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스님

 

 집으로 돌아온 선융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산비둘기처럼 생긴 직박구리 한 마리가 유리창에 어린 나무를 보고 날아왔다가 부딪쳐 죽었다. 새의 부리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난 흰 털은 아직 따뜻했다. 선융은 죽은 직박구리를 들고 삽을 찾았다. 구덩이를 판 뒤 묻어 주기 위해서였다. 죽은 직박구리를 머릿속에서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반찬거리를 가지고 교회에서 올라온 주혜가 물었다.
 “선융 씨, 뭐해요?”
 “새가 죽었어요.”
 “어머나! 가여워라.”
 “유리창에 한지를 바르든지 해야겠어. 유리창에 어린 나무 그림자를 보고 날아왔다가 죽은 거예요.”
 “목사님은 잘 계시고요?”
 “최 장로님이 끝내 교회를 옮겨갔어요.”
 “어디로요?”
 “우리 면에도 교회가 여러 군데 있어요.”
 “최 장로님이 십일조를 많이 내서 도움이 많았는데 타격이 크겠군요.”
 “다행히 교인들 대부분은 따라가지 않았어요. 줄여서 살림하면 그런대로 버틸 수는 있을 거예요.”
 선융은 주혜에게 최 장로 얘기를 들으려고 죽은 새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융은 집 밖의 양지바른 산자락에서 삽질을 했다. 언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드럽게 잘 파졌다. 낙엽이 썩어 흙이 된 검은 부엽토라서 그랬다. 죽은 새를 묻고 돌아온 선융이 주혜에게 말했다.
 “죽은 새를 보니 기분이 좀 그래요.”
 “최 장로님 얘기를 들으려고 그랬나 봐요.”
 “내가 교회 사택을 나왔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는데 아쉽군요.”
 “사람도 죽은 새와 같이 그림자를 쫓아다니는 것 같아요.”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하느님은 한 분이겠죠. 그러나 교인들이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하느님의 그림자는 수없이 많아요. 위험한 일이에요. 최 장로님도 그런 분 중에 하나고요.”
 “주혜 씨 얘기가 맞아요. 절에도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그림자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요. 자기가 멋대로 해석하는 부처님이죠. 뿌리가 있는 나무와 생명이 없는 나무그림자는 분명 다르지요.”
 “주혜 씨. 산책할까요?”
 “좋아요.”
 선융과 주혜는 집을 나섰다. 선융은 저수지 산림도로 입구인 조그만 시멘트다리 부근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장끼 한 마리가 개울 풀숲에서 있다가 푸드덕 날아갔다. 매 한 마리도 날개를 쭉 편 채 산중 날짐승의 왕이라도 된 양 저수지 허공을 위엄 있게 유유히 날았다. 예전에 포행시간 때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주혜가 말했다.
 “묘유스님은 잘 계시던가요?”
 “진공스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막상 가서 뵈니 좋으셨어요.”
 “다행이군요.”
 “임시로 채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무소에 남자직원이 한 사람 와 있더군요.”
 “대중이 불어난 모양이죠?”
 “묘유스님이 <금강경> 강의를 시작한 때문인지 학인스님들이 이십여 명 됐어요. 강의 끝나고 단체로 인도순례를 할 예정이래요.”
 “진공스님도요?”
 “묘유스님께서 함께 가자고 강권하는데도 서래사 사정을 들어 머뭇거리시는 것 같아요.”
 “선융 씨는요?”
 “나야 진공스님을 따라가고 싶지만 주혜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저는 갈 수 없어요. 교회 살림을 해야죠. 더구나 지금은 최 장로님 문제도 있고 해서 움직일 수 없을 거예요.”
 겨울가뭄이 지속되어 저수지 물은 바짝 줄어 있었다. 물에 잠겨 있던 산기슭 밑의 도로와 은밀한 계곡들이 드러나 있었는데 마치 저수지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듯했다. 주혜가 산모퉁이에서 말했다.
 “저기 기억나죠?”
 “잊을 수가 없지요.”
 주혜가 앉아서 울던 곳인데 갈대가 웃자라 있었다. 선융이 포행 때 주혜를 운명처럼 발견한 곳이었다.
 “선융 씨, 미안해요. 절에서 나오게 해서.”
 “미안할 것 없어요. 나는 절 안이든 밖이든 어디에 있어도 똑같은 사람이죠.”
 “저 때문에 절에서도 교회에서도 살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건 사실이에요. 불편한 일이죠.”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산다면 더욱 불편하겠죠. 괴롭기도 하고.”
 선융이 말한 ‘자기’는 나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불가에서는 그런 나를 소아(小我)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상과 하나가 된 나는 소아와 구분해서 대아(大我)라고 불렀다. 대아로 돌아가는 일이 깨달음이었다. 선융과 주혜는 거기서부터는 손을 잡고 걸었다. 주혜의 손가락은 거미처럼 가늘고 길었다. 선융의 큰 손 안에 쏘옥 들어왔다. 주혜가 은근하게 말했다.
