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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연재소설 따뜻한 슬픔 13

정찬주 | | 2018-02-02 (금) 09:12


ⓒ 유동영
 
<제3장> 3회
 
                                  달의 미소
 

 산악 고지대에 있는 안적사는 남해가 가까운 서래사보다 훨씬 더 추웠다. 소나무와 전나무,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푸른 대숲에 둘러싸인 안적사의 응달에는 잔설이 듬성듬성 쌓여 있었다. 잔설이 흰 돌덩이처럼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정월 보름이 지났지만 경내에 얼음물 같은 냉기가 차갑게 일렁였다. 경내를 오가는 비구니스님들의 코끝이 빨갰다. 두툼한 장삼을 입은 차림 때문에 마치 눈사람이 굴러가는 것 같았다. 선융은 잰걸음으로 걷는 어린 비구니스님에게 다가가 묘유스님을 찾았다.
 “묘유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래사 진공스님께서 오셨다고 전해주세요.”
 “추우니까 저기 객사 방에서 기다리셔요.”
 “묘유스님은 잘 계십니까?”
 “네.”
 홍조를 띤 어린 비구니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선융은 묘유스님의 병이 심각해진 상태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지스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비구니스님의 대답은 선융의 예상을 빗나갔다.
 “네, 방금 학인들에게 <금강경>을 강의하시고 나서 잠시 포행 나가셨습니다.”
 비구니스님이 손으로 두 눈을 쓱 훔치더니 부끄러운 듯 사라졌다. 선융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진공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묘유스님이 건강을 되찾으신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먼.”
 선융은 마음이 좀 편해졌다. 경전을 강의하고 포행 나갈 정도면 진공스님이 우려했던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한 동안 누워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선융과 진공스님은 법당으로 가 불전에 엎드렸다. 아미타불의 표정은 언제나 넉넉했다.
 객사 방은 따뜻했다. 따끈할 정도를 넘어 아랫목은 설설 끓었다. 폭설이 내린 산길을 걸어서 안적사에 왔을 때 주혜가 잤던 그 방이었다.
 “스님, 이쪽이 더 따뜻합니다. 아랫목으로 앉으시죠.”
 “방금 문을 닫을 때 찬바람이 훅 따라오는 것을 보니 여긴 서래사와 달라.”
 “추위에 정신이 번쩍번쩍 나니까 이곳은 경전 공부하기에 좋은 곳 같습니다.”
 “그럴까? 하긴 이쪽에서 천하의 강백들이 더러 났어. 무당들도 기도하러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고.”
 “스님, 좀 전에 만난 비구니스님을 보고 처음에는 몹시 놀랐습니다.”
 “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선융당 얘기를 듣고 마음을 놓았네.”
 “비구니스님이 곧 눈물을 쏟을 것 같았거든요.”
 “추위 때문인지 겁에 질린 얼굴 같았어.”
 “아무튼 다행입니다. 묘유스님이 <금강경>을 강의하고 있다니 건강을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이삼년마다 도지는 지병이 문제지.”
 “어느 때 또 편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혹처럼 달고 사는 병이라서 그래.”
 그때 묘유스님의 목소리가 방 밖에서 들려왔다. 선융은 묘유스님의 명랑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님, 오셨어요?”
 “선융당도 왔다.”
 묘유스님과 좀 전에 보았던 어린 비구니스님이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뒤 진공스님에게 큰절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손을 쭉 내밀더니 방바닥의 온기부터 확인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누가 올지 몰라 방에 불을 들이라고 했어요.”
 “묘유도 이제 도사가 다 됐군. 사람이 올 것을 알아맞히고.”
 “토요일에 불 때는 사람은 다 도사인가요?”
 진공스님과 묘유스님이 주고받는 말 속에는 형제라는 말간 정이 흘렀다. 묘유스님은 진공스님을 존경하면서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참, 인사 드려라. 서래사에서 오신 큰스님이시다.”
 “절은 한 번만 해라. 나는 큰스님이 아니다.”
 “주지스님을 시봉하고 있는 다명입니다.”
 “그래, 공부 잘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거라.”
 앳된 다명스님은 진공스님에게 삼배를 했다. 진공스님이 절을 한 번만 하라고 당부했지만 묘유스님이 지켜보고 있음인지 천천히 세 번을 엎드렸다가 일어났다. 다명스님이 삼배를 마치고 나자 묘유스님이 말했다.
 “신학대학을 나왔대요.”
 “그래? 어째서 인생길을 바꾸었는가?”
 “성경을 보아도 제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묘유스님이 다명스님을 대신해서 말했다.
 “교회에 가서도 늘 ‘나는 누구인가?’만 생각했답니다.”
 “화두를 들고 있었구먼. 그러니 절로 들어올 수밖에. 길 잃은 사람이 비로소 자기 집을 찾은 것이지.”
 “절로 와서야 남의 옷을 입고 있다가 자기 옷을 찾은 것처럼 좋아했답니다.”
 “묘유스님은 학인들을 부드럽게 가르쳐야 돼. 아까 보니 이 학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더라고.”
 “스님, 저도 울었어요.”
 “강사도 학인도 같이 울었다는 말인가?”
 “네.”
 “주지스님께서는 어머니란 말씀만 하셔도 저희 학인들보다 더 많이 우신답니다.”
 “딱한 노릇이군.”
 “스님, 저는 어머니께 큰 죄를 저지른 자식이 아닙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이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멸죄하는 도리가 <금강경> 안에 있다. <금강경>은 사구게(四句偈)가 전부야. 사구게 속에 <금강경>의 대의가 다 들어 있으니까.”
 <금강경>에 나오는 시적인 사구게란 다음과 같은 부처의 가르침들이었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마땅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거라.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 나를 찾으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자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들어져 있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 것이니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진공스님의 물음에 묘유스님은 <금강경>을 강의하기 전에 학인스님들이 더욱 분발하도록 중국의 영가스님 어머니 이야기를 하던 중에 모두 울었다고 말했다. 진공스님도 중국의 영가스님과 스님의 어머니에 얽힌 일화를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출가하고 나자 기다리다 지쳐서 눈이 멀어버렸다. 출가한 아들은 깨달음을 포기한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때 어머니는 강 건너에서 나룻배를 타고 오는 승려가 있으면 가서 발을 씻어주었다. 아들의 발에 난 사마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젊은 승려는 발을 씻겨주는 노파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발을 맡겼다. 그러나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는 노파를 보고서 ‘어머니!’라고 부르고 말았다. 어머니도 그때 승려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들임을 알았다.
 그제야 승려는 자신이 왜 출가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젊은 승려는 하염없이 울면서 나룻배를 다시 타고 절로 돌아갔다. 그런 뒤 어머니에게 자신을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편지를 썼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는 스님이 있으면 달려가 발을 씻겨주었다.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젊은 승려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한 마음을 냈다. 젊은 승려는 어머니가 보고 싶고, 분한 마음을 낸 만큼 치열하게 정진했다. 마침내 젊은 승려는 깨달음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누님을 만났다.
 
