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1912~1993) 스님의 법문은 시자 원택스님에 의해 1993년 열반 직전에 대부분 법문집으로 출간됐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성철 스님 임제록 평석』은 해인총림 방장으로 계시던 성철 스님께서 1974년 하안거에서 이듬 해 75년 하안거까지 보름마다 <임제록>을 평석 강설하신 법문이 녹음테이프로 남아 있던 것을 정리, 보완해서 출판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성철 스님께서는 <임제록> 중 전반부이며 중요한 대목이라 할 ‘마방의 서’, ‘상당법문’, ‘시중’의 앞부분까지 평석했다.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던 ‘시중’ 나머지 부분과 ‘수시’, ‘감변’, ‘행록’ 부분이 원택 스님에 의해, 성철 스님께서 평석하신 부분은 그대로 정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번역만 하여 정리 출간하게 됐다.

 

 

<임제록>은 임제의현(臨濟義玄, ?~867년) 스님의 말씀을 제자 삼성혜연((三聖慧然)이 기록한 법문집으로 흔히 불교계에선 ‘선어록의 왕’이라 불린다. 성철스님은 임제록 평석을 시작하면서 임제스님과 임제록, 그리고 임제종에 대한 역사와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한 일본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는 일본이 전쟁으로 모든 책이 불타더라도 <임제록> 한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극찬한 바가 있다.
<임제록>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진정견해(眞正見解)” “살불살조(殺佛殺祖)” “무위진인(無位眞人)” 등 선(禪) 정신이 드러난 수많은 명언이 기록되어 있다.
성철스님은 임제스님과 임제종을 평하기를 ‘중국에 불교가 전해져 초기 500년 동안에는 역경하는 불교였고, 그 뒤 300년간 법상, 천태, 화엄의 교학불교시대였으나, 6조 혜능대사를 거쳐 마조( ~788)스님 대에서 9세기 초엽인 임제스님 대에 이르면 선종시대로 접어든다’고 평하고 있다.
임제종 법맥은 송나라시대에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종고 그리고 고려시대 태고보우, 나옹혜근, 백운경한 스님으로 이어져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일본에도 임제종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명한 베트남 틱낫한 스님도 스스로 임제종 승려라 자부할 정도로 동아시아불교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성철 스님 임제록 평석』은 이전 <임제록>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선어록과 선을 보는 성철스님의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선사(先師)가 도덕을 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나를 위해 설파하지 않으셨던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동산양개 선사의 말씀을 책의 첫 머리에 인용한 점에서 이 점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선종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제도한다’는 자성자도(自性自度)와 ‘절대로 화두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불설파(不說破)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성철 스님은 이 두 가지 원칙을 분명히 지키면서도 『임제록』의 역사적·문화적·사상적 배경을 누구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다.
△둘째는 『임제록』을 단순히 문자적 지식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깨달음의 징검다리 혹은 깨달음에 이르는 이정표로 삼기 위해 평석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도리는)오직 참으로 자기가 확실히 깨쳐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입니다”라는 실천궁행과 실참(實參)의 강조를 거의 예외 없이 만날 수 있다.
△셋째는 말의 겉만 쫓아가면 모든 법문은 독약이 됨을 성철 스님은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런 뜻은 성철 스님이 원오극근(園悟克勤, 1063~1135)선사가 지은 <벽암록>제100칙 끝에 나오는 아래의 게송을 인용해 설명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만곡영주신수나(萬斛盈舟信手拏)
      각인일립옹탄사(却因一粒甕吞蛇)
      염제백전구공안(拈提百轉舊公案)
      살각시인기안사(撒却時人幾眼沙)

 

      만 섬 곡식 배에 가득 실어 마음대로 집게 두었는데,
      오히려 한 톨 쌀알 때문에 뱀이 독 안에 갇혔구나.
      옛 공안 일백 여 개를 설명해 들려주었으니,
      사람들 눈에 얼마나 많은 모래를 뿌린 것일까!

 

이 말은 교(敎)를 떠나 따로 전하였다는 선(禪), 조사 스님들이 한 법문, 그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실제의 달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역시 법문을 말한 사람도 죽고 듣는 사람도 다 죽는 설비상(雪砒霜) 즉 독이라고 성철 스님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나는 말을 따라오지 않는 사람을 바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 말[語]을 따라와 말 밑에서 고꾸라져 죽는 사람은 절대로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참으로 말을 따라오지 않을지, 살아남는 사람이 다만 한 명이라도 있게 될는지, 전체가 다 살게 될는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는 <임제록> 전체가 아닌 앞부분의 중요한 대목만 평석하고 있는 점이다. 성철스님이 평석하고 강설하신 분량은 <임제록> 전체의 1/4, 내용적으로는 1/3 정도다. 다시 말해 ‘마방의 서’, ‘삼구·삼현·삼요’ 그리고 ‘사료간’ 등에 대해, 특히 역대 중국 선사들의 송고 등을 인용하며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 당신의 총평을 싣는 등 학자가 아닌 선사로써 선에 대한 안목과 관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다섯 째, <임제록> 서문을 쓴 마방(馬防)이라는 인물을 조명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청나라 사람 서송(徐松. 1781∼1848)이 가경(嘉慶)년간(1796∼1820)에 총4백60권으로 편집한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와 송나라 사람 이도(李燾. 1115∼1184)가 저술한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에 마방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료들과 일본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을 토대로 마방에 관한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놨다. 
△여섯 째, <임제록> 본문과 관련 있는 자료들의 내력(來歷)과 성철 스님이 평석에서 인용하신 인용문의 출처를 <선문염송> 등을 활용해 밝혀놨다.
△마지막으로 이 책 353쪽에 실린 ｢성철스님의 수좌오계｣ 부분은 이미 알려진 지침이나 당시 성철 스님께서 이 <임제록> 평석을 마칠 때 수좌들에게 하신 바를 그대로 실었다. 안거 중 수좌들에게 “① 얘기하지 말라. ② 잠 많이 자지 마라. ③ 책 보지 마라. ④ 음식에 조심하여 적게 먹어라. ⑤ 돌아다니지 마라.” 다섯 가지 지침을 강조한 것은 『임제록 평석』의 뜻이 선어록을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참실수를 독려하고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원택 스님은 “이 책이 너무 늦게 출간됐다는 것이 회한 가득히 아쉽다”며 “늦어도 1970년대가 저물기 전에 임제록이 출간됐더라면 ‘선가에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임제록은 알아야 한다’고 평소 강조하신 큰스님의 바라심대로 보다 널리 세상에 알려지고 읽혀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그 시절 그 시대에 제때 제대로 출판했더라면, 불교계와 학계의 격과 수준을 보다 더 높이는 데 그 책들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큰스님께서 후생들을 위해 남기신 노력들이 마르지 않는 지혜의 큰 샘이 되어서 메마른 사바의 대지를 적시고, 한 그루 큰 나무가 되어서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납자들이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을 가득 메우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