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4회

                              룸비니 가는 길

 

 순례일행은 숙소 식당에서 아침 6시에 식사를 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아니라 여행사 직원이 간밤에 준비한 밥과 된장국이 나왔다. 김치 통조림과 포장된 김도 보였다. 아마도 여행사에서 쌀과 반찬, 국거리를 비상용으로 가져온 듯했다. 순례일행은 여행사 직원과 굽타가 주방에서 준비한 아침식사를 불빛이 밝은 식당 한 쪽에 모여 앉아 조용히 먹었다. 이른 식사였지만 일행은 향신료 냄새를 맡지 않고 기름진 고기류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굽타는 한국음식을 한국인처럼 좋아했다.
 승합차는 7시 정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카트만두 시가지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자동차와 릭샤들은 길가에 주차돼 있었고 숄을 머리에 두른 사람들이 짙은 안개 저편에서 휘적휘적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순례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작전상 몰래 후퇴하는 군인처럼 카트만두 시가지를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날은 승합차가 교외의 도로를 달릴 때쯤에야 훤해졌다. 교외의 산허리에도 오두막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굽타가 마이크를 들었다.
 “어제 숙소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로 가고 있습니다. 룸비니는 네팔 땅에 있습니다. 밖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도로공사가 끝나면 더 빨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룸비니까지 8시간 정도 걸립니다. 오후 3시 전후로 룸비니에 도착해서 참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굽타가 8시간을 말하는 순간 일행은 기가 질렸다. 차창 밖에 둔 시선을 승합차 안으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굽타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도로공사가 끝난 뒤에 오시면 5시간 정도 걸리겠죠. 네팔은 도로 사정이 한국과 다릅니다. 시골 비포장도로에서는 시속 60키로 미터 이하로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굽타가 머쓱해 했다. 그런 굽타에게 여행사 직원이 손짓을 했다. 일행이 눈을 감고 있으니 앉으라는 손짓이었다. 선융도 스님들처럼 눈을 감았다. 간밤에 늦게 잔 데다 짐을 싸느라고 너무 일찍 일어나 졸린 탓이었다. 더구나 히터가 작동하는 승합차 안은 숙소의 방보다 더 따뜻했다.

 

