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한순간에 큰 가르침을 보여주는 탱화
연화좌에 좌정하신 부처님의 뒷벽에는 탱화가 걸려있습니다. 금당에 탱화를 거는 까닭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불법을 설하시는 장면이나 불법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하여, 큰 가르침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기 때문에 예부터 불경에 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금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배운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금당에는 가르침을 배우려는 마음과 간직하려는 마음 그리고 실천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품어지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탱화만한 게 없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에는 창건 당시 최고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그린 매우 유명한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탱화는 불경에 담긴 내용을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 불법을 이해한 승려가 그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조임금은 도화서 화원인 단원에게 후불탱화를 그리게 합니다. 보통의 사찰이라면 그 사찰이 알아서 탱화를 그렸겠지만, 용주사가 원찰로 건립된 까닭에 정조는 자신이 총애하는 – 새로운 화풍의 서양미술을 습득한 – 단원에게 탱화를 그리도록 합니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자 용주사를 세웠는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곳에다가 최고의 화가의 그림을 걸어놓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단원은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 정조의 지시를 받아 50여 일 동안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70폭의 금강산을 그려다 받치기도 했고, 서당 ․ 대장간 ․ 씨름판 ․ 길쌈 등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그려서 정조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했으니, 후불탱화를 그리도록 지시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학계에서는 단원이 그린 게 맞는다거나 김홍도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이라거나 하는 의견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 교리를 모르는 단원이 후불탱화를 혼자 그릴 수는 전혀 없으니 당연히 탱화를 그리는 화승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또 다른 화원들과도 합동 작업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단원은 용주사 후불탱화를 그리는 중에 불법에 귀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삼세불회도대웅보전 삼세불회도는 큰 편이라 할 수 있는 가로3.5m, 세로 4.2m로, 그래도 다른 사찰의 후불탱화보다는 크다 할 만합니다. 이 후불탱화의 특징은 이제까지의 탱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양미술의 명암법이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려진 탱화가 일필휘지의 선으로 그려지고, 선 사이에 생겨난 면을 색칠하는 평면적인 것으로 그친 반면에 용주사 후불탱화는 부처님과 보살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의 얼굴과 손 등에 밝음과 어둠을 표현하여 명암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실제인 듯 생동감과 입체감이 살아있는데, 이것은 서양미술의 원근법과 명암법이 이미 유입된 중국 연경을 두 번씩이나 다녀왔고,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렸던 단원의 장점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림은 중간 수미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약사부처님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이 앉아계시고, 그 뒤에 여러 제자들이 그려졌는데 그 시선이 모두 세 부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서 부처님을 공경하며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미단 아래에는 보살님들이 시립하고 계신데, 보관과 들고 있는 지물을 보건데 화려한 보관을 쓴 모습으로 관세음보살임을, 녹색의 연꽃과 황색의 연꽃을 들고 계신 것으로 보아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보관에 해와 달이 장식된 것으로 보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바로 아래에는 수행을 잘 닦은 가섭존자가 흰 수염에 어깨가 쳐질 수밖에 없는 듯 늙은 모습으로 합장한 자세로 서있고, 그 맞은편에는 부처님의 모든 설법을 기억하는 젊은 아난존자가 삭발한 모습으로 경전을 들고 있습니다.

 

탱화의 네 귀퉁이인 오른쪽 위에는 비파를 들은 북방 다문천왕, 아래로는 보검을 잡은 동방 지국천왕, 왼쪽 아래에는 용을 잡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위쪽에는 탑을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 등 네 명의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부처님의 불국토를 사방에서 굳세게 지켜주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등장인물 배치는 좌우 대칭으로 그려졌고, 빈틈이 없이 꽉 들어차서 동양화가 좋아하는 여백의 운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국토가 부처님의 지혜로 가득 차있고, 많은 보살님들의 지혜와 자비 그리고 큰 원력을 나타내려다보니 화면이 비좁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 큰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 하여도 불국토를 그리기에는 좁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용주사 후불탱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연꽃을 들고 계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사이에 “주상전하수만세 왕비전하수만세 자궁저하수만세 세자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王妃殿下壽萬歲 慈宮邸下壽萬歲 世子邸下壽萬歲)”라고 축원문구가 써 있다는 것입니다. 왕실에서 그렇게 쓰라고 지시를 하였는지, 단원이 알아서 썼는지 모르겠으나 부처님의 가피로 왕실이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있음은 확실합니다.

 

신중탱화
불법을 수호하는 많은 신들을 모시는 신중단이 용주사에는 금당의 수미단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이곳에도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신중탱화가 걸려있습니다.

 

 

 

옆으로 긴 그림의 가운데에는 불꽃이 타오르듯 머리카락이 위로 뻗쳤고, 이마에는 해골이 박힌 머리띠를 두른 예적금강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세 개의 얼굴 중, 앞을 보는 얼굴은 부릅뜬 두 눈에는 눈썹이 곤두섰고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눈이 있고, 위에서는 아래로 아래에서는 위로 뻗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낸 형상은 분노가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여덟 개의 팔뚝마다 사나운 용이 이리저리 서려있는데 안쪽의 팔 두 개는 빈손이지만 오른쪽 팔 세 개는 각각 금강저, 법륜, 짧은 창 같은 무기를 그리고 왼쪽 팔 세 개에는 금강령, 포승줄, 보검을 들고 있습니다.
그 지물을 보건데, 깨우침의 길을 따르지 않거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어리석은 중생은 무기를 사용하거나 묶어가겠다는 표현입니다. 이러함을 알고 있는 우리는 금당에 들어설 때면 ‘저는 부처님을 따르는 신도입니다’라는 마음으로 신중단을 향해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예적금강신의 아래는 새 날개의 긴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쓴 동진보살은 볼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린아이의 얼굴 형상으로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기묘한 표정으로 어느 한 곳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금강보저를 공손하게 받들고 있는 것과 다르게 동상에서 장군을 나타내듯 금강보저를 곧추 세우고 칼자루를 누르는 늠름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금강보저의 무게는 팔만 사천 근이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팔만 사천 가지 번뇌를 눌러준다는 뜻을 품고 그렸다는 생각입니다.

 

천부중과 천룡팔부중이 예적금강신과 동진보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 신중들은 얼굴색이 흰색과 살구 색으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천룡팔부 신중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선한 신으로 바뀌었는데, 선한 신으로 바뀌었어도 강인한 태생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신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짙은 색으로 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