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쿠시나가라에서의 열반을 삼 개월 남겨둔 시점에 바이샬리를 떠나면서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구나”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인간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창한 붓다에게도 바이샬리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음이 이 대사에 배어 있다. 부처님은 “도리천(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나라)의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바이샬리의 릿차비족을 보라”라는 말로 이 도시의 자유와 풍요를 찬탄했다고도 한다.

 

몽골 계통의 황인종 릿차비족이 경영한 바이샬리의 밧지국은 마가다와 코살라,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강소국이었다. 바이샬리는 갠지스 강 줄기가 분기되는 당시 교통의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했고 교통 문화 경제의 중심지가 됐다.

 

 

 

이 나라는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였다. 싯다르타가 출가한 후 처음 수행을 시작한 곳이 이곳이었다. 당시 문명의 중심지 바이샬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유로웠고 또한 많은 선인들이 숲속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불교와 세력다툼을 벌였던 자이나교의 성자 마하비라도 바이샬리 출신이다. 부처님의 부인 야소다라와 계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등 여인 500명이 출가해 비구니가 된 곳도 이곳이다. 기생 암바팔리가 부처님에게 이곳의 망고동산을 기증하기도 했다. 가뭄과 질병이 돌아 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부처님이 방문해 이를 해결해 준 일도 있다. 

 

무엇보다 밧지국은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바스투처럼 공화정을 펴는 나라였다. 마가다의 아사세왕이 밧지국 침공을 앞두고 신하를 보내 부처님에게 전쟁의 승패를 물었을 때, 부처님은 이에 즉답하지 않았다. 수행과 전법을 위해 인도의 각 나라에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부처님은 ‘다국적 기업’에 해당하는 정보망을 통해 각국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정치에 간여하는 것은 종교인의 법도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마가다의 외교관 앞에서 부처님은 다만 당신이 밧지국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던 '칠불쇠법(七不衰法)'이 “아직도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시자 아난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갖고 서로 바른 일에 대해 의논하는지, 임금과 신료가 공명정대한지, 예의를 존중하는지, 부모를 효도로 섬기는지, 조상을 받들고 유업 잇기에 노력하는지, 도덕적이며 음란하지 않은지, 삼보를 공경하고 계율을 지키며 바르게 생활하는지. 이에 대해서 아난다는 모두 “예”라는 대답을 했고 부처님은 “이 중 한 가지만 지켜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텐데 일곱 가지를 다 지킨다니 이 나라는 오랫동안 번성하겠다”라고 말함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그로써 전쟁은 유예됐다.

 

 

 

상황이 이와 같았으니 릿차비족도 부처님을 극진히 따랐던 것 같다. 부처님이 열반을 위해 쿠시나가라로 가기 위해 갠지스 강의 지류인 칸타키강을 건너는데도 릿차비족이 발길을 돌리지 못하자 부처님은 이별의 징표로 발우를 띄웠고, 떠내려온 발우를 받은 곳을 기념하기 위해 릿차비족이 세웠다는 그 탑이 바로 케사리아 대탑이라고 한다. 참으로 드라마 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증거는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크고,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것이었다. 릿차비족은 부처님 열반 때 장례식에 참여했고, 부처님의 사리를 얻어 진신사리탑을 세우기도 했다. 

 

케사리아 대탑은 하나의 작은 산이었다. 현지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발굴 중인 탑의 높이는 지상 35m 지하 9m인데, 발굴 전 높이는 지상 45m였다고 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한 이후 1000년 넘게 잊혀져 있었고, 그 동안 쌓인 흙 10m를 걷어내 산 높이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탑은 일시에 세워지는 게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애초의 탑에 덧씌우는 형태로 증축된다. 사르나트(녹야원)에 있는 다메크탑이 이슬람교도에 의한 파괴로 인해 탑속의 탑이 드러나 있었던 모습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케사리아 대탑도 처음부터 그렇게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릿차비족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은혜를 가슴깊이 새기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했고 그것이 산 하나를 이룰 만큼 커다란 조형물로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예술작품이었다.

 

“예술작품이었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탑 위에 모셔졌던 불상들의 머리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모두 파괴됐기 때문이다. 우리 순례단이 도착했을 때는 그 머리 없는 불상들마저 치워지고 없었다. 불타여행사 대표 선덕화보살님은 “2017년 봄에 왔을 때는 불상들이 있었는데, 지금 없는 것을 보면 발굴이 다 끝난 다음에 배치하려고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글 · 사진 =김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