 선융이 눈을 떴을 때는 승합차가 학교와 공공기관이 있는 시골마을을 지나치고 있었다. 거리에는 면도를 하고 양복으로 멋을 부린 사내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한 무리의 어린 학생들도 보였다. 숄을 머리에 두른 청년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승합차를 주시했다. 굽타와 여행사 직원이 함께 일어나 말했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짜이 드실 분은 내리세요.”
 ‘짜이’라는 말에 모두 하차했다. 화덕이 있는 가게는 버스정류장 옆에 있었다. 염소 두 마리가 가게 앞에서 어정거렸다. 가게주인은 염소가 검은 콩처럼 생긴 똥을 흘리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짜이를 끓이거나 짜파티를 화덕에서 구워내 팔았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여인은 플라스틱 통에 꽃을 담아와 회교사원 앞에서 호객을 했다. 어디서나 아침 출근시간은 바빴다. 사내들이 짜이와 짜파티를 들고 길거리에서 요기를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느긋하게 요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순례일행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짜파티보다는 짜이를 주문했다. 짜파티를 주문하는 사람은 원일스님과 선융뿐이었다. 짜파티를 기다리는 동안 원일스님이 염소를 보더니 ‘짜파티!’ 하고 소리 질렀다. 둥근 쟁반에 짜피티가 얹어지는 순간 어미 염소가 다가와 재빨리 한 장을 입에 물고 겅중겅중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가게주인은 염소를 쫓아가지 않았다. 선융이 영어로 항의하듯 말했다.
 “우리가 시킨 짜파티를 염소가 물고 가는데도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요!”
 “손님, 짜파티를 또 구울 겁니다.”
 이번에는 원일스님이 말했다.
 “저기 봐요. 염소가 또 왔소.”
 “스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굽타가 다가와 화덕 앞에 서서 말했다.
 “염소 때문에 짜파티를 먹지 못했는데도 주인은 무사태평이요.”
 가게주인이 고개만 돌린 채 흰 이를 드러내며 힌디어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짐승은 신의 친구입니다. 쥐까지도.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닌 거죠.”
 “뭐라고 하는 거요?”
 굽타가 힌디어를 한국어로 통역해 주었다. 선융은 굽타의 말을 듣는 순간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원일스님도 마찬가지였다. 원일스님이 선융에게 말했다.
 “여기 오니깐 짜파티 장사도 철학자 같구먼요.”
 “저도 놀랐습니다. 염소가 짜파티를 물고 가는 것을 보니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짐승들도 대접받는 나라에 왔어요.”
 이윽고 굽타가 가져온 세 장의 짜파티를 선융은 여섯 개로 나누어 일행에게 돌렸다. 구수한 밀의 맛과 달달한 짜이의 조합은 기가 막혔다. 먹는 순간 좀 전의 염소가 짜파티를 물고 간 사건은 금세 잊혀졌다.
 승합차는 다시 움직였고 고산 중턱에 있는 재를 하나 넘었다. 재를 넘자 길쭉한 들판이 협곡 사이로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안개가 걷힌 들판에는 아침 햇살이 새날을 축복하듯 쏟아지고 있었다. 농부들은 들판으로 나와 흰 소를 앞세우고 물을 댄 논에 써레질을 하는 중이었다. 들판 흙의 속살에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들판 가로는 계곡물이 희끗희끗 넉넉하게 흘렀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시작한 계곡물들은 네팔 땅을 지나 북인도에 핏줄처럼 고루고루 퍼져 흐르다가 강가강으로 합류할 터였다. 농부들은 하나같이 논밭에서 맨발로 일하고 있었다. 농부들의 가느다란 발목을 보자 선융은 문득 부처의 맨발을 떠올렸다. 석가모니 부처는 평생 동안 맨발로 신성한 대지에 입맞춤하듯 길을 걸었던 것이다. 선융은 부처의 별칭이 새삼스러웠다. 맨발로 세상에 왔으니 여래(如來)가 되고 맨발로 갔으니 여거(如去)라고 불리어졌기 때문이었다.
 계곡물이 흘러가는 산기슭에 티베트 불교사원인 곰파가 하나 보였다. 흰색 회칠을 한 곰파는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붉은 승복을 입은 젊은 승려 두어 명이 처마 밑에서 정오의 햇살을 해바라기하고 있었다. 굽타가 가서 양해를 구하자 공양하는 식당을 내어주었다.
 “아침에 도시락을 만들어 왔습니다. 곰파 식당에서 고맙게도 따뜻한 물을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법당으로 먼저 가 참배합시다.”
 진공스님이 바랑에서 가사를 꺼내 장삼 위에 걸쳤다. 노란색 가사만 보아왔던 곰파의 젊은 승려가 초콜릿빛깔의 가사를 걸친 한국승려들이 신기한 듯 힐끔거리며 법당 안으로 안내했다. 법당의 천정은 높았고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금빛의 불상이 더 빛을 발했다. 순례일행 모두는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그런 뒤 각자가 마음을 낸 대로 불단에 한국지폐 대신 달러를 놓았다.
 진공스님은 지폐를 세지 않고 지갑을 통째로 보시했다. 그러자 곰파 승려가 놀란 채 지갑을 들고 와서 돌려주려 했다. 선융이 제지했다.
 “스님께서는 돌려받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보시한 분은 처음입니다.”
 “한국에 천년 고찰이 있는데 그곳의 주지스님입니다.”
 “아, 덕이 높은 고승이시군요. 몰랐습니다.”
 곰파의 젊은 승려가 식당까지 따라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시락은 잘게 썬 김치가 들어 있는 김밥이었다. 곰파에서 내놓은 뜨거운 물이 있어선지 찬 김밥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김밥을 다 먹고 물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좀 전의 승려가 늙은 승려와 함께 왔다. 젊은 승려가 허리를 약간 굽은 늙은 승려를 소개했다.
 “우리 곰파의 주지스님입니다.”
