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회

 

                              삶과 죽음의 강
 

 

 선융은 아침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숙소 정원으로 나와 산책했다. 때마침 극락조나무 몇 그루가 주황색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황색으로 피어난 꽃잎은 날개를 편 새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극락조화(極樂鳥花)라고 부르는 듯했다. 포행하기를 좋아하는 스님들이 나타나 두 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선융당, 잘 잤어요?”
 “네, 스님.”
 굽타가 정원에 놓인 의자들을 한 테이블로 가져왔다. 그러자 스님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았다. 진공스님이 뒤늦게 나타났지만 의자는 부족하지 않았다. 원일스님은 굽타를 볼 때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처럼 물었다.
 “오늘은 어디를 갑니까?”
 “바그마티강입니다. 강가 데오파탄 마을에는 파슈파티나트가 있습니다. 네팔에서 최고 성지로 여기는 힌두사원이죠. 어제 보았던 보드나트처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여기서 멉니까?”
 “아주 가깝습니다. 그러니 짐은 객실에 그대로 두시고 천천히 9시 30분까지 로비로 나오시면 됩니다.”
 여행사 직원이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이곳에서 1박을 더 하시니까 여유가 있습니다. 밖에서 점심공양을 한 뒤 오후에는 아쇼까 대왕의 동서남북 탑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오실 겁니다.”
 “네팔에도 아쇼까 유적이 있네요.”
 “그럼요. 아쇼까 대왕이 카트만두까지 올라왔지요. 이런 사실을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잘 모를 겁니다.”
 아쇼까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지 3백여 년 뒤에 인도 대륙을 통일했는데 스리랑카와 로마, 둔황, 중국 운남성까지 자녀나 불교전법사를 보냈던 대왕이었다. 또한 아쇼까는 생전에 전륜성왕, 아육왕(阿育王), 천애희견왕(天愛喜見王)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양치질을 하기 위해 객실로 들어온 선융은 카메라가방에 넣어온 H스님이 번역한 책 <아쇼까왕 비문(碑文)>을 꺼냈다. 책 뒤편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중에서 H스님이 쓴 글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다.

 