 사실, 이와 같은 영가스님의 일화는 선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었다. 다만, 출가한 영가스님이 눈먼 어머니를 그리워한 만큼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줄거리만 같을 뿐이었다.
 “스님, 별채 방에서 주무시지요.”
 “선융당과 함께 객사 방에서 자도 좋겠어.”
 묘유스님이 일어서서 방을 나가려는 순간 다명스님이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묘유스님이 나무랐다.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식으로 법문을 청해 들어야 해.”
 “그럴 것이 있나. 지금 묻거라.”
 “아니에요, 스님.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 쉬시고요, 내일 법문시간을 따로 만들어 청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고. 여기 왔으니 밥값은 하고 가야지. 하하하.”
 다명스님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큰스님, 영광입니다.”
 “어허, 나는 큰스님이 아니라니까. 큰스님이 있다면 작은 스님도 있겠구나.”
 묘유스님이 나간 뒤 진공스님이 말했다.
 “나와 함께 자는 것이 불편하면 선융당이 별채 방으로 올라가.”
 “아닙니다. 스님께서 저 때문에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선융은 뚱뚱한 체격이 아닌데도 코골이가 심했다. 서래사에 살 때도 코골이 때문에 대중 앞에서 “앞으로는 저의 코골이로 인하여 대중의 잠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부처님 전에 참회합니다.”라고 자신을 책망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사미승 시절에 선방의 대중처소인 서당 큰방에서 멀리서 온 선객들의 단잠을 설치게 했기 때문이었다. 선융과 잠을 자려면 인내심이 뛰어나거나 선융보다 먼저 잠들어야 그나마 토막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아무튼 선융이 든 방에서는 소총소리 같은 선융의 코골이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달콤한 잠을 자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천둥번개가 쳐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이네. 자기 몸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선승이라 할 수 있나.”
 “사미 때 코골이 탓에 방에서 쫓겨날 뻔도 했습니다.” 
 “정말로 스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난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도 토막잠을 잔 사람이라니까.”
 “그럼, 스님께서 먼저 주무실 때까지 저는 자지 않고 있겠습니다.”
 “그거야 맘대로 하게.”
 선융이 자리를 펴자, 진공스님이 머리를 방문 쪽으로 하고 누웠다. 선융은 이불 대신 방석을 깔고 앉았다. 선융은 진공스님이 잠들 때까지 참선을 할 요량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진공스님의 잠을 방해할 것 같았으므로 불안했다. 진공스님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좌선하려고?”
 “예.”
 “내 걱정하지 말라니까.”
 “스님, 불을 끄겠습니다.”
 “그래.”
 전등 스위치를 끄고 난 얼마 후 진공스님은 자신의 의지대로 잠이 들었다. 달빛이 방문에 비치어 진공스님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뒤척거리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무의식까지도 의지대로 다스리는 선승 같았다. 선융은 깨달음을 체험하고 나서 진공스님과 주고받았던 말들이 떠올랐다. 화두를 타파하기 바로 전의 상태를 점검받았던 것이다.
 
