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회

                                원죄와 무명

 

 

 묘유스님이 대방(大房)에 비구니스님들 모두가 모이도록 지시했다. 대방은 강사스님이 강의를 하거나 고명한 스님이 설법하는 강당이었다. 종무소는 대방 한쪽에 붙어 있었다. 큰 방석과 앉은뱅이책상이 놓인 법상은 불단 앞에 놓여 있었다. 불단에는 새로 개금한 관세음보살상의 금빛이 번쩍거렸다. 관세음보살상 뒤쪽의 거무튀튀한 탱화와 대비되어 더욱 눈부셨다. 대방으로 입실하는 비구니스님들이 불단 앞까지 가서 합장하거나 엎드려 절을 했다. 법상에는 아직 법사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법상에 올라갈 법사는 진공스님이었다.
 대방의 방바닥은 미지근했다. 이른 아침부터 군불을 땠지만 넓고 길쭉한 방이므로 온기만 감돌았다. 이십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줄을 맞추어 좌복에 앉았다. 이삼 일전부터 묘유스님에게 <금강경> 특강을 듣기 위해 모인 비구니스님들이었다. 동안거를 해제하자마자 선방에서 바로 달려온 비구니 선객도 있었다. 안적사에서 한두 해씩 정진한 적이 있는 비구니스님들이었다. 아침 산행을 하고 돌아온 선융이 객사 방으로 내려가서 말했다.
 “스님, 비구니스님들이 대방에 다 모인 것 같습니다.”
 “하룻밤 잘 잤으니 밥값은 해야지.”
 진공스님은 이미 장삼을 정갈하게 입고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잠시 참선을 하고 있었는지 몸 둘레에 고요한 기운이 흘렀다. 선융은 가끔 그와 같은 고요한 기운을 거룩하다고 느꼈다.
 “선융당은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별채 방에 가보니 없던데.”
 “아침 산행을 했습니다. 산정 부근까지 오솔길이 잘 나 있습니다. 스님들 포행 길인 모양입니다.”
 “코끝에 고추장이 묻은 것 같군. 술독이 오른 사람 같기도 하고.”
 코끝이 빨개진 선융을 보고 진공스님이 미소를 지었다.
 “산정은 또 다릅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설국 같습니다.”
 “산정의 눈까지 녹으려면 입춘이 지나야겠지.”
 “스님, 서래사 기후와는 전혀 다릅니다.”
 “오후에 설경이나 구경할까?”
 “서래사에서는 볼 수 없는 진경입니다.”
 “자, 대방으로 가세.”
 선융이 곱은 손을 비비면서 앞장을 섰다. 대방 토방에는 비구니스님들의 신발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진공스님이 입실하자 비구니스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합장했다. 묘유스님이 진공스님에게 다가와 법상으로 안내했다. 법상에 오른 진공스님의 눈빛은 사뭇 날카로웠다. 비구니스님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비구니스님들이 청법(請法)의 예로 절을 한 뒤부터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인 하얀 찻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진공스님이 장삼 소매 속에 들어 있던 손을 뻗어 찻잔을 들었다. 마치 마술가의 무슨 동작 같았다. 비구니스님 모두가 진공스님이 든 찻잔을 주목했다. 이윽고 진공스님이 차를 아주 천천히 마시고 나서 말했다.
 “오늘 내 법문은 차 한 잔 속에 있었으니 오늘 법문을 다 마치었소.”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선융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그런데 비구니스님들 일부가 술렁거렸다.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무슨 법문이란 것인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공스님의 법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설하는 무설설(無說說), 이른바 선가에서 전해오는 침묵의 법문이었다. 선융이 눈을 찡긋했던 까닭은 진공스님의 법문을 이심전심으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차를 마실 때는 오직 차 마시는 데만 집중하라는 법문이었다. 자신의 몸을 찻잔 속에 풍덩 빠뜨려야만 진정한 차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법문이었다. 시비와 분별을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라는 법문이었다.’
 비구니스님들의 술렁거림은 묘유스님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자 곧 잦아들었다. 진공스님이 말했다.
 “법문을 다 했기 때문에 법상을 내려가려고 했지만 묘유스님이 더 청하기에 한 마디 하겠소. 지금부터 하는 내 말은 군더더기이니 굳이 새겨듣지는 마시오.”
 진공스님이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 달마가 제자 혜가에게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문답부터 법문을 시작했다. 달마는 불교가 융성한 남인도에서 온 수행자였고 혜가는 노장사상이 풍미하던 중국 낙양 출신이었다. 노장사상의 불로장생 같은 공허함과 유교의 도덕적인 답답함에서 무언가 신선한 돌파구를 찾던 낙양 사람들은 달마가 가져온 불교에 매료당했다. 낙양의 지식인이었던 혜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노장사상과 유교에 심취했던 혜가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과정은 달마와의 짧은 문답이 전부였다. 신선이나 선비가 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거나 드넓은 중국 땅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혜가의 심혼(心魂)에 불을 붙여주는 달마의 방편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어느 날, 혜가가 스승 달마에게 물었다.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지금 너의 마음을 가지고 오라. 편안하게 해주리라.”
 “마음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달마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혜가는 마음이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치 않은 마음도 없고 편안한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그런 마음을 만들어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혜가를 안심시킨 달마가 말했다.
 “나는 네 마음을 이미 편안케 하였다.”