 ‘기원전 2세기에 마우리아왕조의 제 3대 왕으로서 인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아쇼까는 한 사람의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고대인도의 종교, 사상, 문화, 역사, 사회, 경제 심지어 고고학, 언어학, 법률 분야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쇼까는 고대 인도불교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갠지스강변의 작은 신흥종교였던 불교가 전인도뿐만 아니라 인도 바깥에까지 전해져서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직간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인도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아쇼까 연구는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선융은 아쇼까 왕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발생한 신흥종교인 불교가 세계 각국에 퍼져나갔다는 구절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아쇼까 왕이 없었다면 불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못한 채 인도에서 소멸했을지도 모른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었다. 아쇼까 왕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부처의 가르침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쇼까 왕의 존재가 새삼 위대하게 다가왔다. 석가모니 부처가 정법을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내 보여주신 분이라면, 아쇼까 왕은 정법의 불빛이 꺼지지 않게 외호한 성왕이었다.
 기원전 329년, 정복자 알렉산더는 네팔의 국경지방인 삡팔라바나에서 찾아온 한 젊은 장수를 만났다. 마우리아족인 그는 동인도 깔링가 지역을 본거지로 해서 세력을 확장했던 난다왕국을 멸망시키겠으니 군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난다왕국은 부처가 살았을 때 가장 강력했던 마가다왕국을 멸망시키고 나서 20여 년간 왕조를 유지하다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탓에 민심이 흉흉한 왕국이었다.
 펀잡과 인도서북 지역을 정복한 알렉산더는 젊은 장수의 청을 거절했다. 알렉산더는 들어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인도를 정복하는 동안 자신의 군대가 풍토병과 독충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권위를 모욕했다는 죄목으로 오히려 젊은 장수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자 그는 천신만고 끝에 정글로 도망쳐 나와 목숨을 구했다. 이후 와신상담하던 젊은 장수는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알렉산더가 인도서북 지역을 정복한 지 1년 만에 주력부대를 점령지에서 철군시킨 뒤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젊은 장수는 점령군에게 핍박받던 인도서북 사람들을 선동하여 인도에 남아 있던 알렉산더 군대를 격파했다. 이후 젊은 장수는 그 여세를 몰아 펀잡과 인도서북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파죽지세로 난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인도 전역을 정복해 갔다.
 그 젊은 장수가 바로 아쇼까의 할아버지이자 마우리아왕국을 세운 짠드라굽타였다. 짠드라굽타는 마우리아왕국을 24년간 통치했는데, 그의 군대는 인도의 어느 왕조보다 강했다. 60만 명의 보병과 3만 명의 기병, 그리고 9천 마리의 코끼리부대를 보유했다. 알렉산더에 이어 기원전 305년에 그리스의 셀레우쿠스가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공격은커녕 점령한 인더스강 주변의 땅을 되돌려주고 짠드라굽타와 혼인동맹을 맺고 퇴각할 정도였다.
 마우리아왕국의 제 2대왕은 짠드라굽타의 아들인 빈두사라였다. 빈두사라 역시 무력정복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영토는 더 넓어져 중앙인도와 데칸고원까지 내려갔다. 제국이 된 영토를 분할통치하기 위해 그는 많은 왕자를 두었다. 16명의 부인을 맞아들이어 낳은 101명의 왕자를 이용했던 것이다. 첫째 왕자인 태자는 수마나 혹은 수시마로 불렸고, 맨 마지막 왕자는 띳사였다. 띳사의 어머니는 또 한 명의 아들을 띳사보다 먼저 낳았는데 그가 바로 아쇼까였다. 아쇼까는 어린 시절에 성격이 몹시 거칠었으므로 빈두사라의 눈 밖에 나 왕궁에서 살지 못했다.
 아쇼까는 장성해서도 빈두사라의 눈에 들지 못했다. 태자인 수마나 총독이 다스리는 펀잡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빈두사라는 수마나를 왕궁으로 불러들인 뒤 아쇼까를 보냈다. 군사를 지원해 주지 않은 채 사지로 보낸 셈이었다. 그러나 아쇼까는 민심을 얻어 반란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으므로 대신들의 신뢰를 얻었다.
 빈두사라가 죽자, 웃제니 지방을 다스리던 아쇼까 총독은 마우리아왕국의 수도인 빠딸리뿌뜨라로 올라가 99명의 이복형제 왕자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4년 동안 살육이 끊이지 않는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것이다. 살아남은 왕자는 친동생 띳사뿐이었다. 그런데 띳사는 아쇼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해 버렸다.
 마침내 아쇼까가 왕위에 등극하는 대관식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호의호식하는 바라문들을 혐오하고 있던 아쇼까는 당당하게 길을 걸어가는 어린 사미승의 모습에 반하여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사미승은 바로 자신의 조카 니그로다였다. 수시마 태자가 타살당할 때 임신한 태자비가 천민들이 사는 마을로 도망쳐 낳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쇼까는 12살 니그로다 사미에게 <법구경> 중에서 ‘열반으로 가는 길과 윤회로 가는 길’이란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불법에 귀의했다. 물론 아쇼까가 불교에 호감을 갖게 된 데에는 웃제니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 만난 첫째부인 데비의 영향도 컸다. 데비는 카필라성이 멸망할 때 웃제니 지방으로 내려간 샤카족 후예였는데, 데비 아버지는 장사를 잘하여 산치에 개인원찰을 둘 정도로 부호였던 것이다.
