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금상첨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도 그지없이 좋은데, 그 위에 좋은 것이 또 얹혀있다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금상첨화를 바라는 것은 ‘욕심 부리지마라’거나 ‘무소유’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불자로서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나”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더 잘 모시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어떤 잘못일까요?

 

부처님 모시는 금당을 짓고, 그 금당을 천신들의 꽃비로 아름답게 장식했으면 됐지 싶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금당의 좋은 자리에 전각을 꾸몄습니다. 궁궐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서 사용하는 건물에 “○○전(殿)”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금당 안에 지은 전각을 우리는 닫집이라 부릅니다.

 

 

 

대자대비의 큰마음을 가지신 분, 그 마음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분에게 당연히 금당을 지어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금당만 지어드리는 것은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분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보다 위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엄된 닫집은 부처님의 권위를 상징하고,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은 용주사 대웅보전의 닫집을 보여드립니다. 화려함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사찰은 거의 닫집을 꾸며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시는 대웅전 상단에만 꾸밈이 대부분이고, 중단인 신중단과 하단인 영단에는 탱화를 장식할 뿐 닫집을 꾸미지 않고 있습니다.

 

용주사 닫집 꾸밈은 상단은 보궁형, 중단과 하단은 운궁형으로 꾸몄습니다. 운궁형 닫집 꾸밈새는 겹처마의 지붕, 코끼리 눈 모양을 연속지게 뚫은 궁판, 궁판 아래와 기둥에 달린 낙양각, 기둥 밑에 연꽃봉오리를 달아, 단정하고 검소한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천장에는 활짝 핀 연꽃이 두 줄로 나란한데, 도장을 새겨 찍은 듯 가지런합니다.

 

 

 

한옥은 우리들이 딛고 사는 땅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완성됩니다. 닫집은 이처럼 땅에 짓는 것이 아니고, 금당의 천장에 붙여짓는 때문에 기둥이 허공에 떠 있게 됩니다.
어느 날 천상과 천하의 모든 생명체가 가르침 듣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이 허공에 머물며 설법을 듣게 하시는 신통력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때문에 닫집 기둥은 허공에 떠 있어야 했습니다. 닫집을 세운 12개 기둥은 꽃비가 쌓여 만들어진 꽃무더기와 자기 몸을 공양하는 용의 머리 위에 세워졌습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 용은 눈을 부릅떠 법당 안을 내려다보는데, 부처님을 호위하고 삿된 것을 막아 대중들을 보호하려 함입니다.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 끝에는 활짝 핀 모란과 국화가 장식되었습니다. 

 

 

 

허공에 뜬 기둥은 납도리로 된 평방과 창방으로 단단하게 엮어져, 그렇게나 많은 공포를 굳건히 받아주고 있습니다. 기둥과 평방은 단조로운 반면에 공포의 짜임은 대단합니다. 공포를 이룬 살미와 첨차의 크기는 반 뼘이나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작은 것을 깎고 다듬어서 짜 맞춘 솜씨는 너무나도 섬세합니다. 자세히 보고 싶지만 눈이 아른거려서 얼마나 많은 나무 조각을 짜 맞추었는지 도저히 셀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공포의 짜임을 보다가, 앞으로 나온 살미라도 몇 개인지 알아 볼 욕심에 손가락을 집어가며 세어봤지만 그조차도 포기했습니다. 기계로 찍어 낸 듯, 같은 듯 다른 크기의 수천 개 나무 조각을 옷감 짜듯이 짜 맞춘 장인은 “허공회”에 참석했던 대중이었나 봅니다. 그 법회에 참석했던 장인은 용주사를 창건할 즈음에 환생했고,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던 것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천궁을 수호하는 용신(龍神)이 자신의 길다란 몸 탓에 어쩔 수 없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장인은, 용신의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어 앉혔습니다. 곧게 선 뿔, 크게 벌려 포효하는 입,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 정면을 주시하는 눈, 그리고 닫집 안을 채운 큰 용틀임은 금방이라도 법당 안으로 내려올 듯 역동적입니다.

 

‘용 가는데 구름 간다’는 말은 경사스런 행사에 나타나는 용을 본 사람이 지어낸 말입니다. 용을 본 장인은 당연히 용 주위에 구름을 장식해야 했습니다. 법회가 있던 날, 장인이 본 구름은 사바세계에 흘러가는 흰 구름과는 다른 눈부시도록 찬란한 색깔로 물들은 환상적인 구름이었습니다. 장인은 오색찬란하고 상서로운 구름을 닫집 여기저기에 꾸며놓았습니다. 이렇게 재현된 아름다운 불국토의 모습에 우리는 감탄하고, 그 아래 사자좌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뵙는 희열에 합장하여 공경하며, 신심을 한층 높이게 됩니다.

 

장인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하늘나라의 ‘비천’도 보았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등 공양은 어두운 세계를 밝히는 부처님의 공덕을 알리려 함이고, 꽃 공양은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있을 때 하늘을 날아다니며 꽃을 뿌려 공양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은 비천의 소임입니다. 장인은 닫집 바깥 좌우에 비천 두 명(?)을 출현시켰는데, 한 명은 허공에서 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으로, 한 명은 하늘옷의 끝자락에 금방 떨어질 듯 꽃을 매달아서 꽃비를 내려주고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장인은 실제로 비천을 보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내려
오는 방향에 맞춰 한 쪽 무릎이 구부러졌고 다른 무릎은 뒤로 뻗어있으며, 양 팔을 앞으로 펼쳐 벌린 비천의 자세는 허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대웅보전 닫집 말고도 용주사에는 비천이 아름답게 나타난 된 국보가 있는데, 바로 동종입니다. 
용주사 동종(국보 제120호)은 창건 당시보다 훨씬 앞선 고려 초기에 주조된 것으로, 닫집에 꾸며진 비천보다 우아한 모습입니다.
동종에 새겨진 비천도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얕은 입김에도 옷자락이 흩날릴 듯 휘날리고 있습니다. 양손으로 구름의 한 가닥을 잡아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내려오는데, 가슴에 내려트린 영락이 천인의 고귀함을 돋보이게 합니다. 하늘거리는 모습을 쇠붙이로 이렇게나 부드럽게 표현한 조상님의 솜씨는 실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사바세계에 가득한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이상향,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극락정토에 사는 새가 극락조입니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때 동서남북을 비롯한 시방에 존재하는 모두가 참석하여, 공양하고 찬탄했습니다. 당연히 서방극락정토에서 극락조도 참석하였고, 극락조는 아름다운 깃털을 내보이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펴 하늘을 날았습니다.
반야용선을 뜻하는 용주사 대웅보전도 극락조의 인도를 받아야 서방정토에 이를 수 있음을 알기에, 장인은 극락조를 닫집 앞쪽에 놓았고, 나는 방향은 법당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용주사 닫집은 이렇듯 불국토와 설법하시는 곳의 정경을 옮겨놓은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부처님의 큰 가르침에 찬탄하는 많은 것을 상징화시켰고, 경전에 등장했던 것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우리는 법당에 들어서 닫집을 보는 순간, 불국토에 들어섰다며 마음이 평안해지고 또 화려하게 펼쳐진 장엄함에 환희심을 갖게 됩니다.

 

용주사 닫집을 꾸미고자 목재를 다듬어 낸 장인의 뛰어난 솜씨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합니다. 스님이 아니었다면 불교의 교리에 밝고, 불심이 깊은 장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분이었든 불국토를 현실의 세계에 나타내 보이려는 심지가 상당히 컸던 분이겠지요. 아름다운 불국토를 보여주신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