 “걸을 때나 머물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화두가 들리던가?”
 “예.”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화두가 들리던가?”
 “예.”
 “꿈을 꾸고 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화두가 들리던가?”
 “예.”
 “깊이 잠들어 있을 때도 화두가 들리던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화두를 타파했을 때를 말해 보게.”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 보이던가?”
 “그런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가슴에 검은 구름이 꽉 차더니 폭발하듯 머리로 올라가 천둥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도 덩달아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제 몸이 허공 자체가 돼버린 것 같았습니다. 세상과 한 몸이 돼버린 경험을 했습니다.”
 “됐어. 지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방 안이 한결 더 밝아졌다. 달빛이 방문의 문종이를 뚫고 쏟아져들어 올 것만 같았다. 달빛을 반사하는 진공스님의 얼굴은 금물을 들인 듯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법당에서 보던 부처의 얼굴이었다. 한 방에 부처와 함께 있다는 희열이 선융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선융은 노래를 부르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 이 신비로운 충만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은 방안에서 광대무변한 허공과 하나 되는 이 일체감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선승들이 체험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였다. 텅 빈 충만이라고나 할까, 참으로 비어 있는데 묘하게 충만해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 무엇을 말로 표현하자면 참선을 해본 사람만이 체험하는 고요함의 맛, 즉 선미(禪味)였다.
 선융은 달이 부르는 듯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밖은 방과 달리 혹한이었다. 차가운 눈가루가 얼굴에 달라붙는 듯했다. 그러나 선융을 초대한 달은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맑고 그윽한  기운을 선융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별들도 선융과 마주치더니 몹시 그리워했던 것 같은 표정으로 깜박거렸다. 숙면에 든 것 같은 절 주변의 푸르스름한 숲들도 달빛에 깨어나 미세하게 움직였다. 별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꿈결처럼 댕그랑댕그랑 소리를 냈다. 주혜와 함께 왔을 때 선융이 잤던 별채였다. 선융은 무심코 별채까지 걸어갔다가 머뭇거렸다. 뒤늦게 군불을 지핀 별채는 선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묘유스님은 선융이 별채에서 자기를 바랐던 것이다. 진공스님도 마찬가지지만 승려들은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선융은 객사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객사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진공스님이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선융은 헛기침을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정랑을 다녀온 모양이지?”
 “아닙니다. 달빛이 너무 좋아서 나가 보았습니다.”
 “나도 달구경 좀 해볼까?”
 “스님, 춥습니다.”
 “달은 열여드레 날밤에 가장 오래 떠 있지. 밝기도 하고.”   
 “방문에 비친 달빛 때문인지 스님이 와불 같았습니다.”
 “선융당은 안 자는가?”
 “스님께서 주무실 때까지 또 참선을 하겠습니다.”
 “코골이 때문이라면 하지 말게. 참선도 좋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잠을 좀 자야지.”
 “저는 괜찮습니다. 꼭두새벽에 참선하는 것이 습관입니다.”
 “내 신경 쓰지 말고 차라리 묘유스님이 말한 별채로 가서 자지 그래. 바깥공기 좀 쐬고 와서 이제는 내가 가부좌를 틀어야겠어.”
 “정 그러시다면 스님 말씀대로 별채로 가겠습니다.”
 선융은 진공스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별채로 올라온 선융은 자리를 펴고 바로 누웠다. 방은 군불을 늦게 때서인지 미지근했다. 선융은 잠이 들었다가 꼭두새벽에 눈을 떴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방문을 조금 열었다. 진공스님이 궁금해서였다. 생각한 대로 객사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진공스님이 참선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선융과 진공스님은 달빛이 쏟아지는 안적사의 적막한 맛을 참선을 통해서 주거니 받거니 한 셈이었다. 꼭두새벽에도 달의 미소는 한결같았다. <계속>
 