 그런데 불법에 귀의한 아쇼까 왕은 깔링가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깔링가 지역은 짠드라굽타 재위 때부터 점령하지 못한 땅이었던 것이다. 마우리아왕조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깔링가왕국 정복은 마우리아왕조의 숙원사업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마우리아왕국이 동남아 국가나 스리랑카와 해로를 통해 교류하는 데 있어서 깔링가 지역은 관문역할을 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리적으로 깔링가는 마우리아왕국의 수도 빠딸리뿌뜨라에서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데다, 동인도 소국들 중에서 가장 강했던 왕국이었기 때문에 정복이 용의치 않았던 것이다.
 아쇼까는 주력부대를 둘로 나누어 깔링가왕국을 공격했다. 한 군대는 수도 빠딸리뿌뜨라에서 배에 군사를 실어 갠지스강을 타고 꼴까타까지 왔다가 남진을 시켰고, 또 한 군대는 육로를 이용하여 깔링가왕국 배후를 치는 전술로 공격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상자로 인해 다야강 강물은 피로 물들었다. 군사는 물론이고 수행자와 백성들까지 10여 만 명이 죽고, 15만여 명이나 깔링가왕국의 군사가 포로로 잡혔으며 수십 만 명이 실종되었다. 결국 깔링가 전쟁은 아쇼까의 마음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됐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아쇼까는 다야강에 칼을 버리고 부처의 정법으로 세상을 통치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굽타가 승합차 안에 서서 지금 가고 있는 바그마티강과 파슈파티나트를 설명했다.
 “인도의 강가강에서 강가(Ganga)가 어머니이듯 바그마티(Bagat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파슈파티나트에서 파슈(Pashu)는 생명체, 파티(Pati)는 존엄한 존재, 나트는 사원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파슈파티나트는 '뭇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사원'이라는 뜻입니다.”
 굽타의 설명이 딱딱했는지 스님들의 반응이 무덤덤했다. 선원장스님은 간밤에 잠을 설쳤다며 하품을 했다. 선융은 영문으로 된 <카트만두 여행> 책을 펴들고 파슈파티나트를 소개한 부분을 찾아서 보았다. 
 파슈파티나트는 477년에 초창하여 지금까지 네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현재의 모습은 1697년 말라 왕조 부파틴드라(Bhupatindra) 왕 때 완성됐다는 것이 정설인 모양이었다. 말라족은 원래 인도의 꾸시나가라에 살던 종족인데 어떤 연유로 네팔 땅으로 북상했는지 선융은 알지 못했다. 굽타에게 슬쩍 물어보았지만 그도 역시 몰랐다. 말라족이 살던 꾸시나가라는 석가모니 부처가 전생에 살았던 고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인연으로 석가모니 부처는 꾸시나가라로 찾아가 열반에 들었고 화장터에서의 다비는 승려들을 대신한 말라족 사람들 손으로 행해졌던 것이다.
 일행을 태운 승합차가 파슈파티나트 초입의 주차장에 멈췄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공스님이 손으로 코를 쥐었다. 강에서 밀려오는 연기 속에는 누린내가 섞여 있었다. 강은 짙은 연기로 장막을 친 듯했다. 굽타가 말했다.
 “스님, 우리는 강을 구경만 하고 갈 겁니다. 파슈파티나트로는 들어 갈 수 없습니다. 힌두교신자가 아니면 참배할 수 없으니까요.”
 지붕을 황금으로 치장한 사원의 본당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힌두교 신자인지 아닌지 엄격하게 가려서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굽타가 진공스님 일행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사원이 아니라 바그마티강의 가트(Ghat)였다. 가트란 시신을 태우는 화장터였다. 가트란 금생의 삶을 공식적으로 마치는 곳이었다. 망자를 바다로 떠나보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별하는 지점이었다.
 진공스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은 시신을 태운 재로 오염되어 몹시 탁했다. 그런데도 어린 소년들은 더러운 강물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강물 속에 사는 고기를 잡듯 허리를 구부렸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굽타에게 물어보니 소년들은 고기를 잡는 게 아니었다.
 “망자가 흘린 노잣돈과 시신에서 빠져나온 금니를 줍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강에서 주운 금니나 동전으로 학용품이나 신발을 산다고 합니다.”
 가트는 사원 쪽 응달에 있었고, 햇볕이 잘 드는 강가에는 사두(Sadhu)들이 앉아 있었다. 동물 모양의 탈을 쓰고 있는 사두도 있었다. 기이한 모습인데 힌두교 시바신이 그렇게 생겼다고 굽타가 설명했다. 선융이 사진을 찍자 돈을 내라고 사두가 손을 내밀었다. 사두도 가짜와 진짜가 있는 듯했다. 또 다시 강 건너에서 역한 연기가 몰려왔다. 시신을 태우는 연기였다. 시신에 불을 붙이는 장남은 머리를 삭발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머리를 삭발한 흰옷 차림의 사내가 보였다.
 “시신도 급이 다릅니다. 호흡은 멎었지만 시신도 카스트, 계급이 있습니다. 파슈파티나트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경계로 남쪽 람(Ram)가트는 일반인들의 시신이, 사원 본당 앞인 북쪽 아리아(Arya)가트는 왕족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시신이 태워지는 곳입니다.”
 시신을 두른 천이나 시신에 뿌려진 꽃의 양이 계급에 따라 달랐다. 시신을 에워싸고 있는 가족들의 옷차림도 차이가 났다. 람가트의 상주와 조문객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들이 무표정했다. 울면 시신이 홀가분하게 떠나지 못한다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울 힘도 없어 보였다. 선원장스님이 말했다.
 “하루하루가 힘든 우리 서민들과 별로 다르지 않구먼.”
 선융은 람가트의 상주와 조문객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바그마티강에 흘려보내는
 저 망자들이 가진 영혼의 무게만큼은
 모두가 평등하지 않을까.