 

 어느 날 달마는 여러 제자를 불러 모았다. 스승의 부름을 받고 모인 비구와 비구니는 도부(道副), 총지(聰持), 도육(道育) 등이었다.
 “너희들 각자 수행을 통해 이룬 것을 말해 보라.”
 도부가 먼저 대답했다.
 “진리는 문자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문자를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를 깨닫는 방편으로서만 쓰입니다.”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달이 될 수는 없었다. 달마가 말했다.
 “너는 겨우 내 가죽을 얻었구나.”
 그때 비구니 총지가 말했다.
 “진리는 불국토를 잠시 보는 것입니다. 한 번은 볼 수 있어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해가고 있을 뿐이었다. 영원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불국토라도 마찬가지였다. 달마가 대답했다.
 “너는 내 살을 얻었다.”
 도육도 말했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은 본래 공합니다. 오온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실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현상이 공하기는 하지만 공을 말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공이 아니라 근사치일 뿐이었다. 달마가 다시 대답했다.
 “너는 내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가 말할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침묵했다. 마침내 달마가 말했다.
 “너야말로 내 골수를 얻었도다.”
 달마가 자신의 옆자리에 혜가를 앉게 했다. 그런 뒤 제자들에게 앞으로의 스승은 혜가라고 말했다.
 “나의 심법(心法)을 혜가에게 전하노라.”
 
 진공스님은  달마가 제자들 중에서 혜가에게 자신의 심법을 전하는 장면까지 법문하고는 비구니스님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달마의 골수인지 말해 보시오.”
 “......”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진공스님이 염불 하듯 <금강경> 사구게 하나를 읊조렸다. 침묵 속에서 <금강경> 사구게를 서로가 마음으로 합송하는 것이 달마의 골수가 아니겠느냐 하는 진공스님의 배려였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때 묘유스님의 상좌인 다명스님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진공스님이 자애롭게 말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큰스님, 죄송합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듯합니다. 스님께서 가시를 뽑아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인가?”
 “......”
 “왜 묻지를 못하는가? 아무 질문이라도 좋으니 어서 말해 보라.”
 다명스님이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
 “큰스님, 저는 신학대학에서 신 여호와가 아담과 화와라는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합니다. 이후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를 받습니다. 이를 저는 원죄(原罪)라고 배웠습니다. 전지전능하고 공의로운 존재인 신께서 왜 아담과 하와의 죄를 모든 인간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비구니스님들 사이에서 깔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원죄의식은 다명에게 목에 걸린 생선가시나 마찬가지였다. 절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내 다명을 괴롭혔던 가시였다. 다명은 신학대학 시절 ‘내가 죄악 중에 태어났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잉태하였나이다.’라는 시편 51장을 볼 때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죄인이라고 여겼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로마서 6장에 붙들려 남몰래 두려워했던 것이다.     
 “웃지 말라. 지금은 모두가 다명스님이 되어 함께 괴로워해야 진정한 도반인 것이다. 불교도 원죄 같은 것이 있다. 무명, 즉 어리석음이 그것이지. 그러나 불교에서는 원죄와 같이 대물림하는 죄는 단언컨대 없어요. 누구나 무명(無明)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스스로 노력하면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또한 불교에서는 인간이 죄의 삯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이 있으니 죽음이 있다고 봐요.”
 “큰스님, 비로소 출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명은 지옥의 문이다. 지옥은 신이 만든 장소가 아니라 어리석은 인간이 과보를 받는 모든 시간과 장소다. 무명이 사라지면 지옥도 사라진다. 바로 그 자리가 광명의 세계인 극락이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타나지 않는가, 알겠는가?”
 “예.” 다명스님 뿐만 아니라 비구니스님들 모두가 진공스님을 찬탄하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다명스님은 목구멍에 찬물이 내려가는 듯한 청량함을 느꼈다. 묘유스님도 늘 가슴에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이 한 자락 사라지는 기쁨을 맛보았다.

