생과 금생의 생사만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의 반복도 그것이라는 것이었다.
 부처의 설법은 계속되었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란 이와 같다. 욕망을 남김없이 없애고 단념하고 버리고 벗어나 집착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부처는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실천하는 진리(苦滅道聖諦)도 설하였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실천하는 성스러운 진리’란 이와 같다.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결의,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생각, 올바른 명상이다.”
 부처는 다시 자신의 깨달음을 예로 들어 설법했다.
 “여래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철저하게 인식했다.
 여래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끊어 없애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끊어 없앴다.
 여래는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실현했다.
 여래는 괴로움의 극복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실현했다.
 부처가 마지막인 듯 더욱 분명한 어조로 설하였다.
 “수행자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열두 가지 양상(十二緣起)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부처가 되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는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후에는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처의 설법이 끝나자마자 콘단냐(憍陣如)는 즉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이어서 밧파, 밧디야, 마하나만, 앗사지(馬勝)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다. 다섯 명의 수행자 모두가 아라한이 된 것이었다. 부처는 이들 말고도 자신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 아라한이 될 수 있는 수행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이샬리 교외에서 만났던 첫 번째 스승 아라다 카라마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죽고 없었다. 라자그리하에서 만났던 두 번째 스승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위없는 깨달음을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석가모니 부처는 다섯 명의 아라한과 함께 녹야원에 머물면서 순번을 정하여 바라나시로 나가 탁발을 했다. 이때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 야샤스를 만났다. 야샤스는 시중드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환락과 애욕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야샤스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밤새 유희를 즐겼던 시녀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다. 시녀들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시체처럼 아무렇게나 늘어져 자고 있었다. 갑자기 야샤스는 삶이 허무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녹야원까지 걸었다. 야샤스는 “삶이 허무하구나. 내가 한심하구나.”라고 외치며 걸었다. 야샤스가 탄식하는 외침은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새벽산책을 하는 부처에게까지 들렸다. 부처가 다가와 야샤스에게 말했다.
 “그대여, 여래가 머무는 녹야원에는 허무한 것도 없고 한심스러운 것도 없구나. 그대여, 여기 앉겠는가? 여래는 그대를 위해 진리를 설해주겠다.”
 야샤스는 부처의 설법을 듣고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다섯 명의 수행자 이후 첫 번째로 깨달음을 이룬 셈이었다. 야샤스가 아라한이 된 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도 부처의 설법을 듣고는 재가신자가 되었다. 야샤스의 가족 모두가 부처에게 귀의하자 그 파장은 컸다. 야샤스의 친구 네 사람과 50명의 젊은이가 집단으로 출가했던 것이다. 부처는 예순 명의 제자들을 위해서 또 설법했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신과 인간들의 온갖 속박 속에서 자유로워졌다.
 수행자들이여, 이제는 이곳저곳의 길로 떠나라. 많은 사람들과 신들의 이익을 위해, 안락을 위해, 세상에 자비를 베풀기 위해 길을 떠나라. 길을 떠날 때는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수행자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한결같은 법, 내용과 이론이 갖추어진 진리를 설하라. 안전하고 깨끗한 수행생활을 보여주어라.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으면 퇴보하지만 진리를 들으면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부처의 제자는 녹야원에 머무는 동안 60명이 되었고, 전법을 선언한 부처는 빔비사라 왕이 통치하는 마가다국으로 떠났다.

 

 한 시간쯤 흘렀다. 진공스님이 손뼉을 또 세 번 쳤다. 선원장스님은 선정에 깊이 들었다가 깨어났는지 가장 늦게 일어났다. 로렌과 시몬은 반가부좌도 불편했으므로 앉은 채로 다리를 주물렀다. 선융은 한 시간이 몰록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몰록’이란 선가(禪家)의 용어였다. 시간과 공간을 홀연히 초월해버리는 상태를 몰록이라고 했다. 일행은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진공스님이 무겁게 물었다.
 “탑이 무어라 하던가요?”
 “탑이 공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흙으로 쌓은 탑이 아니라 허공으로 쌓았다는 말인가요?”
 “허공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로렌과 시몬이 어리둥절해 했다. 진공스님과 선원장스님 간에 주고받는 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원일스님이 말했다.
 “법안(法眼)을 가지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일스님은 법안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해요.”
 법안에 집착하고 있는 원일스님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진공스님은 상좌에게도 물었다.
 “들었느냐?”
 “눈물을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네 업장이 녹아내리는구나. 그것도 큰 이익이다.”
 진공스님이 일동을 휘 둘러보더니 로렌에게 물었다.
 “탑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벽돌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탑의 말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일동이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로렌과 시몬도 덩달아 웃었다. 자연스럽게 웃는 순간 모두 하나가 되는 듯했다. 스님들과 로렌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운명공동체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진공스님이 끝으로 선융에게 물었다.
 “선융당은?”
 “스님, 사슴에게 먹이를 주고 오겠습니다.”
 선융의 대답에 일동이 멈칫했고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진공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열반경>에 자비심이 여래라고 했어. 배고픈 사슴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자비심이 아니겠는가.”
 “스님,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로렌과 시몬도 일어나 선융을 따라왔다. 선융은 사슴우리의 철망까지 가서 배낭 속의 사과와 당근을 꺼냈다. 달빛이 숲에 가려 사슴 우리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선융을 본 사슴 서너 마리가 겅중겅중 다가와 철망을 핥았다. 로렌이 물었다.
 “선생님, 진공스님의 물음에 왜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까?”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한 대답이란 말입니까?”
 “정답은 없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런데도 저의 대답에 왜 스님들이 다 웃었죠?”
 “누구나 아는 대답을 했으니까.”
 선융은 사슴들이 놀랄까 봐 나직이 말했다. 사슴들은 선융이 던져준 사과와 당근을 물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진공스님이 엉뚱한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니지요. 침묵을 하면 탑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어요. 그래야만 탑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로렌과 시몬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달은 달, 별은 별, 탑은 탑, 나는 나라는 식으로 사고하고 생활해온 그들이 진공스님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선융이 로렌과 시몬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중천에 뜬 달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허공으로 치솟은 다메크 스투파 위로 금싸라기 같은 달빛이 흘러내렸다. 달빛은 마하보디사원 안의 정각을 이룬 청년부처의 고결한 살갗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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