 

 다리 위쪽으로 올라가보니 역시나 아리아가트에 올려놓은 시신은 뿌려진 꽃으로 화려했다.  조문객들의 계급을 대변해주듯 여러 가지 원색의 옷차림들이었다. 시신을 태울 향나무 장작도 수북하니 넉넉했다. 람가트와 달리 여기서는 상주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두 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통곡했다. 부귀영화를 더 누리지 못하고 떠나는 망자가 측은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흐르는 강물에 곧 사라졌다. 선융이 굽타에게 물었다.
 “왜 불을 시신의 입부터 붙이는 거죠?”
 “사람의 업은 대부분 입에서 짓는다고 하여 입부터 불을 붙이는 겁니다. 보통 아버지는 장남이, 어머니는 막내가 불을 붙입니다. 바그마티강에 시신의 재를 흘려보내는 것은 조상님들이 바다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보내면 결국 바다에서 조상님들과 만나 살게 된다고 믿지요.”
 선융은 문득 바그마티, 어머니라는 말에 사로잡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상념 하나가 번개처럼 스쳤다.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나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가니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닌가,
 생사일여(生死一如)가 아닌가.

 

 “시신의 머리는 북쪽 수미산(히말라야)을 향하게 합니다. 신이 계시는 곳이 북쪽이기 때문입니다. 장작 위에 볏짚을 올린 까닭은 불이 잘 붙게 하기 위한 것이고, 부자들은 향나무 장작을 사용합니다. 향나무는 시신이 타는 냄새를 중화시켜 줍니다. 시신은 두세 시간 탑니다. 화장을 집행하는 사람의 계급은 브라만이고 화장 비용은 3천 루피 정도 됩니다. 화장한 뒤 가족은 1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13일째에 죽은 이가 극락에 간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49일 동안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13일로 간소화시켰다고 굽타가 말했다. 그러나 13일간의 제사도 지키는 사람이 드문 모양이었다.
 “강가 제단에서 13일 동안의 제사를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눈치껏 집을 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불효자식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일행 뒤쪽으로는 작은 스투파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스투파 지역 안을 들어가 보니 맷돌 같은 모양의 조형물이 보였다. 그러나 농기구가 아니고 창조의 신인 시바의 상징물이었다. 뭉툭하게 솟은 남근이 시바의 링가(Linga)이고, 링가를 받치고 있는 둥그런 석조가 여음(女陰)인 요니(Yoni)였다. 링가와 요니가 결합해 있으니 생명체의 창조가 가능할 터였다. 링가는 사두들이 기도하면서 붉은 안료를 묻히곤 하여 빳빳하게 발기한 성기를 연상시켰다. 선융은 그런 상상을 했다.
 좀 더 위로 올라가자 강물이 가트 쪽보다는 훨씬 맑았다. 젊은 연인들이 강물에 서로 손을 적시며 깔깔대고 있었다. 강물에 손을 함께 적시면 죽은 뒤에도 다시 부부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풋풋한 젊은이의 상상력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선융은 바그마티강에서 인생의 생로병사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쉼 없이 흐르는 바그마티강에는 인생의 생로병사가 한데 엉켜 있는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