 “선융 씨, 인도 가고 싶은 거죠?”
 “진공스님과 함께라면요.”
 “진공스님을 모시고 다녀오세요.”
 “주혜 씨 진심인가요?”
 “선융 씨와 살면서 발견한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죠?”
 “선융 씨 얼굴이 달라졌어요. 교회 사택에 살 때보다 서래사 옆으로 와 있는 지금이 행복해 보여요. 아마도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에 있었더라면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요.”
 선융은 주혜의 말에 수긍했다. 얼굴 표정이 그랬다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정말 그런지도 몰랐다.
 “어쩌면 전생에 나는 스님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생의 습이 금생에도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요.”
 “나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선융 씨를 선택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선융 씨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았어요. 목사님께 말씀드리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래요.”
 선융은 ‘하느님의 사랑’이란 말에 놀라서 주혜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손바닥에 났던 두 사람의 체온 같았던 땀이 식었다. 손바닥이 무언가가 증발하는 것처럼 시원했다.
 “나는 선융 씨가 행복해진다면 놓아줄 거예요. 절로 다시 들어간다 해도 말이에요.”
 “내가 절로 다시 들어갈 것 같은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니까요.”
 “주혜 씨는 어느 때 행복하죠?”
 “지금처럼 선융 씨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이율배반적이군요.”
 “아니에요. 하느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듯 선융 씨가 내 마음에만 있으면 돼요.”
 “주혜 씨에게서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군요. 마음이란 선물.”
 선융은 주혜가 자신의 마음속으로 녹아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없이 행복했다. 비로소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을 실감했다. 주혜와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안적사 법당에서 묘유스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릴 때만 해도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헤어져 있어야만 서로가 한 마음이라는 일체감을 더 절감하는 존재인지도 몰랐다. 선융은 주혜의 말을 통해서 그런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특성을 깨달았다. 

 

 진공스님은 점심 공양 후 서래사 선방 선원장스님과 진원스님, ‘울보스님’으로 불리던 원일스님, 그리고 상좌스님을 주지 방으로 불렀다. 동안거를 해제하고 나면 반드시 만행을 떠나던 선원장스님이 선방으로 돌아와 정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인도 성지순례를 가자고 스님들을 불렀어요.”
 “인도를 가자고요?”
 진원스님의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지금 시기가 순례하기 가장 좋다고 해요.”
 “몇 명이나 됩니까?”
 “여기 모인 사람하고 안적사 비구니스님들까지 합하면 25명은 되겠지요.”
 선원장스님이 먼저 찬성의견을 냈다.
 “원일스님, 나 따라서 서래사 오니까 좋은 일이 생기잖아요.”
 “저도 가고는 싶지만 여행경비가 있어야지요.”
 “그건 걱정 말아요.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나는 진원스님과 상좌를 책임지겠소. 사실 안적사에 갔더니 묘유스님이 봉투를 내놓더라고.”
 원일스님이 말했다.
 “주지스님, 인도에 가면 통역은 누가합니까요?”
 “여행사 직원이 한 사람 동행한다고 해요. 영어를 좀 하는 선융당도 있고.”
 “선융당도 갑니까?”
 “간다고는 했지만 결혼한 사람이니 아내의 의견도 있겠지요.”
 선원장스님과 원일스님은 선융이 서래사 옆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금방 확인할  수 있어요. 절 옆에 살고 있으니까.”
 “선융당이 절 옆에 살고 있다니 조금 더 있으면 절 안으로 들어오겠습니다요.”
 “원일스님, 악담하지 말아요. 결혼한 사람보고 이혼하라는 말로 들려요.”
 선원장스님이 원일스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원일스님의 말은 결코 악담이 아니었다. 절과 선융의 인연이 깊다는 말일 뿐이었다. 선융이 서래사 옆에까지 와서 산다는 사실을 알고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
 진원스님이 무덤덤하게 묵묵히 앉자만 있자 진공스님이 다시 한 번 더 권유했다.
 “진원스님, 순례경비는 걱정하지 말아요.”
 “주지스님, 순례경비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경비야 마음을 내면 설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오?”
 진원스님이 거절할 뜻을 비치자 들뜬 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선원장스님과 원일스님이 당황했다. 동안거 해제 뒤에도 진원스님과 함께 정진하기로 약속해 놓았으니 지키지 못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원일스님이 익살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진원스님이 자신의 의중을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선방을 벗어나본 적이 없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선방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없던 일로 하겠소. 진원스님이 반대하는데 나도 가기는 싫소.”
 진원스님과 평소에 목욕도 같이 다니는 등 서로 마음이 통하는 선원장스님이 말했다.