*본 원고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게재권은 미디어붓다에 있으므로, 본 원고를 허락없이 무단으로 원고를 옮겨 전재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에 해당됩니다. 허락없이 원고를 게재하는 일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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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반달 2018-02-02 15:58:49
답변  
한귀절 한귀절 아주 귀하게 읽고 있어요.
어머니 이야기에는 저도 눈물이 글썽합니다. 이맘 때 가장  추운 날에 가셨지요.

허상인데 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부끄럽습니다.
아리랑 2018-02-02 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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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ㅡ'텅빈 충만'
적절한 우리 표현 중 내겐 최고다
그리고 사제간에 은혜로움이 참으로
달빛만큼 곱습니다()
동천 2018-02-02 17: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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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져 있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이와 같이 볼 것이니라(긍강경)

해아래서는 모든것은  영원한 한것은 없나니~~(신약)
인생은 아침 이슬같아 헛되고 헛되도다~~(구약)

짧은 인생을 혹은 가진것들에 대한 부질없음을 말들하는데
내가 사는것은 어찌 그리 움켜잡을려고만 하는가요~~
무진 2018-02-02 17:52:07
답변  
울컥 목 메여온다. 갸륵한 정성된 마음, 실로 어쩌다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인가? 천륜도 무시할만한 그 깨달음에 무슨 연유가 있었던가? 못내 몸은 굳고 마음은 쓰리게 절여온다. 속물 된 근성의 굴레나 얽매임에서 일찍 벗어나 마음이 한층 더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램이 앞선다.
의정 2018-02-02 22: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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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떠나신지 만 39년입니다. 저녁 모임의 한 지인이 홀로 계신 어머니 곁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동짓달 스무닷새,  꽁꽁언 땅에 통과의례처럼 뉘어둔 채 서둘러 산을 내려왔었지요.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은데, 사무치게 그리운데 이제는 꿈에서도 보이지 않네요.
나이 들수록 진한 그리움···
동원 2018-02-02 22: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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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라면 보름달이 가장 오래 떠 있는
줄 알았었습니다. 열여드레 날밤에 달이 밝기도 하고 가장 오래 떠 있다는 걸 처음 들었습니다.

내일이 섣달 열여드레입니다. 내일밤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내일은 입춘추위와 함께 눈이 예보되었습니다.
오래 떠 있는 달, 밝기도 한 달을 보고 싶은데···
의정 2018-02-02 22: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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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딸 주혜는 촉망의 스님을 환속하게 만들었고,
절을 찾아와 비구니스님의 주례로 결혼을 하고,
신학대학을 나온 처자는 길을 바꿔 비구니스님이 되게 하고···
재밌게 읽으면서 작가님은 기독교와 전생에 무슨 인연이셨을까 상상해 봅니다.~^^
호연 2018-02-03 21:44:32
답변  
묘유스님의 법문을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앳된 다명스님이
새봄향기처럼 신선합니다
노래하는 가백 2018-02-05 03:49:26
답변 삭제  
모든 것
물거품

마땅히 이와같이 보라는
금강경 부처의 가르침...

왠지 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

그 말씀 생각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을 만들어
거기서 위안받고
거기 안주하려는
습이 ....
보통 인생인데
따뜻한 슬픔으로
인해 감기는 눈을 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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