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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 뒤쪽에 자리한 옛 면천초등학교 교정에는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이곳 면천출신으로 고려 개국공신이 된 복지겸(卜智謙)의 딸 영랑(影浪)이 아버지의 치병을 위해 그의 집 뜰에 심었다. 약 1천1백여 년의 수령을 가진 높이 20미터가 넘는 큰 고목들인 이 나무에는 백로가 많이 앉아 있어 장관을 이뤘다고 전한다.
영랑의 효심이 깃든 은행나무를 기리기 위해 면천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음력 1월 14일) ‘면천은행나무 목신제’를 올린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은행목신제’는 한동안 끊겼다가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면천은행나무사랑회가 약 20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계승했다. ‘면천은행나무 목신제’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전통의 계승보존과 마을의 안녕, 풍년, 그리고 주민들의 무사태평 및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월 열나흗날인 지난 3월 1일 오전 11시에도 어김없이 면천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렸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의미가 큰 행사인지라 당연히 구경을 갔다. 목신제가 시작되기 전 제의 시작을 알리는 면천농협 풍물단의 공연이 있었다. 이 풍물단에는 아내도 소속되어 북을 치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은행나무 앞에는 여러 과일들과 시루떡, 실과 명태포 등을 올린 제물상이 차려졌다. 11시, 분향을 시작으로 제가 시작되었고, 면천면 면장님과 면천은행나무사랑회 회장, 면천면 노인회장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맡아 면천의 이름난 술 ‘두견주’를 올렸다. 초헌례와 아헌례 사이에는 축원문과 목신에게 소원을 비는 무가(巫歌) 순서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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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농협 풍물단이 목신제가 시작되기 전 공연을 하고 있다.

종헌례가 끝난 뒤에는 면천농협 조합장, 면천은행나무사랑회 회원들, 마을주민들이 나서 잔을 올렸다. 목신을 보내드리는 의식, 즉 사신례와 축원문 소지(燒紙, 태우는 의식)에 이어 제물상에 차렸던 음식을 은행나무에 매달고, 새끼줄에 각자의 소원을 끼워 넣는 의식이 진행됐다. 새끼줄에는 액난피하기를 발원하는 도액경, 각자의 소원을 적은 축원쪽지, 조상해원경문 등이 빽빽이 끼워진 채 바람에 일렁였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목신제의 끝을 알리는 면천농협 풍물단의 놀이가 은행나무 주위에서 신명나게 열렸고, 사람들은 함께 음복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지금은 유교와 무속적 내용이 혼재된 형식으로 치러지기는 하지만 과거 ‘면천은행나무 목신제’는 제의식순에 법사축원이라는 순서가 들어 있던 불교적 색채가 짙은 행사였다. 법사는 <팔양경>과 신명축원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팔양경>은 당나라 삼장법사 의정(義淨)이 번역한 불서를 말한다. 도교적 색채가 강한 <팔양경>의 본래 이름은 <불설천지팔양신주경(佛說天地八陽神呪經)>인데, 천지 음양의 8가지 이치와 혼인. 해산. 장례법을 설한 위경이다.
아무튼 면천은행나무에도 어김없이 전설이 남아 있다. 귀향한 복지겸이 병을 얻어 백약을 처방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고,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날 신선이 나타나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집에 은행나무를 심은 뒤 정성을 들여야 나을 수 있다는 계시를 주었고, 영랑이 그대로 하여 아버지의 병을 고쳤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면천두견주와 면천은행나무는 이곳 면천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목신(木神) 이야기는 불전(佛典)에도 더러 등장한다. 붓다께서 대각(大覺)을 이루기 전에 드신 유미죽은, 수자타 가문에서 치성을 드리던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시던 붓다를 목신의 화현으로 알고 신심을 낸 수자타 여인이 올린 공양물이었다. 불전에 나타난 목신들의 역할은 대개 긍정적이다. 붓다의 제자 ‘밧지뿟따’ 존자도 목신의 도움을 받은 수행자였다. 밧지뿟따는 붓다가 베살리에 머물고 계실 때 행한 위신력을 보고 확신을 얻어 출가했다. 그는 베살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숲속에서 지냈는데, 그때 베살리 시내에서 성대한 축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고 음악공연도 열렸는데, 사람들이 웃고 만족해하는 광경을 지켜본 밧지뿟따는 순간 수행자로서는 걸맞지 않게 주저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명상주제도 버리고 급기야 불만까지 토로했다. 그가 “숲속에 버려진 나무 조각처럼 홀로 우리는 숲속에서 사니 이와 같은 밤에 우리보다 비참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시(詩)로써 말했을 때, 숲속에 사는 목신이 밧지뿟따의 탄식을 듣고 연민심을 일으켜 ‘그대는 한적한 숲을 경멸하여 말하지만, 현명한 자들로서 그것을 존중한다’는 충고를 전했다. 목신의 일갈에 크게 깨달은 밧지뿟따는 다시 시로 자신의 심경을 노래했는데, ‘테라가타’에 실린 그의 게송은 이렇다.  

우리는 홀로 한적한 숲속에서 지내니
숲속에 버려진 나무토막 같지만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이 천상으로 가는 자를 부러워하듯,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나를 부러워한다.

이처럼 목신은 나태해졌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수행자를 독려하거나 채근해 다시금 수행에 매진하도록 돕는 선신으로 불전에 등장한다.
다 알다시피 불가(佛家)에서는 살생을 엄격하게 금한다. 단순히 금하는 것에서 나아가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放生)을 권장한다. 그 생명존중 대상에 동물과 같은 유정(有情)들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식물과 같은 무정물(無情物)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섭취를 권한다. 목신 신앙과 같은 오랜 전통의례들에는 이처럼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어 바위와 같은 돌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말고 소중하게 여기라는 교훈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은행나무 목신제를 지내는 면천면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게 뿌듯하게 다가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