 “진원스님, 어디 관광 하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 태어나신 성지를 순례하는데 무슨 허물이 되겠소. 성지의 기운이 좋다고들 합니다. 선방과는 많이 다를 거요.”
 “선원장스님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선방을 지키는 미련한 중이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원일스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지스님이나 진원스님이 가시지 않겠다면 저도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진원스님과 정진하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겠습니다.”
 “알았소. 오늘 한 얘기는 없던 걸로 하겠소.”
 “주지스님, 저를 너무 탓하지는 마십시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스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진원스님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괜찮아요.”
 진공스님은 단호하게 인도 성지순례를 취소했다. 당장 안적사 묘유스님에게서 받은 순례경비를 돌려주려고 생각했다. 선원장스님과 원일스님, 그리고 진원스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선방으로 휘적휘적 올라갔다. 진공스님은 상좌를 불러 앞에 앉혔다.
 “너는 이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
 “스님의 말씀도 맞고 진원스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느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땅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원스님께서 선방을 지키신다고 하니 숙연해졌습니다. 진원스님 같은 구참스님의 자세도 본받고 싶습니다.”
 “네가 풋중인 줄만 알았더니 중물이 다 들어가는구나.”
 “스님을 시봉하면서 얻은 단견입니다.”
 “자, 순례 얘기는 그만 하고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자구나.”
 “고맙습니다.”
 진공스님은 허허로운 마음을 뜨거운 발효차로 달랬다. 어엿한 승려가 되어가고 있는 상좌와 함께 앉아 있는 것도 흐뭇하고 든든했다. 자신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너 혼자라도 인도를 갔다가 오겠느냐?”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따라 차맛이 더 좋구나.”
 상좌는 진공스님이 따라주는 차를 세 잔만 마시고 일어났다. 진공스님이 말했다.
 “이 봉투를 김양에게 맡겨놓아라. 묘유스님에게 보낼 것이다.”
 진공스님은 곧 오침을 했다. 짧은 오침이라도 하고 나면 여러 가지 효과가 있었다. 오침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평상심이 도다(平常心是道)라는 중국 남전선사의 선어대로 평상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평상의 마음이란 일상적인 마음이 아니라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을 뜻했다. 그러니까 시비분별하지 않는 본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서래사 대중들이 소등하고 잠을 잘 시각이었다. 진공스님은 주지 방 앞마당 밖에서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진공스님은 소등 스위치를 누르려다가 멈췄다. 대중들의 눈을 피해 면담하려고 오는 스님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지스님.”
 “누구요?”
 “진원입니다.”
 “들어오시오.”
 방문을 열자 방 안의 불빛이 진원스님에게 달려갔다. 불빛에 드러난 진원스님은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낮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습니다. 화두가 들리기는커녕 번뇌 망상만 들끓었습니다.”
 “인도를 가자고 한 나 때문이겠지.”
 “아닙니다. 제 탓입니다.”
 “진원스님 생각도 옳아요.”
 “아닙니다. 저 때문에 대중들이 모두 순례를 포기했으니 괴롭습니다.”
 “그러나 없던 일로 하자고 결론 낸 문제요.”
 “저는 남겠습니다만 주지스님과 스님들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해제하고 나서도 정진하겠다고 스님들끼리 약속했다니 권장할 일이지요.”
 “제가 설득하겠으니 주지스님께서는 스님들과 함께 가셔야 합니다.”
 진원스님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인도 성지순례가 무산됐다고 자책하는 듯했다. 진원스님이 호주머니 속을 더듬거리더니 봉투를 꺼냈다.
 “스님, 참회합니다. 받아주십시오. 인도에 가시어 스님들과 함께 쓰십시오.”
 “진원스님 마음만 받겠으니 도로 가져가시오.”
 선승들이 보시 받은 봉투를 모아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만행을 하거나, 도반 중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진공스님은 진원스님의 봉투를 받을 수 없었다. 선승들은 병이 나도 누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산짐승처럼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융당까지 간다고 하니 순례경비가 부족할 겁니다.”
 “묘유스님이 넉넉하게 주었으니 괜찮아요.”
 “참회하는 마음으로 내놓은 것이니 받아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알겠소.”
 그제야 진원스님이 일어났다. 밖은 컴컴했다. 하늘에 눈구름이 끼었는지 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산자락 너머에서 불러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거풋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믐밤이니 잘 살펴가요.”
 진공스님이 소등을 하자 방 안팎으로 어둠이 가득 몰려왔다. 어둠이 무언가를 가져와 슬며시 내밀었다. 그것은 진공스님에게 너무도 익숙한 적막이었다. 이윽고 여인의 머리채 같은 나뭇가지들의 거풋대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진공스님은 바로 꿈 없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고, 진원스님은 선방에 혼자 앉아 꼭두새벽까지 면벽참선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