 진공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합장했다. 그러자 노란 가사를 걸치고 온 곰파의 주지스님이 진공스님에게 더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젊은 승려가 선융에게 영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하시고 주지스님께서 차를 대접하고 싶답니다.”
 선융이 진공스님에게 말하자 진공스님은 굽타에게 물었다.
 “여기서 차를 마실 시간이 있는가?”
 “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차를 마시면 오늘은 룸비니 참배를 못할지도 모릅니다.”
 굽타의 사무적인 말에 여행사 직원이 나섰다.
 “내일 오전에 룸비니를 또 다시 가는 계획이 있으니 상관은 없습니다. 점심 후에는 네팔에 있는 카필라성으로 갈 것이거든요.”
 “숙소는 룸비니불교대학 기숙사라고 했지요?”
 “방학 때라 방들이 비어 있으니 늦게 들어가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다섯 명의 스님 일행은 여행사 직원과 함께 곰파 주지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선융은 들어가지 않고 굽타와 곰파 마당에 남았다. 곰파 주변은 농사를 짓는 산촌 마을이었다. 곰파에는 젊은 신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름살이 깊게 패인 늙은 신도들만 건물 추녀 밑에 앉아서 담소하고 있었다. 한 노인은 슬리퍼를 신은 채 곰파 정문 앞에서 한 손으로는 휴대용 마니차를 돌리고, 또 한 손으로는 염주를 굴렸다. 노인이 쓰고 있는 승려용 붉은 벙거지는 곰파의 승려가 준 선물인 듯했다. 선융이 노인에게 영어로 이름을 묻자 알아듣지 못했다. 굽타가 네팔어로 이름과 나이를 묻자 그제야 노인이 말했다.
 “도르제(Dolje)라고 하오.” 
 “연세는요?”
 “82세라오.”
 굽타가 ‘도르제’라는 뜻을 말했다. 도르제는 불구(佛具)의 일종인 ‘금강저’라는 뜻이 있는데, 한국의 철수나 영희처럼 티베트나 부탄에서 흔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선융이 굽타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묻게 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늙어서 자식들이 일을 시키지 않으니 행복해요. 곰파에 나와서 날마다 마니차를 돌릴 수 있으니 행복해요. 머지않아 죽으면 파드마 삼바바님을 하늘에서 만나 함께 살 수 있으니 행복해요.”
 무심하게 마니차를 돌리는 노인의 모습은 생로병사를 벗어나버린 모습이었다. 늙음을 즐기고 죽음을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었다. 죽음을 또 다른 생의 기회로 여기는 도르제 노인이었다.  티베트의 전설적인 고승이자 <사자(死者)의 서(書)>를 남긴 파드마 삼바바를 천상에서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노인이었다.
 선융은 추녀 밑에서 오후의 햇볕을 쬐면서 휴대용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노인들에게도 다가갔다. 그들에게는 굽타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세요?’라고 묻게 했다. 바로 한 노파가 대답했다.
 “날마다 노는 날이에요.”
 “곰파가 노는 장소군요.”
 “곰파처럼 놀기 좋은 장소가 없어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곰파로 나와 밥 먹고 기도하며 이야기하고 놀아요.”
 네팔의 이곳에서는 곰파가 한국의 양로원이나 다름없었다. 나라가 노인들에게 할 복지를 불교사원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풍선껌을 입에 물고 있는 땅꼬마가 골목 어귀에 나타나자 한 노파가 다가가서 땅꼬마의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아마도 노파의 손자인 듯했다. 땅꼬마는 풍선껌을 크게 만들었다가는 입 안으로 다시 넣어 씹곤 했다.
 추녀 밑에 있던 노인들이 하나 둘 사라질 무렵에야 순례일행이 곰파 주지스님 방에서 나왔다. 차담이 생각보다 길어진 모양이었다. 일행이 승합차에 다 오르자 곰파의 주지스님이 땅바닥에 엎드렸다. 예를 갖춘 작별인사였다. 여행사 직원이 말했다.
 “곰파 주지스님이 우리 스님들께 감동한 것 같습니다.”
 “아닐세. 감동은 우리가 하고 있어.”
 “곰파 주지스님이 한국스님들을 만나서 기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엎드려 인사를 하시다니 쉬운 일이 아니네. 하심이란 수행력에서 나오는 거네. 중이 하심하지 못한다면 헛공부한 것이지.”
 진공스님이 합장한 채 도리질을 했다. 선원장스님도 한 마디 했다.
 “주지스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선원장스님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이오?”
 “네. 처음에 곰파 주지스님의 거친 손을 보고는 ‘아, 이 분은 일하는 스님이지 공부하는 스님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는 과정을 알고 나서 놀랐기 때문이지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소.”
 티베트에서는 출가해서 적어도 20년 이상은 불경을 공부하고, 이후에는 무문관에 갇히어 몇 년 동안 참선해야 하고, 그런 뒤에는 농부처럼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만 지도자 승려가 되어 신도들에게 법문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공스님이 놀란 것은 그런 과정뿐만이 아니었다. 승합차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곰파 주지스님의 작별인사였다. 진공스님은 이제껏 그런 식으로 작별인사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상좌스님이나 신도에게 절을 받기만 했지 자신이 땅바닥에 엎드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진공스님은 일행에게 한 마디만 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보드나트나 스와얌부나트를 참배하는 동안에, 또 이곳에서 스님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분들의 신심은 경이롭기만 해요. 신심이 성지(聖地)란 말이 있지만 이곳이 성지인 것만은 분명해요.”