 

 점심 공양을 한 뒤였다. 한 시간 정도 오침을 한 진공스님이 묘유스님 방으로 들어가더니 좀체 나오지 않았다. 오랜 만에 속가의 오누이가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푸는지도 몰랐다. 가끔 묘유스님 방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산행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선융은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대방 한 쪽의 종무소로 들어갔다. 화목난로 불을 쬐고 있던 중늙은이 남자직원이 말했다.
 “차 한 잔 하슈. 따끈해요.”
 “발효차군요.”
 종무소 남자직원이 주전자를 들고 와서 진하게 우려진 발효차를 큰 사발에 가득 따랐다.  그러더니 흰 봉투를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주지스님께 잠깐 다녀오겠으니 전화 좀 받아줘요.”
 “예, 다녀오시죠.”
 그러나 종무소 남자직원이 돌아올 때까지 전화는 한 통도 걸려오지 않았다. 선융은 밖으로 나와 별채로 쉬려고 올라갔다. 그때 진공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융당, 지금 갈까?”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괜찮겠습니까?”
 “어두워지기 전에만 내려오면 되겠지.”
 선융이 앞장섰다. 안적사 주변은 서래사와 달리 숲이 울창했다. 낮은 계곡의 응달에만 잔설이 희끗희끗했지만 산의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오솔길에 쌓인 눈은 발자국 소리가 크게 날 만큼 살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묘유스님이 인도를 가자고 해.”
 “가시겠습니까? 스님께서 가신다면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절을 비울 수 있나.”
 “해제했으니 가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선융당도 알다시피 우리 선방은 일 년 내내 개방돼 있잖은가.”
 “잠시 비우는 것인데요. 더구나 인도여행은 겨울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인도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는 하지만 여행하기가 적당한 건기였다. 3월부터는 40도를 오르내리는 혹서기가 됐다가 비가 쉬지 않고 쏟아지는 우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니 인도를 가려면 겨울에 가야 했다.
 “여행이 아니라 부처님이 태어나신 땅이니까 순례지.”
 진공스님은 가고는 싶지만 서래사 선방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 반면에 묘유스님은 해제 때니 한 번 다녀오자고 강권한 모양이었다.
 “노잣돈 봉투까지 챙겨주는데도 난감해.”
 “선방은 진원스님이 계시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간다면 진원스님도 데리고 가야겠지. 나만 가면 되겠는가.”
 “진원스님은 절대로 가시지 않을 겁니다.”
 “가게 될 상황이라면 설득해야지.”
 선융은 걸음을 멈추었다. 산 정상으로 갈수록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고 해가 떨어지자마자  어두운 보랏빛의 산그늘이 졌다. 고사목이 보이는 지점에서 선융과 진공스님은 돌아서 하산을 했다. 고사목에도 눈이 얹혀 있었는데 마치 함박꽃 같았다.
 “비구니스님들이 여행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풋중일 때 어디 간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는데.”
 “건강하실 때 만행하셔야 합니다.”
 “그건 선융당 말이 맞아. 부처님은 80세 때까지 길 위에 계셨지만.”
 “부처님께서는 왜 길 위에 계셨을까요?”
 “눈앞이 길이니까. 눈앞에 진리가 있으니까.”
 진공스님의 대답은 늘 간명했다. 눈앞에 있는 진리를 보고 걷는 사람이 부처라는 뜻이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눈앞에 길을 보고도 길을 묻는 사람은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일 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