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만 박혀있는 게 아니라 이따금씩 외출도 한다. 대개 당진 시내를 다녀오는 일이고, 조금 멀리 떠나봐야 이런저런 반연이 얽힌 서울행이 고작이다. 이런 외출도 점점 빈도가 줄어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진으로 내려온 뒤 전화 받는 일도, 거는 일도 부쩍 줄었다. 몇 달 만에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요즘은 겨울이라 농사보다는 주로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다. 내년쯤 출간을 하기위한 글쓰기가 일과의 중심이고, 미디어붓다에 매주 연재 중인 당진편지, 간헐적으로 기고하는 외고 작성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사실 난, 평생 기자로 살았던 터라 말하기보다 글쓰기에 익숙하다. 현역 기자 시절 몇 차례의 강연 요청을 애써 사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내가 최근 경남 마산에 있는 한 사찰로 두 차례 강연을 다녀왔다. 30년 동안 불교 언론에서 일한 이른바 ‘베테랑(?)’ 기자가 느낀 ‘불교’와 ‘부처님’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에 흔쾌히 응했던 것이다.
미붓아카데미를 통해 이루어냈던 의미 있는 성과에서 보듯 강의를 기획하고 강사를 초빙해 강좌를 진행하는 일이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직접 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긴장이 됐다. 대중강의는 내용만큼 재미도 있어야 하는데, 본래 재미하고는 거리가 먼 성정인지라 염려가 없지 않았다.
걱정을 덜기 위해 강의를 위한 원고를 작성했다. 강의 잘하는 분들의 강의요령을 습득하기 위해 유튜브 서핑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의를 요청한 분에게 전화를 걸어 수강하실 분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기도 했다. 첫 강의가 있던 날, 마산으로 가는 새벽 KTX 안에서 원고를 펼쳐들고 다듬고 익히기를 거듭했다. 오랜만에 떠나는 장시간의 여정인 터라, 졸음도 오지 않았다. 신경이 적잖이 곤두섰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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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덜하더라도 내용에 충실한 강의를 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오전 강의인데도 한두 분이 하품을 한다. 그 순간 뒷골이 땅겨왔다. 오직 내 강의를 듣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참석한 분에게 감동은 못 줄망정 졸음을 ‘선물’하다니! 10분 휴식 시간에 강의 전략을 수정했다. ‘그래, 이 분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대학교수 스타일의 강의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기자생활에서 보고 느낀 펄펄 살아 숨 쉬는 현장감 있는 불교해석과 진단일 것이다.’ 두 시간의 강의 중 나머지 한 시간을 취재당시의 경험담을 섞어가며 나름 생동감 있게 진행하려고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조는 분은 보이지 않았다. ‘휴~’.
두 차례의 강의를 통해 나는 마산의 불자님들에게 불교신행의 ‘지도(地圖)’를 제시하고, 교주 부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정했었다. 취재활동을 통해 재가불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또 부족하게 느꼈던 점이 절대자를 따르는 이웃종교와 다르지 않게 불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강의에 불과했지만, 어떻게 불교를 신행해야 좋을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전해드리고자 노력했다. 불교의 특징과 불교가 다른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그리고 불교에서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와 그곳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할 목표를 설명했다. 막연한 신행에서 목적지와 목표를 정확히 아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곳을 향해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소원이나 성취시켜주는 분 정도로 왜곡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처님의 진면목을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바로잡으려 했다. 부처님의 위대성은 절대자적 신통력이 아니라 중생을 향한 지극한 연민과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가장 위대한 가르침에 있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첫 강의에서 불자들이 궁금해 하며 물어왔던 하늘세계(天上)에 대해 초기경전의 내용을 빌어 상세하게 설명했다. 하늘세계를 포함한 불교의 세계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난 것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야사 등 50여 명의 부유한 집안의 젊은이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비구가 되고,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부처님의 차제설법(次第說法)을 설명하면서, 차제설법 가운데 하늘세계에 대한 설법이 차지하는 매우 큰 비중을 곁들여 설명하자 불자들의 눈길이 유난히 반짝였다. 특히 부처님의 80년 생애를 인도 옛 지도를 띄워놓고 생애에 따른 이동경로를 통해 부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설명하자 부처님을 한껏 가깝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두 차례의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자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잘 했느냐’고 묻는다. 강의 경험이 거의 없는 남편이 혹시 망신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소심한 호기를 부렸다. “여보, 나 제법 잘했어요. 다들 좋아하던 걸. 이제부터는 강의 요청이 있으면 가급적 응할 생각이야.” 안도의 숨을 내쉬는 아내를 보며 ‘때론 선의의 과장도 필요할 때가 있다’ 하는 생각에 미소를 머금었다.
당진살이를 시작한 뒤 가장 멀리 다녀온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 나는 평소보다 긴 잠에 빠져들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안 하던 일을 한 탓에 몸과 마음이 꽤나 피로했던 모양이다. 늦잠 자는 남편을, 평소와 다르게 아내도 깨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