 

 예상한 대로 승합차는 오후 5시쯤에야 룸비니불교대학에 도착했다. 대학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건물처럼 규모가 작았다. 2층 건물 양끝에는 철근이 삐쭉삐쭉 위험하게 돌출돼 있었다. 옆으로 강의실을 더 잇는 공사를 못하고 중단한 것 같았다. 기숙사는 강의실 건물 뒤쪽에 있었는데 단층 슬라브 건물이었다. 운동장 가에는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던 리어카 몇 대가 쇠줄에 묶여 있었다. 룸비니불교대학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 건물을 에워싼 몇 그루의 보리수 고목들은 그윽한 서기를 내뿜고 있는 듯했다. 푸른 이파리가 무성한 보리수 고목은 선융을 유혹했다. 보리수 고목들은 대학 건물의 초라함을 자애롭게 감싸고 있었다. 실제로 선융은 보리수 그늘 밑으로 들어서서야 룸비니불교대학에 대한 첫인상의 실망감이 평화로운 기운으로 씻어짐을 느꼈다.
 기숙사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학이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온 유학생 두 명이 있을 뿐이었다. 두 학생은 순례일행을 보자마자 굽타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환영한다는 피켓을 들고 맞이했다. 굽타가 말했다.
 “나의 제자들입니다. 산스크리트어 학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죠.”
 “한국어만 가르친다고 하지 않았나요?”
 선융의 말에 굽타가 대답했다.
 “한국어처럼 어려운 언어는 없지요. 사실 저는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어요.”
 “외국학생들이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신기하군요.”
 “자기 나라에서 영역본 불경에 심취했던 학생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부처님께서 쓰신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접하고 싶어 유학 온 거죠.”
 “내가 공부했던 불경은 모두 한역본이었죠.”
 “그렇다면 선융 씨도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다시 볼 필요가 있어요. 부처님의 육성이 담겨 있거든요.” 
 “굽타 씨, 그건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할게요. 그보다는 보리수 고목들이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나는 평화로운 기운을 느꼈어요. 이곳은 원래 어떤 곳이었습니까?”
 “선융 씨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니 신기합니다. 학생들 대부분이 그런 기운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곳은 원래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았던 룸비니 동산과 부처님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카필라성 중간쯤에 있는 작은 언덕이지요. 그러니까 산달이 된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가기 위해 넘어갔던 언덕일 겁니다.”
 기숙사 방은 소박했지만 산소 같은 신선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 종일 승합차 안에서 시달렸는데도 선융의 정신은 투명하게 깨어났다. 놀랍게도 창 밖에 서 있는 나무는 보리수 고목이었다. 보리수 이파리들이 달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선융에게 보리수 이파리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선융을 만나 반갑다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선융은 서래사를 처음 찾아갔을 때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런 고요를 들이켰다. 선융은 이내 편안한 기분으로 꿈 없는 잠을 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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